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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스크랩] 1.집이라는 것,,,

by 격암(강국진) 2010. 2. 2.

1.집이라는 것,,,

 

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서울시에서 짓고 있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표어 중에,

집은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입니다, 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가 굳이 표어로 등장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의 무게에 짓눌려 삽니다.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 때부터 내 집 마련이라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게 되고, 간신히 장만하고 나면 이제 평수 늘리기를 해나가야 합니다.

 

저는 집이 부동산인 게 참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不動産은 움직일 수 없는 자산, 땅에 붙박혀 있는 자산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착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서 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구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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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영혼을 지닌 가련한 사람들이 등에 진 짐의 무게에 눌려 깔리다시피 한 채, 길이 75피트, 40피트의 곡식창고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더럽기 짝이 없는 외양간과, 100에이커나 되는 토지와 밭, 목장과 숲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힘든 인생의 길을 걷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중략)

그러나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 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중략)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 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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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이 구절은 젊은 시절 처음 읽었을 때부터 저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뒤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종종, ‘등에 진 짐의 무게에 눌려 깔리다시피 한 채무지막지한 무게의 허망을 밀고 가느라 힘든 인생의 길을 걷는 나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인생 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그 무지막지한 무게로 인해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도 숨이 차고, 두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이고 아파트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녀교육이겠지요. 집과 자녀교육, 한국인들은 이 두 개에 붙들려버린 삶을 삽니다.

 

집이 부동산이 아니면 안될까

집이 不動産이 아니라면 훨씬 덜 무거운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괜시리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되었고 그 뒤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여러 가지 다양한 집이 보이면 모아놓곤 했습니다. 다양한 집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해드리기로 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 몽골여행을 통해 마주하게 된 몽골인들의 집, 게르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몽골인들의 집을 먼저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게르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도시에 있는 게르를 찍은 것이고 대부분의 게르는 초원에 있습니다. 초원에 있는 게르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렇게 대초원 속에 게르 2,3채가 세워져 있습니다. 버스로 한나절을 계속 달려야 새로운 게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게르의 실내 모습입니다.

 

 

 

모두 하얀색인 외부모습과 달리 실내는 색상이 화려하여 놀랐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날리는 환경 속에 놓여있는데도 너무나 깨끗한 내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먼지 하나 없고 바닥은 윤이 날 정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간살이의 거의 전부입니다. 부엌으로 쓰는 게르가 따로 있는 정도입니다.

 

 

 

게르의 천정 중앙에 뚫려있는 채광창의 모습입니다. 낮에 저렇게 열어두면 햇빛이 들어옵니다.

 

이 게르에 사는 가족들과도 만났습니다. 게르의 안주인과 바깥주인이 보여주던 소박하고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태도가 인상깊었습니다. 대초원에 살면서 여유가 많진 않지만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내는 삶의 주인이라서 나오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인 내외는 몇 가지 유제품을 쟁반에 수북이 담아 내왔습니다. 모두가 말젖 한 가지로 만든 것인데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짐을 알고 놀랐습니다. 주인집 아이가 맛있게 먹는 긴 막대모양의 유제품 한 조각을 저도 집어들었습니다. 단맛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제 입맛으로는 도저히 다 먹어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억지로 간신히 삼키면서, 맛있게 먹는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했습니다.

 

 

 

게르를 조립하는 모습입니다. 2,3시간이면 집 한 채를 뚝딱 세울 수 있습니다.

 

2,3시간이면 살 집을 뜯어서 옮기고 척척 새로 세울 수 있다면 집착이 덜하지 않을까

가재도구는 최소가 될 것이고 따라서 소유물이라는 것도 최소가 될 것이며, 삶은 소박하고 가벼울 것입니다.

소로우가 말하듯 물건의 노예가 될 일은 없겠지요.

물건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과의 교감과 호흡을 중시하게 될 것이고, 하늘을 쳐다보고 초원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게 되겠지요.

 

몽골인들에게는 이런 삶, 이런 주거가 그냥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세계 정복을 끝내고 통치하기 위해 말안장에서 내려왔던 쿠빌라이 황제조차도 북경에 궁궐을 지어놓고도 그 안에 주거하는 것이 싫어서 대부분은 옆에 따로 세운 게르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소유물이 너무 많아져버린 우리들, 소유물에 소유당하는 우리는 자연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게르를 지어놓고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대지의 기운과 바람의 기운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양평 어딘가에 게르가 몇 채 세워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보고 싶었었는데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소유물에 치인 삶이 발걸음 내딛는 것을 방해 하네요.

 

 

 

 

 

 

 

몽골의 작은 호숫가에서 마주한 무지개입니다. 무지개가 그토록 강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깨끗한 공기와 대초원이라는 환경이 작용하는 듯 합니다. 실제는 사진보다도 훨씬 더 강렬합니다. 일행들 모두가 넋을 잃고 무지개를 바라보고 찬탄하느라 1시간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쌍무지개(말로만 들었는데, 처음 봤습니다)도 또렷했는데 사진에는 잘 안나왔네요.

