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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좋은 가족을 만드는 기술

by 격암(강국진) 2009. 9. 16.

머릿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한다던가 사랑받는 다는 것은 기술과 이해가 필요한 문제이며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고, 멋진 하니문을 다녀오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일을 하면 그것으로 두 연인이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굴레안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그토록 쉬워보이는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에 괴로워 하고 있다. 그들은 좋은 아빠, 좋은 아내, 좋은 아들, 딸,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하는 것에 꺼림직해 하거나 괴로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응당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아빠는 딸에게 사랑받아야 마땅하며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 대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을때 사람들은 괴로워 한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일, 사랑받는 일은 본래 아주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하고 사랑받고 좋은 부부가 되고 좋은 가족을 만드는 일은 그저 조금 노력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대단한 노력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뭘 이해하고 뭘 노력해야 할것인가. 


문제의 원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논의하는 일은 끝없이 추상적인 일이 될수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랑이란 누군가를 중요한 존재 즉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인식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각종 사회적 시스템이나 기계적 자동화는 각각의 개인이 가지는 의미를 말소시켜버리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의미는 줄어들고 그 구체적 내용이 없는 것이 되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도 없고 티브이나 라디오도 없이 무인도에 고립된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들에게 있어 서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 유대를 나누고 같이 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인구가 과밀되어 있는 도시에서 살며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뿐만 아니라 케이블 티브이와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방법을 통해서 오락물에 노출되어 진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멀리 있는 사람과도 언제나 연락이 된다. 온갖 배달서비스며 용역 서비스가 존재해서 이웃에게 의존해야 할 일도 별로 없다. 게다가 한국에는 수천명이 같이 거주하는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이런 경우 이웃들의 의미는 더욱 더 무의미해진다. 가까이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다른 오락거리로 대체될 수 있고 실제로도 대체 된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감소는 상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웃이 나에게 의미가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나도 그 이웃에게 의미가 적어졌다. 이웃이 나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나도 남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말해 전반적으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유용성과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외식이 매우 드물었고 어머니들은 집에서 모든 식사며 간식을 직접 만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집집마다 조금씩 달라서 아이들은 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음식을 먹었다. 이제 우리는 소위 발전이란 것에 의해서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수퍼가 먹거리와 간식을 대신 제공해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만든 더 싸고 더 맛있는 음식을 힘 안들이고 먹게 되었다고 해도 이러한 발전의 뒷편에서 엄마가 가지는 의미가 감소했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다. 


단지 엄마의 음식뿐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엄마가 하던 역할이 기계나 시스템에 의해 대체될때 모자, 모녀라는 인간관계는 그 내용이 점점 빈약해진다. 서로 대화도 안하고 서로 즐겁게 노는 관계도 없으며 옷을 만들어 주거나 사주거나 청소를 해주거나 하지도 않으며 가족은 이제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돈을 지불할 뿐인 관계가 된다. 과거 조선시대의 가족이란 대개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오늘날 가족들은 모두 바뻐서 각자의 일이 있을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보다 자신을 더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사회로 부터 얻고 있다. 아버지는 골프나 술집생각을 하고 어머니는 드라마 생각을 하고 아이들은 오락이나 친구생각을 하면서 되도록 서로 만나지 말고 빨리 자기들만의 자유시간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며 사는 일이 요즘 세상에는 종종 일어난다.   


절반의 해법


앞에서 말한 것을 천천히 읽어보면 그것은 마치 자동차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와 닮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걷지 않고 자동차를 많이 타면 다리가 약해진다. 그리고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타기에 중독되는 것을 피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현대에서는 우리 주변의 가족이나 이웃의 의미를 약화시킬 무수한 서비스가 쏟아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운동을 안하면 다리가 나빠진다는 것, 걷는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회적인 다른 서비스에 중독이 되면 사랑하는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것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좋은 가족을 만드는 첫번째 해법은 가족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서로를 발견한다는 것은 서로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의무적으로 만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의무적으로 만날때 그들은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그저 무의미한 형식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먼저 서로 서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즐겁다는 것, 서로 서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걷기를 생각해 보라. 걷는 것은 차타는 것보다 힘들다. 그러나 걷기를 하다보면 산책도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쳡과 마요네즈로 범벅이 된 강한 맛의 정크 푸드에만 길들여진 아이가 채소의 맛이나 비싼 요리의 섬세한 맛을 구분하려면 먼저 강한 맛을 주는 음식을 끊어야 한다. 


따라서 가족들이 뭉치는 첫번째 방법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서로가 아니면 즐길거리가 없는 환경을 가끔 인위적으로라도 만드는 것이다. 핸드폰도 티브이도 컴퓨터도 만화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가족끼리만 있으면 어떨까? 처음에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그런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은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즐기는 것에 너무 중독이 되어져 있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간단한 도구로 하는 게임을 즐기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수영하고 하면서 노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허니문은 멋진 낭만적 장소에 가서 낭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허니문은 둘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도와줄 사람없이 떠나서 계획없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위험한 곳으로 가서는 안되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의존할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 가족을 만들어 가는 첫번째 단계다. 그런데 신혼부부 중에는 너무 편한 호화 리조트 같은 곳에 가서 있다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것은 허니문의 본래 목적과는 조금 다른 여행이 되고 만다. 


