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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운동 또는 모든 대중운동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0. 1. 15.

% 아래글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던것에 대한 답글입니다. 


한살림운동에 대해 혹은 일반적인 운동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글을 읽으시면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몇자 적어보기로 합니다.

일단 한살림운동은 한살림선언으로 이해될수 있다고 몇말씀드리지요. 그 이외의것은 인터넷에서 조금 접한 것이 있으나 사실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추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위해 아주 현실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겠습니다. 한살림운동을 유기농 장사라고 국한하여 말해봅시다.

한살림선언에 보면 생명과 기계의 차이, 현대문명에 의한 인간의 기계화같은 것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말들은 다 옳은 말이지만 이건 아사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의 무서움이나 지방과다섭취로 인한 성인병 발발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과학적 합리주의가 정착되어 있지 못한 사회였습니다. 군사정권의 권위주의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세상을 마구 지배하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니거 내거 구분못하고 공공질서의식도 지금보다 훨신 희박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한살림선언의 처방들은 인간이 기계적으로 정교한 규칙을 지키고 거기에 매몰되는 것의 무서움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될까요? 유기농 농산물 사업으로 보았을때 한살림운동이라는 사업이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냉철한 사업논리가 그들의 본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기업 합리화니 효율성제고니 하는 것을 사소하게 보았겠지요. 뭘 어떻게 생산해서 얼마나 어디에 팔면 이익을 어떻게 남길수 있는가에 어설펏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설품은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미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게 바로 낭만주의적 반항에 멈추는 것입니다. 결국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경제적 어려움은 회원들에게 전가되고 이래서는 문명이 싫으니 우리 원시인처럼 불편하게 살자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여러가지 변명은 있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 운동이 현실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노풍은 이런 증명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대통령을 만들어냈지요. 누구도 안될거라고 말한 길을 걸으면서도 이상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현상이 어떤 의미로건 한국을 뒤흔든 겁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엄정하게 논리적 과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국인은 합리주의도 배우지 못했는데 거기에 합리주의의 한계를 들이대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한살림운동도 그렇고 동학이나 우리 전통 사상을 강조하시는 분들 예를 들어 도올 같은 분들도 마찬가지로 실수 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학적 합리주의에 있어서 서양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럽이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문명의 한계, 현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단순히 우리의 전통사상을 내세우는 것은 충분하지 않고 오해를 불러 냅니다. 우리의 전통사상은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응이 아니지만 지금의 순간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이해되고 맙니다. 수운은 뉴톤도 다윈도 아닙니다. 아담 스미스도 아닙니다.

일단은 우리 인간의 문명은 규칙과 규범으로 이뤄진 합리주의의 결과물 위에 서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학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때는 완전한 기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기계에 불과하지 않도록 기계에서 벗어날수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법이란 인간이 만든것입니다. 일본의 도로교통법도 한국의 도로교통법도 인간이 만든것이지 무슨 거룩한 성스러운 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이 지켜지기 때문에 복잡한 도로에서 차들이 다니고 사람들이 길을 건넙니다. 이 말의 무거움을 뼈져리게 새긴 사람만이 법은 그저 사람이 만든거라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가서 한국에서는 이렇게 운전한다면서 다른 차들과 반대방향으로 운전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도 죄책감도 없습니다. 그냥 대충대충입니다. 한국은 과거에는 더 그랬지만 지금도 이 대충대충주의가 한가득입니다.

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법이전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기계가 되면 안되지만 법에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이 걸려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인간은 더더욱 안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시스템에서 내려오는 규칙에 따라 인간을 비참하게 처벌하는 법관도 피해야 하지만 법을 자기 멋대로 무시하면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운동은 어디까지나 강력한 논리적 기반위에서 강력한 규칙위에서 엄격한 책임의식과 권한의 분리위에서 사업에 대한 현실론에 근거해서 인정사정없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만 그 구성원들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뛰어넘을수 있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일에 쓰라고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분들은 자기돈이 아까운줄 모르는 분들일까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모범이 되는 분들은 돈의 소중함을 알고 악착같이 아끼고 돈을 벌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돈을 인간이 되기위해 써야 할때는 과감히 쓸수 있는 분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못합니다. 돈을 흥청망청쓸수 있는 행운아이거나 돈돈 하면서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뭔가 진짜 가치있는 일에는 돈을 쓰지 못합니다. 돈중요한질 모르거나 돈의 노예입니다.

저는 지금도 한국은 20년전 한살림운동이 시작했을때처럼 과학적 합리주의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아예 합리주의만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시대를 열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사실 민노당이나 유시민의 주장은 이것과 때로 비슷한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문명을 서구로부터 수입했기 때문에 논리와 물질을 강조하는 합리주의에 몰두하면 용산참사같은 일이 마구 발생합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것같은 두가지를 동시에 강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럼 어떻게 아는가. 그것이 바로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논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고 논리를 습득하고 논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 여러가지 대상들을 사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글 하나로 설명할수 없는 것입니다만 사실은 글 백개가 되도 말로 전부 설명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논리와 말로 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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