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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지능과 문화적 충돌

by 격암(강국진) 2026. 3. 26.

지능의 정의는 대개 서로 이어지고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AI를 논할 때 편리한 관점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를 가지고 지능이 무언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상 즉 근대 문명 사회의 문제가 뭔지를 보다 명확히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AI에 대한 세상의 오해도 이해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알고 주변 환경을 알아야 한다.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라면 그것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낸다. 100m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장애인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 100m가 험준한 바위산길인 것과 평평한 아스팔트길인 것도 물론 차이를 만든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것 같지만 우리가 지금의 학교교육이 본질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근대교육은 보편적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이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교육이다. 수십명 나아가 수백만명의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똑같은 시험을 친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문제를 푸는 것이 근대교육이며 이런 교육 현장에서 사람들은 점차로 그것이 공평한 것이고 당연한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잃어간다. 자신만의 특이성을 강조하는게 아니라 모두가 같은 문제를 푸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를 대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수능같은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AI는 이미 출현했다. 그 이유는 보편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근대교육이며 표준화된 기능을 다하는것이 근대 사회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근대학교는 근대 사회의 표준화된 부품이 될 인간을 만드는 공장이다.

 

이같은 현실을 지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기 환경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과 같이 생각해 보라. 지금의 학교에서 사람들은 사람은 서로 다른 한계를 가지고 다른 환경에 있기 때문에 다른 문제를 가지며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서 그것을 풀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는다. 그 보다는 모든 사람은 표준화되어야 하고 같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가진다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후자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할 수록 비현실적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세상에서는 비현실적이다. 결국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의 지능을 올려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망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결국 학교 교육이 학교 시험을 보는데나 쓸모가 있고 학교 바깥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있지 않다. 현실 사회에서 만나는 문제는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뭐가 다르다는 것인가? 그 답은 이미 가르쳐 주었다. 나의 한계를 파악하고 환경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다르다. 나의 특수함을 생각하지 않고 보편론만 따지는 사람은 현실사회에서 점점 무능해진다.

 

나는 이 차이를 종종 자전거타기에 비유한다. 다른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 정확히 똑같이 핸들을 돌리고 발을 움직이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아니다. 왜냐면 그 사람과 나의 차이가 있고, 그 사람의 자전거가 있는 도로의 표면과 내가 있는 도록의 표면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점점 증폭되고 결국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전거를 조작하는 사람은 쓰러지게 된다. 지금의 교육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속에서 가볍고 즉흥적으로 적절한 판단을 내리라고 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메뉴얼을 따라하라는 교육이다. 그래서 학교 바깥에서, 시험지 바깥에서는 같은 문제를 만든다. 분명 배운대로, 성공한 사람이 한대로 똑같이 하는데 차이가 점점 벌어지다가 결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

 

이는 조직 문화에도 차이를 만든다. 근대조직에서는 지나치게 보편적 지식을 강조해서 이것저것 잡다하게 아는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리더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조직의 구도를 정적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짧은 시간안에 극복할 수 없는 서로 간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사안마다 상황마다 다른 사람이 리더를 하고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지금의 조직이 처한 환경에서 그걸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래서 판단은 결코 1인 1표가 아니다. 우리는 보다 창발적으로 조직의 리더가 바뀌는 운영을 해야 한다. 그게 현대적 환경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근대인은 전근대인을 답답해거나 심지어 경멸한다. 전근대인은 권위적이고 일관성이 없다. 왕이나 귀족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일관성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판단을 따라하는 것이 전근대인이다. 근대인은 인본주의적 주장에 따라 인간은 보편적 진리를 볼 능력인 이성을 소유하며 따라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근대인이 답답헤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칭송받던 근대인이 이제는 답답해 보이거나 심지어 경멸당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보편적 진리는 앞으로도 쓸모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는 점점 쓸모가 없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알고 자신을 둘러 싼 하나밖에 없는 새롭고 특이한 환경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제대로 그 문제를 풀 수 있다. 이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지능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건 마치 남들보다 마른 사람이 남들과 똑같이 다이어트 약을 사는 것과 같은 행동을 유도한다.

 

이러한 근대적 문화의 문제는 AI를 개발하는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보편적 지식을 가진 AI만을 강조하고 그런 AI가 모든 문제를 푸는 날이 올거라고 기대하며 그런 AI를 AGI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수능을 만점받는 AI가 나왔어도 그런 AI가 현장에서 인간을 다 대체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AI들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환경에 민감해 질 수 있는 몸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가 뭔지를 정확히 규정해 내지 못한다. 그걸 해내는 몫은 인간에게 주어진다. 이 차이는 자동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이 서로 크게 다르다는 자명한 차이에 AI가 둔감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AI에게 뭐뭐해라라는 명령만을 내리지 AI가 어떤 수단을 가졌고 그 수단의 한계는 어느 정도이며 지금의 세계가 어떤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AI는 물론 스스로 그런 걸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걸 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AI는 계속 그럴듯한 말만 빠르게 만드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진짜 문제를 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란 전쟁의 진짜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자. 이 질문에 답하는 문제를 제대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어떤 정보 소스들을 가지고 있고 그 정보 소스들이 얼마나 믿을만한 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근거없이 적은 포스팅과 학술논문은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가치있는 의견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탐구가 필요한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란 전쟁의 진짜 이유라는 구글 검색을 한 후에 그게 뭐가 되었든 거기서 나오는 결과를 단순요약하는 보고서를 쓰는 것에 멈추기 쉽다. 그런 보고서는 설사 그럴듯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전근대인들은 근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문화적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한순간에 납득되지 않는다. 왜냐면 암묵적으로 나는 이러저러한 환경속에 있고 나는 누구다라는 생각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근대인은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투표하는 전근대인을 보면 화를 낼 것이다. 이는 근대인과 전근대인 사이의 문화적 충돌을 만들고 때로는 전쟁을 만든다. 근대인은 점차로 AI 시대의 인간을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AI 시대의 인간은 근대인에게 점차로 더 짜증을 내게 되고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걸맞는 조직 문화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그것은 결국 지능의 문제다. 지능이 있는 쪽에서 상대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행동을 보면 점차로 참을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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