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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인문학, 과학 그리고 AI학 2

by 격암(강국진) 2026. 2. 13.

AI의 발달로 인해 펼쳐질 새로운 시대는 'AI학(學)의 시대'이다. 이것은 우리가 근대 과학 이래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듯이, 단순히 과학 기술이 더 정교해지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과학과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학문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각도에서의 분석이 가능하겠으나, AI학의 본질은 모든 고전적 학문이 그러했듯이 '질문에 대한 답의 기록'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의 축적'일 것이다.

근대 과학의 본격화는 아이작 뉴턴이 당시의 정상과학이었던 기계론적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작되었다. 1687년 발표된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뉴턴은 중력의 본질이 무엇인지(왜 발생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수학적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그는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Hypotheses non fingo)"는 선언을 통해, 본질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법칙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법칙의 존재를 말한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증명하고 달과 사과가 동일한 역학적 지배를 받는다는 '천상과 지상의 통합'을 이뤄낸 점이다.

뉴턴은 어떤 공리나 법칙으로부터 시작해 어떻게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완성했다. 그의 고전역학은 20세기 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의해 수정되었으나, '보편적 법칙에 기초해 현상을 설명한다'는 문제 풀이의 패러다임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과학은 모든 문제의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과학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반면, AI학에서의 AI는 어떤 시스템이 가진 데이터 속에서 발견해 낸 '내재적 법칙'이다. 자연법칙이 온 우주에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향한다면, AI는 특정 시스템(도메인) 안에서 발견되는 최적화된 법칙이다. 바둑이라는 시스템은 우주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승의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컴퓨터 최적화를 통해 발견해낸 '알파고'라는 AI다. AI에는 고전적 의미의 보편성은 없을지 모르나, 특정 문제 영역에 대한 극도의 전문성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믿어온 자연법칙이란, 인간이 자신의 뇌라는 연산 장치를 통해 이 우주라는 거대 데이터에서 최초로 발견해낸 '범용 AI'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또한 AI가 발견한 법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중력의 본질은 몰라도 그 공식을 기억하고 말할 수 있지만, AI는 수억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라는 고차원 벡터로 존재한다. 이는 마치 .jpg 파일의 이진 데이터를 인간의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림을 읽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은 컴퓨터라는 '해석기' 없이는 AI학의 결과물을 다룰 수조차 없다.

이러한 AI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최근 10년 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음성 인식과 번역의 품질은 이미 인간의 임계치를 넘었으며, 특히 2024년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가 '알파폴드(AlphaFold)'를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사건은 인류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이는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인류의 50년 난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과학적 발견의 주체'가 되었음을 선포한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코딩 영역에서 보여주는 AI의 생산성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패러다임을 분명하게 다듬는 것이다. 'AI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AI학의 패러다임은 **'문제의 설정 - 데이터 속 AI의 발견 - 발견된 AI의 적용(Harnessing)'**이라는 단계로 구조화된다.

과학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 법칙을 소수의 천재가 발견하고 다수가 이를 응용하는 구조다. 하지만 AI는 문제마다 새로운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나왔다고 해서 자율주행이나 단백질 문제가 자동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어모델은 인간의 지식 체계 전반을 데이터화했다는 점에서 경이로운 보편성을 획득했다. 챗GPT가 단백질 AI보다 더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이유도 바로 이 '지식의 보편적 연결성'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언어모델 그 자체는 거대한 '추론 엔진'일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엔진이 차를 움직이려면 적절한 섀시와 제어 장치가 필요하듯, AI가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에이전틱 루프(Agentic Loop)'와 같은 실행 구조가 필요하다. 최근의 흐름은 모델의 크기를 키우는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발견된 AI를 어떤 '하네스(Harness, 제어 장구)' 안에 집어넣어 구체적인 과업을 수행하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과거의 사람들이 비행기라는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을 나는 광경을 마법이라 여겼을 것처럼, 우리 역시 AI가 가진 잠재력을 아직 온전히 꺼내 쓰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손에 쥔 AI의 의미조차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AI학의 미래가 무궁무진함을 시사한다.

AI학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교육 체계도 재편될 것이다. 근대 학교가 산업 시대의 지식 체계를 전수하기 위해 설계되었듯, AI 시대는 새로운 방식의 학습을 요구한다. 이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 통계적 사고를 바탕으로 대량의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추출하고 질문을 던지는 능력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과학의 시대에 '이성적 존재'로 정의되었던 인간은, 이제 AI학의 시대에 **'데이터의 맥락을 이해하고 경험을 설계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데이터'와 '실존적 경험'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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