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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서구의 몰락과 시대 정신

by 격암(강국진) 2026. 3. 2.

천천히 진행되어 오던 일이기는 하지만 요즘들어서 유난히 유럽 명품이 몰락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와 패션의 중심은 서구 귀족의 문화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예쁘다거나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것들은 대개는 그 뿌리가 서구의 귀족들을 흉내라는 것입니다. 그 예는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아는 고급 호텔이란 결국 유럽 귀족들이 자신의 성같은 곳에서 손님을 받던 것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명품이라고 부르는 옷이나 가방은 유럽 왕실과 연결된 경우가 많습니다. 에르메스는 1837년에 마구제작소로 처음시작했는데 그 주요고객은 왕실과 귀족들이었습니다. 루이비통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황후의 전담 트렁크 제작자였습니다. 까르띠에는 영국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성장했습니다. 사회학자 브루디외에 따르면 명품은 애초에 전통적인 귀족 계급이 자신의 문화자본을 과시하고 하위 계층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되던 도구라고 합니다. 과거의 유럽 귀족들은 혈통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정교한 수공예품이나 희귀한 소재를 소비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연장선상에 세계인이 소비하는 명품이 있는 겁니다.

 

길고 검은 눈썹을 만드는 마스카라나 눈에 검은 테두리를 만드는 아이라이너, 눈썹을 밀어버리다시피하고 다시 얇게 그리는 화장술도 18세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유럽귀족의 외양이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러한 패션은 영화나 드라마같은 곳에서도 계속 우리에게 노출되어져 왔습니다. 서구의 멋진 배우들은 서구의 귀족적 외양을 가졌습니다. 예를 들어 서구의 뱀파이어 영화는 뱀파이어를 귀족의 이미지를 가지게했고 그 뱀파이어의 패션은 아니나 다를까 서구 귀족 취향인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전세계는 서구의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서구 귀족은 멋지다라는 세뇌를 계속 받아온 셈입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 이럴까요? 우리가 유럽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유럽은 전처럼 그리 절대적으로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근대화된지 오래라서 서구의 과학과 서구의 전통 문화를 구분하지도 못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과거 귀족 취향을 우리가 계속 동경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같은 사실은 특히 귀족을 동경하는 문화가 전근대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왕과 귀족이 지배하는 전근대를 넘어서 근대사회로 들어왔고 그것이 이제는 끝나간다고 말하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화 컨텐츠만을 보면 우리는 여전히 마치 유럽의 봉건시대를 그리워 하는 것같아 보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왕이 나오고 기사가 나오는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생각하죠. 마치 그런 시대에 사는 것이 낭만적인 것처럼. 아이들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이야기를 듣고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를 계속 듣습니다. 마치 지금이 봉건시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언젠가 명품옷이 결국 유럽의 공주놀이, 왕자놀이를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면 엄청난 가격을 가진 명품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구의 몰락은 무엇보다 기술적인 문제가 큽니다. 독일차도 이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유럽의 보석이나 가방도 이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수공업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던 명품은 대량생산으로 바뀐 것을 넘어서 아예 중국에서 만들어 지는 일이 많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독일차들이겠죠. 그러다보니 독일차와 중국차의 경계가 애매해져서 독일의 폭스바겐은 고급차인데 중국의 폴스타는 싸구려라고 할 수 없게 되었죠. 실질적으로는 같은 사람들이 만드니까요. 차는 이미 전자기기처럼 변했는데 소프트웨어 분야나 전기차 분야에서는 서구차가 오히려 한국차보다 못한 것도 많습니다. 옷이나 가방도 그렇죠. 21세기 현재 과연 옷이든 가방이든 유럽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잘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회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럽 명품의 값은 엄청나죠. 하지만 BTS나 블랙핑크가 파리에 가서 공연을 하면 유럽의 청년들이 몰려들어 환호합니다. 이런 시대에 이 모순이 과연 얼마나 갈까요? 

 

결국 패션은 삶의 방식을 이루는 사상의 일부입니다. 서구의 사상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근대의 사상이건 근대의 사상이건 모순을 누적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자애로운 서구 유럽 왕가의 지배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 사상조차 한계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군인이 아니라면 군복을 입을 필요가 없듯이 이처럼 더이상 서구의 사상이 세계의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패션도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선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구도자의 자세로 사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니까요. 저는 더이상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불가능한 21세기에는 오히려 이런 구도자의 삶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느낍니다. 이 지구가 무한히 넓은 것처럼 팽창을 꿈꿨던 사람들의 패션은 이제 과대망상적인 것이 아닐까요?

 

서구의 근대 사상은 무엇보다 환원론적이고 고립계적입니다. 즉 환경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나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과 같은 그들의 과거 집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담은 사람의 키보다도 낮고 추운 겨울이 있는데도 대청마루로 바깥으로 열린 구조를 가진 우리의 한옥과는 매우 다릅니다.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사람들의 소비나 취향이 모두 합리적일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래에도 뭔가가 인기가 있고 미친듯이 비싸게 팔리겠지요. 다만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게 지난 백년동안처럼 유럽 왕가를 은근히 흉내내는 것에만 집중되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전에 저는 한국에서는 할머니 패션으로나 쓰일 난해한 패턴의 작업복이 유럽사람에게 멋지게 보여서 디자이너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촌스럽게 보이는 호랑이 무늬 담요가 또 미국 사람에게 멋지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건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는 학생들이 누구나 팝송을 듣고 유럽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컸습니다. 요즘의 서구 청년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노래를 듣습니다. 추세를 보면 아무래도 서구 문화의 인기는 그리 길게 가지 못할 것같습니다. 이제 서구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야 할 지금의 문제 많은 세상의 일부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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