 

몽골인들은 우리 한국을 솔롱고스’,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옛날 몽골족들이 바이칼호 근처에 살고 있던 시절, 동남쪽으로 떠나간 일족이 있었는데, 그들이 무지개빛 옷(색동옷)을 입었던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하여튼 몽골 초원의 무지개를 직접 보지 않고는 솔롱고스라는 말의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의 외모는 지저분한 편입니다. 초원에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칭기즈칸은 법으로 목욕하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몽골인들의 외모만을 보고 지저분하다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일행들도 사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깨끗한 게르의 내부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먼지 하나 없고 바닥은 윤이 날 정도였습니다. 먼지가 날리는 초원 한복판이니 더욱 놀랄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시골 마을에 있는 식당의 주방에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그 주방도 너무 깨끗해서 놀랐습니다. 식당에다 햇반을 뎁혀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식당주인이 하는 법을 잘 몰라서 제가 예정에 없이 주방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원래 식당 주방이란 곳이 좀 지저분하게 마련인데 정말 놀랄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중국으로 답사를 많이 다니는 분들이 있었는데 중국과 비교하여 몽골인들의 깨끗함에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몽골인들의 과거 풍습 중에는 마음에 드는 손님에게 아내를 동침시키는 풍습이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누이트인들(에스키모)과 같은 풍습입니다.

 

그리고 이런 풍습이 존재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DNA를 섞어줌으로써 근친교배로 인한 자연도태를 막는 것입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대로 버스로 한나절을 달려가야 다른 게르를 볼까 말까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자꾸 근친교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통계적으로 몽골인들 사이에서 DNA의 근친교배로 인해 생겨나는 유전적 부작용, 가령 저능아가 태어난다 든지 하는 그런 부작용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 정도라면 과거에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동침시킴으로써 이종의 DNA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야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대초원에서 또는 북극지역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내야 했던 몽골인들과 이누이트인들에게는 준엄한 생존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예전에 자신의 썰매를 끌어주던 개가 죽으면 그 개를 잡아먹는 이누이트인들의 풍습을 야만으로 규정하던 서구학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단 한 방울의 낭비와 사치, 감정적인 사치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누이트인들의 척박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의 소산입니다.

 

이누이트인들이 그 개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 개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자신의 썰매를 끌어주던 개가 죽었을 때 조차 그대로 묻지 못하고 슬픔 속에서도 그 개의 고기를 먹어야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조건이 준엄한 것입니다. 그 만큼 이누이트인들에게 있어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처절한 것입니다문명과 문화는 자기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몽골인들의 손님맞이 풍습을 알고 나서, 이를 통해 칭기즈칸의 일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테무친은 출생 자체가 적대적인 부족의 핏줄입니다. 하지만 테무친의 아버지는 이를 전혀 개의치않고 자신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나중에 테무친, 곧 칭기즈칸의 맏아들도 적대 부족의 핏줄이라는 의심을 받는 상황이 생깁니다. 하지만 칭기즈칸 역시 이를 크게 개의치않는 태도로 맏아들로 인정하고 키웁니다. 이런 부분을 읽으며 참 희한하다, 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저변에는 핏줄에 대한 몽골인들의 인식, 우리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비로소 몽골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인들은 색목인을 등용함으로써 제국을 경영했습니다. 다른 인종을 통치계급으로 받아들인 예는 몽골 말고는 유례가 없습니다. 가장 본질적으로 폐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핏줄에 대해서 마저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던 몽골인들은 최고의 개방성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개방성을 통해 최고의 문명을 이루고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몽골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 이전에 이미 최고의 문명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몽골을 야만적인 부족 정도로 깎아내리려고 드는 서구학자들의 의도적인 역사서술 때문입니다.

 

몽골인들의 유럽 정복에 대해 서구의 학자들은 말타기에 능했던 야만적인 기마민족에 의해, 역사의 해프닝처럼 잠시 벌어졌던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서술할 때 몽골인들이 대포를 끌고와서 유럽의 성벽을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은 일번반구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대포소리에 벌벌 떨던 유럽과 몽골의 문명을 굳이 비교하자면 어느 쪽이 우월했는지는 뻔합니다. 전쟁의 기술 말고 생산능력과 생활, 문화, 과학기술 모든 면을 견주어봐도 비교조차 안됩니다.

 

이후 몽골과의 접촉을 통해 화약무기를 알게 된 유럽은 중세를 지배하던 기사계급의 몰락이 생겨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은 북극이나 남극이 아니라 시베리아와 몽골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열을 운반해주기 때문에 바다와 가까운 곳은 그렇게까지 춥지 않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이 춥습니다(대륙성 기후).

 

몽골초원은 겨울에 영하 40~50도까지 떨어진다고 하는군요. 그 곳에서 몽골인들은 게르 안에서 잡니다. 식량과 식수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적이 쳐들어오면 대초원에서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삶을 살아내는 몽골인들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이룰 수 밖에 없겠지요.

 

거기에 더하여 개방성을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앞선 기술과 문명을 흡수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제국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월든의 몇 구절을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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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법칙이 확대되고 더욱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도록 해석되어 그는 존재의 보다 높은 질서를 허가받아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더 명료해질 것이다. (461)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465)

 

 

세일러

출처 :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부동산의 진실찾기
글쓴이 : 부동산선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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