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
반즈앤드노블에서 크는 아이들
뉴욕생활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중의 하나는 반즈앤노블이다. 반즈앤드노블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체인으로 뉴욕에서 1917년에 처음 문을 열었고 2008년 현재 전국적으로 798곳의 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뉴욕에는 사방에 존재해서 뉴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중의 하나다.
전국이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뉴욕의 반즈앤드노블은 상당히 큰 서점이다. 넓은 3-4층짜리 건물이 모두 책으로 차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이 입주해 있고 각층은 나무바닥이나 양탄자바닥으로 아늑하게 꾸며놓았다. 커다란 서점의 미덕은 다양한 책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이 많아지기는 했으나 역시 눈으로 보고 책을 손으로 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 촘촘하게 책이 꼽혀있는 서가에서 내가 모르던 의외의 책을 발견하는 기분을 가질 수 없다. 책을 산다면 인터넷으로 살 수도 있으나 책을 살피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서점에 가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반즈앤드노블은 많은 책을 갖춰 놓은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될 수 있으면 아늑하게 책을 오랫동안 살펴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책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훨씬 배가 되는 것이다. 서가간의 간격은 상당히 넓다. 책을 진열하기 위해서라면 책을 더 빽빽히 놓을 수도 있으나 사람들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게 서가 배치를 한 것 같다. 여기저기 의자를 가져다 놓은 곳도 있다. 일반 단행본은 물론 잡지나 아이들 책도 대부분이 그냥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니 커피숍에서 잡지를 보는 사람, 책 진열대 사이에 앉아서 책을 보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많으며 눈치도 주지 않는다. 아이들 책까지 그렇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특히 놀라웠다. 아이들 책은 대개 아주 얇거나 그림책이어서 금방 봐 버릴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형서점이 책을 파는 곳이라면 반즈앤드노블은 책을 좋아하게 만들어 주는 장소 같은 느낌이다. 일요일 오후를 반즈앤드노블에서 보낸 것 만으로도 충분히 여유 있고 즐겁고 보람차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즈앤드노블은 우리가족이 가장 즐겨가는 놀이터 중의 하나였다. 큰딸인 예나와 놀아주기가 힘에 겨우면 우리는 반즈앤드노블에 가곤 했다. 예나는 여러가지 책을 보면서 놀 수있다. 우리 부부도 시간이 나면 책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책을 파는 사람입장에서는 공짜로 책을 보라고 한다는게 어딘가 수지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즈엔드노블은 누군가가 책을 좋아하게 되고 나아가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책은 결국 많이 팔리게 된다는 장사방법을 쓰고 있다. 많이 가면 사실 결국 책을 많이 사게 된다. 아이도 공짜로 볼 수 있지만 책을 사달라고 조른다. 연속간행물에 재미를 붙여 계속 사달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거기서 시간을 쓰다 보면 책에 욕심이 생겨서 책을 사게 된다. 만약 반즈앤드노블이 그저 책을 파는 곳에 불과했으면 우리 가족은 그렇게 자주 서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도 덜 사보았을지 모른다. 반즈앤노블에서는 저자와의 대화시간이라던가 음악회라던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이벤트를 연다. 최대한 서점을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맨하탄에 반즈앤드노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놀이터로 쓰던 곳에는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서점도 있었다. 여러가지 장난감과 교재를 팔기는 하지만 이곳도 기본적으로는 서점이다. 그런데 서점에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자동차도 가져다 놓고 기어다니는 아이들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양탄자가 깔린 폐쇄된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하니 아이를 보는 아빠 엄마들이 공짜 놀이방에 가는 것처럼 아이들을 데려가서 풀어놓는다. 맨하탄의 아이들에게 서점이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은 노는 공간인 것이다.
미국에서 이런 서점들이 생기게 된 것은 1980년대의 불황 이후라고 한다. 반즈앤드노블은 출판계의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서점을 문화를 즐기는 장소로 탈바꿈 시켜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책읽기를 강조하고 사랑하는 미국인들의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책읽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강조되지만 이따금 다른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가 밀려버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문제집을 풀거나 교과서를 반복해서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독서의 중요성을 잊어버리는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독서의 중요성은 강조된다. 미국에서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교육의 시작이며 끝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선전되어 지고 있는 독서의 장점은 끝이 없다. 독서를 하면 어휘가 늘어서 말을 잘하게 되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독서는 치매를 방지한다. 독서는 IQ를 높여주고 논리적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두뇌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책을 넘기는 행위가 눈의 근육과 몸의 조작능력을 향상시킨다. 그래서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물고 빨게 나온 책들도 있다.
