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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자료, 재미난 것들

[스크랩] 50엔 해프닝

by 격암(강국진) 2010. 2. 5.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의 얼굴이 즐거움으로 반짝반짝한다.

무슨 좋은 일 있어? 하니 짤랑거리는 누런 봉투를 하나 내민다. 

경철서에서 돌려받았어!

그 해맑은 기쁨을 어찌 방해할 수 있으랴.

이제야 50엔 해프닝도 드디어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서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사건의 발단은 석 달 전 어느 하교길에 시작되었다.

다른 날보다 유난히 귀가가 늦은 둘째를 혼내려니

이녀석 얘기가 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렀다 오는 것이란다.

사연인 즉은 친구 2명이랑 같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2천엔을 주웠으며 그것을 경찰서에 가져다 주고 왔다는 것이다.

경찰서 초소가 집에서 백 미터 거리에 있는지라 큰일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갔다오는 길에는 다른 데 들렀다 와서는 안 되고 일단 집에 와서 엄마랑 같이 가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물론 집에 가지고 왔다면 우리 돈 2만 원에 해당되는 적은 금액의 돈을 경찰서에 갖다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설득을 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첫째가 경찰서에 잃어버린 물건을 갖다줘서 3개월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습득자에게 그 물건을 돌려준다는 이야기를 하자 둘째의 눈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2천 엔을 셋이서 나누면 얼마냐는 것이다.

아직 부모에게 용돈 한 번 받아본 적 없으며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받는 용돈이 전부인 2학년짜리 녀석에게 있어

뜻밖에 생길지도 모르는 공돈이 무지하게 탐이 났던 게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경찰서에 들어가서 이름을 적고 서류를 작성하면서 경찰 아저씨에게서 습득자로서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이 더더욱 으쓱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50엔 사건은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뒤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혼자서 길에 떨어진 50엔을 발견한 녀석이 그것을 경찰서에 갖다준 것이다.

겨우 500원이 좀 넘는 그 돈을 접수한 경찰 아저씨는 무척이나 난감했던지 엄마랑 다시 한번 경찰서에 들르라고 부탁을 했단다.

이 이야기를 먼저 들은 아빠가 아이를 앉혀 놓고 그렇게 작은 돈은 경찰서에 가져다 주어도 주인을 찾을 수 없고

또 단지 경찰 아저씨를 귀찮게 하는 것뿐이라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아빠 말이라도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듣는 녀석이 웬일인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경찰아저씨가 오라고 했으니 자기는 무조건 엄마랑 같이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이 또 발동한 것이다.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아빠가 공을 내게로 넘겼다.

나는 정면돌파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나는 아주 기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50엔 주웠다며? 어디서 주웠니? 아, 슈퍼 가는 길 건널목 건너기 전 거기?

엄마가 아침에 150엔 흘렸는데 네가 주웠구나. 정말 고마워. 백 엔짜리는 혹시 못 보았니?

아이는 처음에는 미심쩍어했지만 나중에는 백 엔짜리를 찾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단계가 되었다.

나는 50엔만 해도 고마우니 그 중 10엔은 널 주고 또 상으로 과자도 하나 사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경찰 아저씨에게 경찰서에 간다고 약속했는데 못 가게 되었으니 엄마가 잘 이야기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럼그럼 하면서 내심 경찰 아저씨가 그깟일 신경이나 쓰랴 벌써 다 잊어버렸을 거다 했다.

그런데 다음날 평소 웬만해서는 울리지 않는 우리집 전화기에 벨이 울렸다.

버터 바른 판촉요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나이든 아저씨의 꺼칠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 긴장이 되었다.

무슨 일이지?

그런데 경찰서라는 얘기, 지난 번에 아이가 50엔을 주워왔더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황급히 정말 죄송하다, 아이에게는 내가 떨어뜨린 돈이라고 잘 말했다, 신고를 취소해 달라, 번거롭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런데 연신 자기가 더 죄송하다고 하던 이 경찰아저씨는 아이가 주소만 알고 전화번호를 몰라

부모랑 다시 오라고 한 것이었으며, 우리 전화번호를 관리사무소인지 어딘지를 통해 어렵게 알아냈으며,

정말 다시 경찰서에 습득 신고를 하지 않아도 괜찮겠느며, 사실 3개월이 지나 주인을 못 찾으면 이웃 도시에 있는 큰 경찰서로 가서

수령해 가야 하는데 50엔 때문에 거기까지 가야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일 것이며,

그렇게 신고 자체를 없는 것으로 해 주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서 나보다 더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서로가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느라  차마 끊지 못하고 오래오래 인사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50엔보다 훠얼씬 더 들었을 전화비보다도 더욱 우스웠던 것이

이것이 나의 경찰과의 가장 긴 대화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이든 이스라엘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지금까지 경찰하고는 자동차 신호위반이나 과속으로 딱지 떼일 때 잠깐 말을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나라 경찰하고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경찰서는 습득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일주일쯤 후 그 이웃도시 경찰서에 가서 내 핸드폰을 찾아온 경험과

이번 50엔 사건을 두고 얘기하자면 역시 일본은 시스템의 나라이다.

50엔이라도 습득물 신고를 하면 모든 서류작성을 다 해야 하고 또 유예기간 이후에는 엽서로 찾아갈 것을 통지하고 절차대로 돌려주어야하는 것이다.

그 엽서의 우표값만 해도 50엔이다.

2천 엔조차도 주인을 찾을 수 없을 거라면 괜한 짓을 했다고 코웃음을 쳤던 나를 보라는 듯이

2천 엔을 주웠던 아이들은 각각 6백얼마씩의 돈을 돌려받았고 또 습득물을 신고하고 돌려받는 사회 공부를 제대로 했다.

50엔을 주워서 경찰에 갔던 아이를 황당해 하던 나를 보라는 듯이

경찰아저씨는 정당한 절차를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더이상의 수고를 끼치지 않게 해 줌에 대해 감사하면서

미처 보이지 않던 일본 사회를 제대로 내게 보여주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 어딘가에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모양이다.

다음에 또 50엔을 주워온다면 틀림없이 경찰서에 못 가게 열심히 말려야겠지만 왠지 싱긋 웃음이 남는 해프닝이었다.

 

 

 

 

 

 

출처 : 아무나 못 보는 일본 이야기
글쓴이 : 길 위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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