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하나둘 하고 팔다리를 휘둘러 본다. 때로는 산보를 하거나 조깅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몸풀기나 체조가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특히 나이가 점점 늘어가면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나 느낀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은 인지하면서 감정의 건강은 무시되기 쉬운 것같다. 어린 시절에는 특별히 운동하지 않아도 활력이 넘치듯이 감정도 뭉클 뭉클 솟아오르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어느새 그런 머리가 쭈뼛쭈뼛서는 희노애락은 느끼기 쉽지 않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적 성장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깨달은 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표현해보라고 하면 돌덩이 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틀린것이다. 우리는 육체의 체조가 필요한 만큼 감정의 희노애락의 체조가 필요하다.
한 유명한 강사가 자신의 삶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아침마다 미친듯이 웃는 시간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침마다 엉엉운다는 사람도 있다. 울어버리고 나면 시원해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힘겨운 하루를 살아갈 힘이 솟아 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친 듯이 살아야 한다,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우리는 알고 보면 감정의 체조를 위해서 다른 것도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로스포츠는 왜 인기가 있을까.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노애락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비하고 음악을 소비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 균형이 깨어지기 쉬운 청소년기에 음악이 없었다면 살아나올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다. 달밤에 바람쐬러 산책 한번하고 우리는 별다른 감회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다르다. 시인의 시란 말하자면 감정의 확대기 같은 것이다. 시를 읽고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희노애락의 체조를 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딱딱해 지면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죽을 수도 있다. 심장마비가 온다던지 당뇨가 온다던지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병을 걱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감정적으로 딱딱해져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같다. 특히 한국의 40대이상의 남자들에게서 이런 것을 많이 본다. 그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는데다가 경쟁에 시달리느라 바뻐서 감정적 건강이 매우 나빠져 있다. 그들은 이제 대화도 거의 하질 못한다. 대화란 기본적으로 감정을 서로 나눠야 하는 것인데 그들이 가진 감정적 유연함은 너무 수준이 낮아서 그들은 이젠 누굴 만나도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를 모른다.
한국에서 이른바 실버타운 사업을 시도했다는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다. 한국에서는 실버타운이 잘 안된단다. 안그래도 노인이 되면 감정적인 활기가 적은 판에 그런 노인만 모여서 살아보니 분위기가 너무 너무 칙칙해서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질겁을 할정도였다고 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한국사람이 감정의 건강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 이런 말에 공감했다. 노인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은 천진난만하여 감정의 수발이 자유자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감정을 공유한다. 한마디 말을 안해도 어떤 집단안에서 웃고 우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히 다른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며 나이가 들어갈때 몸만 체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체조를 해야 하는 이유다. 외롭게 지내는 부모님이 있다면 중요한 효도는 자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고립된 노인은 건강상 치명적 위험에 빠져 있을수 있다. 몸보다 감정이 먼저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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