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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09. 12. 5.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들이 무시할 때도 포기하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누구보다도 고기를 잡은 노인은 이제 그걸 전부 잃어버리고 만다. 다시 어촌으로 돌아온 노인은 그런 현실앞에서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불행하다고 느껴야 할것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보면 노인은 그럴 것 같지 않다. 노인은 오히려 후련함, 행복감을 느낄 것같다. 불타오르는 행복감은 아니더라도 어딘가 은근히 바닥을 데우는 온돌바닥의 온기같은 그런 행복감이 노인에게는 있을 것같다. 그것이 삶에 지친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상태를 이상적인 상태라고 해보자. 이상적인 상태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체로 이상적이지 못한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항상 변화하고 있다. 세상의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과 먹고 난 후 나는 다르다. 이미 경험이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내가 그걸 먹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걸 일단 먹고난 다음에는 나는 이미 전과는 다르다. 나는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대신에 어떤 자리라던가 상이라던가 업적이라던가를 대체해 넣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변화한다. 어딘가에 도달해서 멈춰서게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딘가에 도달해서 억지로 변화를 막으려고 할 때 그것은 억압이 되고 말것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상태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우리가 도달하여 영원히 거기에 머물 그런 것이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끝없이 도전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싸구려 광고카피같은 말로 이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에 그런 말은 거의 의미가 없는데 계속해서 도전하는 마음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저절로 나오나? 사실은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우리가 1킬로미터를 걷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대개의 경우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충분히 크기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목표가 1만킬로를 걷는것이라고 해보자. 걸음이 걸어질까? 하물며 무한도전이라고 해보자. 어차피 죽을 때까지 걷기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연 목표가 뭔지 도전이라는 말이 뭔지 의구심이 든다. 산에 가기 전에 이미 저 산은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산에 오르기 위해 힘들여 노력해야 하는걸까? 끝없는 도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전의식이 마구 솟아 오르나


인생을 뭔가 고정된 어떤 것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한히 도전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다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난관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일단 도전이라는 말은 지금의 나에게는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도전이란 '내가 부족한 ,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이 저기 있다. 그것을 쟁취하자.', 이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자세를 가지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기껏해야 '끝없는 도전'으로 평생을 좌충우돌하다 쓰러질 뿐이다


행복은 미래나 저기 어딘가에 있는게 아니라 지금 여기 나에게 있으며 나는 부족한 것이 본래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을 할때만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직장에도 안나가고 일도 열심히 안하고 아무 생산도 안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진정으로 열심히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사는게 즐겁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사는게 어떤 목적을 이뤄내기 위한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수명은 뭔가를 얻기 위한 도구나 희생시켜서 뭔가를 얻어야 할 자본같은 것이 아니라 축복이기 때문이다. 매순간이 아까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무한한 참을성으로 고통과 지루함을 장기간 참아내고 결국에는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그런 사람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운이 아주 좋거나 둘다인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하면 오히려 일을 못한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청소부 베포는 이런 말을 한다.  


베포는 자기가 맡은 일을 좋아했고, 철저하게 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천천히 쉬지않고 쓸었다. 걸음 때어 놓을 때마다 한 번 쉬고, 한 번 쉴 때마다 비질을 한 번 했다. 그러다가 가끔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겨 앞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뒤쪽에 깨끗한 거리를 두고, 앞에는 지저분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청소를 하다 보면 종종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없을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이상 비질을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 다음에 딛게 걸음, 다음에 쉬게 호흡. 다음에 하게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있지. 걸음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길을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숨이 차지도 않아."


우리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초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지금 이순간 필요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훈련때문이다. 사회는 끝임없이 개인들에게 향상되어질 것을 주문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지식을 머릿 속에 집어넣고 많은 경험을 쌓고 높은 지위로 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올바른 태도라고 말한다. 설사 돈이나 명예따위에는 무관심한 사람도 보다 더 고상한 목표라면 다를 수도 있다. 즉  많은 지식이나 고결한 인격의 달성따위를 추구하는 것은 아마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우리 모두 청소부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식을 쌓거나 기술을 익히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돈을 버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좋은것인데 거부하겠는가멋진 해외여행과 좋은 자동차를 즐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을 얻으려고 할 때 우리는 부족한 우리 자신이 그런 걸로 채워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진짜로 부족하다면 그런 걸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한다면 우리는 뭔가를 얻기위해 수 많은 고통을 억지로 참고 결국 그걸 얻은 뒤에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뭔가가 부족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게  것이. 그러나 현실사회는 너희들은 부족하다. 죽도록 노력하라라고 말한다. 마치 그 사회가 제시하는 어떤 것을 얻게 되면 부족한 우리가 안 부족한 사람이 될 것처럼 말하고 이와는 다르게 말하는 사람은 그저 게으른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돈이나 명예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만 그런게 아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치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어떤 시스템, 어떤 내적 수준, 어떤 지식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꿀거라고 기대한다. 도시에서 불행한 내가 시골에 가면 행복해 질 거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산속의 암자에서 참선하고 기도하며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면 나도 그런 껍데기를 얻으면 행복해 질거라고 믿는다.


행복해 지는 것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달성함으로서만 가능하그건 무언가를 달성해 낸다는 자세가 아니다. 그런 자세는 우리를 어떤 패러다임,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시스템의 더 큰 노예로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우리는 그저 우리 해야  일을 한다는 자세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고민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을 말한다. 자유는 자신이 누군가를 아는 것이다행복은  자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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