독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좋게 해준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권장되는 독서지도의 방법에는 이런게 있다. 매일 저녁 일정시간을 온 가족이 책 읽는 시간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만 책을 읽는게 아니라 아빠 엄마 누나 동생 할 것 없이 모두 같이 책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독서의 중요성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읽고 난 책의 내용을 서로 말하다보면 가족이 화합하게 된다. 미국 사람들의 독서찬양론을 읽으면 모든 문제를 독서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들은 종종 책읽으라는 말을 들으면 인상을 찌푸릴지 모른다. 마치 잡곡밥이나 콩밥을 먹으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안에서 책이란 오락거리다. 일본인에게 멋진 휴가란 무엇인가를 물으면 아마도 멋진 휴가란 근사한 온천이 딸린 일본식 여관에 가서 목욕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한 상 먹으며 노는 것이라고 말할 지 모른다. 미국인은 아마도 멋진 휴가란 해변으로 달려가서 썬탠을 하는 것이나 혹은 인적드문 산이나 섬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답이 뭐가 되건 그 여행계획의 한 부분은 책이다. 책을 들고 해변이며 산이며 유럽으로 떠나는 것이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이란 미국인에게 가장 보편적인 오락거리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한국인은 어떤가. 한국인에게 멋진 휴가란 어떤 것인가. 한국인의 멋진 휴가에는 책이 포함되어 있는가? 한가하면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뭘 하며 노는가, 뭘 하며 여가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돈이나 명성이나 취업이나 진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해서 그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가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르쳐준다. 미국에서 책이란 일이나 숙제가 아니고 선물이며 놀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책을 읽으면서 여가시간을 가진다. 책이 선물이고 서점이 놀이장소인 미국에서는 시간이 무한히 많이 있다면 책이나 잔뜩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다
이렇게 독서를 강조하고 즐기는 미국에서 책을 쓰는 일이란 대단한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전직대통령 빌 클린턴 같은 유명인이 은퇴를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가 책을 쓰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전직대통령 빌 클린턴은 그의 자서전 한권에 대한 계약금으로 천만불을 받았고 전 미연방준비은행장 앤런 그린스펀은 팔백오십만불에 자서전을 계약했다. 빌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도 팔백만불에 자서전을 계약했기 때문에 클린턴 부부는 자서전으로 최소 천팔백만불을 벌어들인 셈이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롤링은 한해 3000억을 벌고 소설가 스티븐 킹은 한해 450억을 번다. 미국에서 작가란 마치 유명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선수처럼 조명을 받는다. 사방에서 책을 이야기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쓰도록 적극 권장되는 분위기다.
미국정부는 시민들의 읽기교육을 연구하는 데 일찍부터 돈을 투자해왔다. 1960년대부터 미국정부는 독서교육에 대한 연구비를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부터는 학교와 유치원, 도서관에서 유아에 대한 독서프로그램도 널리 시작하였다. 미국은 생후 6개월된 아이의 독서습관을 걱정하는 나라인 것이다.
예나처럼 외국생활을 통해 영어를 익힌 아이로 한국에 돌아가게 될 아이에게 책을 읽는 습관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말하는 영어만 익힌 아이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실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그걸 유지시키기도 어렵다. 실제로 생활에서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버릇을 들여놓으면 영어책은 한국에서도 사줄 수있다. 좋아하던 책은 다시 읽을 수도 있다. 어학 실력을 유지하는데 책읽는 버릇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반즈앤드노블의 서가를 걷다보면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한때 한국의 인터넷 속력이 미국의 그것을 훨씬 넘어설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는 ADSL을 쓰고 있는데 미국은 아직도 전화모뎀을 쓰고 있었다. 한국은 한국의 정보화를 자랑했다. 그런데 정보화라는게 정보가 흐른다는 의미라면 미국의 정보의 흐름은 너무나 엄청나다.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서 흐르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나 책의 형태로 낡은 통로를 통해 흐른다고해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책이 워낙 다양하게 출판된다. 예를 들어 이라크와 전쟁이 벌어지면 이라크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들이 줄을 잇는다. 여러가지 시각에서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고 분석된다. 이런 것은 물론 신문과 잡지에도 반영되어 기사들이 훨씬 많은 자료를 담아 씌여 진다는 느낌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곧 힘이고 돈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필요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곧 그 사회의 경쟁력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환경문제 이야기가 나오면 그저 싸움만 계속 될뿐 기본적인 사실들도 확인이 안된다. 그러니 누가 맞는지 알 도리가 없다. 환경문제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해 일반시민이 잘 알 수 있게 씌여져 있는 책이 널리 읽히는 경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국 책을 번역한다지만 자연적 사회적 상황이 같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훌룡한 책을 쓰는 사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진정한 정보강국이다.
여유가 있는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논다는 것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직은 어색한 풍경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책이란 숙제처럼 마지 못해 읽는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책이 잔뜩 있는 서점이나 도서관은 즐거움이 가득 찬 놀이공간이 아니라 골치 아픈 숙제거리가 가득 찬 곳이다.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아이를 비싼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부모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같이 가서 같이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 교육의 핵심이 책을 읽는것이라고 생각하면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로 생각되어진다. 애초에 교육이란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것인데 사람을 뽑는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되어진다. 책을 읽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시험쳐서 어떻게 쉽게 객관화한다는 것인가. 모든 사람은 같은 책을 읽어야 할까.
기본적으로 책을 사랑하고 소비해서 많은 양의 양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책의 나라다. 80년대에 불황 속에서 더더욱 책을 사랑하게 만들 방법을 찾았던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미국이 문제가 있다고 느낄수록 더 많은 책을 만들고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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