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인생은 비슷한데가 있다.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가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이론을 배워도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오히려 이론따위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자전거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전거 타기에 대한 최신의 이론이 있다면서 이러니 저러니 한다. 자전거의 위험성과 사고 사례에 대해 줄줄히 늘어놓고 달리는 동안 어떤 부품이 고장나면 어떻게 되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동네사람들이 다 몰려들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데 대화는 격화되어 자전거를 타는 방식에 따라 이단이니 미친 놈들이니 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자전거 타기의 이론과 철학이 복잡해 질수록 보통의 사람은 답답하다. 어린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안전수칙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아이는 애가 탈것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듣는 대신 빨리 자전거를 직접 타고 싶기 때문이다. 타보면 알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상당히 그렇다. 이론따위 너무 많이 시간들일 가치가 없다.
사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삶이란 자전거타기보다 오히려 더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기 쉽다.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도 왠지 믿음직 스럽지가 않아서 자전거타기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는 식이다. 그런데 공부할 것은 끝이 없는데다가 사실은 너무 어려워서 아무리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결국은 그냥 읽은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많다. 이러다가는 자전거를 제대로 타는 방법에 대해 평생을 공부하다가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놓쳐버리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인생의 의미나 제대로된 윤리적 가치적 기준에 대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그렇다. 평화롭게 조용히 사는 사람도 사는 의미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이제 그 평화가 깨지고 만다. 그래서 사는 것보다 사는 방법을 공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야 할것같다.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게 어찌나 어려운지, 또 그게 뭔지 떠드는 사람은 많은데 쉽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생 철학책을 끼고 살아도 제대로된 나의 철학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노교수의 고백이 흔하고 보면 도대체 철학한다는 것이 미친 짓 같기도 하다. 철학책을 읽는 도중에 아름다운 날들이며 내가 즐길 수 있었던 좋은 만남의 기회가 모두 지나가 버리지 않겠는가. 사는 법을 공부하다가 살기를 포기하게 된다. 게다가 자전거타기가 그런 것처럼 사는 법따위 몰라도 사는데 충실하다보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도 있다. 아무리 책을 파도 직접 경험이 없으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다.
그리스 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인생에 대해 배워야 할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철학자며 사상가들에 대해 도서관을 아니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자료가 있다.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하다. 그냥 살아야 한다. 골치아플 정도가 되면 철학은 이미 과잉인지도 모른다. 철학자는 이런 점에서 경제학자들과 비슷한 걸까? 경제학자들은 종종 경제적 재앙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해서 자신들의 생계를 이어간다. 왜 경제를 공부해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정신적 재앙을 이야기한다. 둘 다 재앙이 일어나면 경고가 맞았다고 야단이고 재앙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들의 경고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과연 재앙을 경고하는것일까 재앙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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