부부가 싸움이 나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가라고 나는 조언한다. 자동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따로 즐길수 있는 것은 라디오나 음악정도이기 때문에 이런 환경이라면 결국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지만 계속 그런 환경에 있다보면 그래도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가족이 뭉치는 진짜 극단적인 방법은 우리가족이 그렇게 했듯이 이스라엘같은 나라에 가서 몇년 사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부부가, 가족이 뭉치지 않을 방법이 없다. 모든 방면에서 서로 돕지 않으면 되는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족들이 서로에게 유일한 조력자이며 오락이다. 부부사이가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다. 단 여기서 도움은 상호간에 이뤄져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환경은 둘을 반드시 가깝게 하지 않는다. 부부는 어려움속에서 하나가 된다. 


진짜 해법


그렇지만 위에서 쓴 것이 완전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절반의 해법이라고 쓴 것이다. 위의 해법은 말하자면 자동차가 흔한 시대에 자동차를 포기하고 걸어다니라는 말과 비슷하다. 물론 우리는 운동의 중요성을 명심해야 겠지만 그렇다고 원시시대로 갈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언제나 여행을 계속 떠나고 오지에서 살 수도 없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위의 해법은 절반도 못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기술, 좋은 가족을 만드는 기술의 진짜 핵심적인 부분은 자유와 의무를 이해하고 조화시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가족들이 전보다 훨씬 더 각자의 일을 많이 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서로 다른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모두 나눌만한 시간이 부족한 일이 보통이다. 이것은 가족이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상태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자유를 무한히 방치했을 경우는 가족이 해체되고 만다. 그렇지만 서둘러 자유를 억압했을 경우는 가족들이 괴롭게 사는 상태가 된다. 큰 자유를 누리려면 거꾸로 우리는 원칙과 기본적 의무에 대한 강한 자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특정 가족 멤버가 다른 가족멤버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상황밖에는 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가족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자기가 아쉬운 일이 있으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가족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에 아주 많다. 


그런데 과연 이 의무란 무엇일까. 이 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엄밀히 말하면 그 답은 각자 찾아야 한다. 인생의 목표나 가치관을 누가 대신 말해준다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하나하나의 가족, 하나하나의 사랑의 정체성은 각 가족이, 각 연인이 직접 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가족을 만들고 유지하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이해와 수련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일반론이다. 그런 일반론을 전제하고 나면 그래도 우리는 상식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는 있겠다. 먼저 원칙이나 의무에는 구체적이고 규율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부모에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가 가족들은 모두 주말에는 반드시 같이 저녁을 먹는다던가 하는 원칙을 정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나 의무를 강력하게 따르기 때문에 가족들은 바뻐서 오랬동안 대화를 못하거나 각자 서로 다른일에 빠져서 서로를 생각할 시간도 없어도 가족이라는 틀이 유지될것을 기대할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자유를 누리려면 더 강력한 원칙과 의무를 인식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보다 힘든 것은 이런 구체적인 규칙이 아니라 보다 철학적이고 가치관적인 공감대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이런 것이다. 모든 일보다 가족이 우선한다라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럴때 누군가가 모든 일보다 가족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 이 원칙에 대해서는 항변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있을 때 가족간의 결합은 보다 강한 것이 될 수 있고 가족간의 문화적 격차가 커져도 서로간의 신뢰는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뭐가 이런 가치관적인 공감대가 될 것인가는 각자가 정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가족은 우리 가족은 한국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한다라는 가치아래에서 단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떤 가족은 우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살기로 한다라는 가치아래서 단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엉터리 가치관으로 가족을 만들면 문제가 생길것이며 지키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구체화 시킬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은 된다. 가족의 의미, 가족을 지켜나갈 힘에 대해 가족모두가 생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한것은 당연하다. 집안의 가장이 일관성있는 말과 태도를 유지시켜 나감으로서 구체적인 문구가 없어도 그 집안의 가치관이 명확해 지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좋은 리더, 좋은 가장은 좋은 가족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다. 


맺는 말


좋은 가족을 만드는 기술을 쓰면서 가족이 왜 중요한 가를 말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짧게 언급할 필요는 있을 것같다. 가족이 중요한 이유는 위에서 쓴 것처럼 요즘이 개인이 개인으로서 가지는 의미를 상실해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가족의 희소성이 더 커졌고 가족이란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게임중독자나 일중독자, 약물중독자같은 사람들에게서 일관된 사고의 결핍이나 감정적 표현능력의 홰손을 보게 된다. 그들은 세상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스스로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능력이 줄어든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자동차 타기에 중독되어 걷는 능력이 없어진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자극적인 오락거리와 일들에 중독되기가 너무 쉽다. 그런 환경에 중독되면 우리는 사랑하는 능력을 잃고 급기야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능력마져 상실되고 만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회의하게 되고 현실을 살아갈 추진력과 용기를 잃게 된다. 


좋은 가족을 만들기 힘든 오늘날은 역설적으로 좋은 가족을 가지는 것이 더욱 소중한 때이다. 독신자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빨리 죽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좋은 가족을 만드는 기술은 단련하고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때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더욱 더 많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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