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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짜장면과 인간

by 격암(강국진) 2009. 10. 15.

어제는 짜장면과 독서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는 짜장면에 대해 글을 썼었다. 나는 맛있는 짜장면이 뭔가를 확실히 가르쳐 주는 짜장면을 먹고나면 좀 덜맛있는 짜장면도 맛있게 먹을수 있다는 말을 했다. 쓰고보니 애매한 글이 되고 말았지만 그건 책을 읽는데는 세상모든 것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적 자기 철학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이해의 기본 줄기가 될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철학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이러니 순환 논법비슷하게 되고 만다. 책을 읽으려면 자기철학이 있어야 하고 자기철학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어쩌랴 그게 현실인걸. 어느 소설가가 자기는 어릴적에 같은 책을 말 그대로 100번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그러면 뜻이 통하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런 문제때문일것이다. 


짜장면과 독서도 그렇지만 짜장면과 인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자아실현이니 자기 실현이니 하는 것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그런데 남이 나를 봐도 그렇고 내가 나를 봐도 그렇고 사람은 겪어봐야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다. 시간을 두고 여러가지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하고 행동을하며 여가시간엔 뭐를 하고 일로서는 뭐를 하는가등등을 봐야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감이라도 오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책을 백번보기에 해당하는것일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책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는 흔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인간을 읽는 방법도 책을 읽는 방법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를 답하는 것도 짜장면 먹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인간이 뭔지를 이해하려면 남도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나름의 철학이나 기준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일반적 존재로서의 나를 이해하는 것에는 일반론적인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와도 다른 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이해하는 것은 그런 것가지고는 안된다. 내가 옆자리의 누군가와 근본적으로 왜 다른지를 일반론적인 철학으로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결국 짜장면의 예가 유효하다. 진짜 맛있는 짜장면은 짜장이 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고 나면 다른 짜장도 '이해'가 된다.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순간이 필요한 것같다. 


예를 들어 작가들에게도 출세작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의 대표작을 읽으면 그 작가의 개성이 생생하게 들어난다. 하루키든 조정래던 다니엘 퀸이든 말이다. 그것들은 마치 이것이 이 작가다라고 말해주는 것같다. 그러고 나면 대표작이 없었더라면 이해되지 못했을 다른 작품들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평생에 한번도 뜨거워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뜨거워지고 뭔가를 위해 죽도록 노력하고 뭔가를 위해 내 전체를 던지는 행위는 그 성공여부 이상으로 중요한 일을 한다. 바로 이게 XXX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나 주변사람에게 알려준다. 


사람이라는 책을 읽는데 기준이 없다면 도대체 나는 뭘하며 사는 사람인지, 왜 이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지 알도리가 없을 것이며 인생은 더 지루하거나 더 괴로울 것이다. 사회적인 자아도 마찬가지다. 87년의 6월 항쟁이나 탄핵반대 촛불집회같은 것이 없었더라면 한국인이란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을 것이고 사는 것은 더 지루하거나 더 괴로웠을 것이다. 


아. 진짜로 짜장면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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