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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자료, 재미난 것들

[스크랩] 우리 아이 내가 지킨다, 어머니 순찰대

by 격암(강국진) 2009. 12. 16.

 

 

 *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등교길입니다. 저기 오늘도 순찰반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걸어오시네요.

 

 

커다랗고 검은 가방을 지고 순찰 중이라는 노란 완장을 한 쪽 소매에 달고 평생 쥐어볼 일 없었던 넝마주이용 집게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출발합니다. , 한 쪽 손에 들려있는 커다란 비닐봉투를 잊어버렸군요. 아주 중요한 물건이지요. 가방 속에는 여분의 비닐봉투, 일지, 우산, 손전등, 비상약품 등 온갖 비품이 들어있습니다. 대부분 필요 없지만 그래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준비성이 뛰어난 일본 사람들의 성품이 다 보이는 것이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얼마 전까지는 둘이 함께 했는데 너무 순번이 자주 돌아온다고 누군가 불평을 했는지 이번부터는 혼자서 순찰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출발하는 시간에 맞추어 나는 아파트 단지를 출발합니다. 정확히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를 건넙니다. 눈을 번쩍이며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집어 비닐봉투에 집어넣습니다.

 

깨끗해 보이는 거리인데도 쓰레기에 집중해서 걷다 보면 뜻밖에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눈에 띕니다. 언제나처럼 담배꽁초가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담뱃갑도 많이 있네요. 일지에 담뱃갑이 많았음이라고 써야겠습니다. 영수증도 구겨진 채 떨어져 있고 사탕 봉지도 있습니다. 가끔은 캔이나 패스트푸드 점용 음료수컵도 뒹굴고 있습니다. 그래도 슈퍼마켓용 비닐 봉투에 하나 가득 차려면 어림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신문배달 전표가 떨어져 있어 신문배급소에 갖다 준 적도 있고, 부러진 우산이나 성인만화 잡지 같은 왕건이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언젠가는 다른 분이 순찰을 나갔다가 그 전 날 없어진 예나의 자전거가 그 길 위에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집에 전화를 해 준 적도 있습니다. 오늘은 또 뭔가 특별한 게 없으려나 하면서 나무 밑, 덤불 위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집게로 집어 봉투에 넣습니다. 문득 쓰레기에만 집중해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집니다.

 

1킬로미터가 좀 넘는 등교길. 아파트 단지 앞 작은 2차선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고, 커다란 육교 하나를 건넌 다음부터는 이화학연구소의 외곽을 따라 건널목 한 번 없이 쭈욱 걸으면 바로 학교입니다. 잘 포장되어 있고 자동차가 달려도 될 정도로 넓은 길이어서 아이들이 뛰고 장난치며 다녀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여서 이만하면 등교길로 괜찮은 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길이 너무 한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집까지 다시 돌아오는 동안 그 길을 지나간 것은 내 뒤에서 나를 앞서간 자전거 두 대, 마주 보고 달려와 내가 청소해 놓은 길을 달려간 자전거 두 대뿐입니다. 시간으로 보면 20분쯤 되는 사이입니다. 이게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길 위에도 연구소 건물이 하나 생겨났고 건너편에는 세무대학교가 생기는 등 10년쯤 전에 비하면 비할 수 없이 길이 밝아진 거라구요. 10년 전쯤 치안이 사각지대로만 보이는 이 길을 학부모들이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추어 순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길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학부모 순찰대는 쓰레기 청소반을 겸하여 꾸준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한 달 반에 한 번 정도 있는 순번 때가 되면 조퇴를 받아서라도 순찰대 임무를 불평 없이 해내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기도 했습니다. 사실 예나와 경호가 다니는 초등학교만 이렇게 좀 외진 곳에 있지 와코시의 나머지 학교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학부모 순찰대는 여전히 잘 가동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자전거 뒤쪽에 순찰 중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 팻말은 지역 자치회에서 학부모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공감대가 아주 넓게 퍼져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또 학기 초가 되면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자신의 등하굣길에 있는 어린이보호의 집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편의점, 음식점, 쌀집 할 것 없이 어린이보호의 집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있는 집이라면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 때 언제든지 뛰어들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어차피 위험하다면 아무데나 들어가 도움을 요청할 일이지 그런 팻말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하겠지만 상황 판단이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구나 당황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런 사소한 보호장치들은 때로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구소 철책 따라 걷는 외진 길이라 30분을 넘게 걸어 집까지 오는 동안 '어린이 보호의 집'은 레스토랑 하나와 슈퍼마켓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집에 거의 다 와서인지라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등교길이 참 좋습니다.

 

우선 하루에 두 번 30분 정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좋고, 넓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마음대로 뛰고 장난치며 걸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철책 안의 숲에서 비어져 나온 풀과 나무들로 어느 정도 시골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집에 오다가 사마귀의 알을 발견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그 외에도 여러 벌레들, 풀들, 아침에 내린 이슬들, 서리들, 심지어는 도마뱀(아주 가끔은 진짜 뱀까지도) 등을 매일 만나고 다닌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시골 같은 느낌이 나네요. 사실 그 길에서 5분만 걸으면 도쿄인데 일본은 이렇게 도심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자연이 한껏 살아 있다는 게 큰 장점이랍니다.

 

                * 아이들은 언제나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합니다. 근처에 횡단보도도 있지만 반드시 저기 보이는 육교를 건너야 하지요.

                   이용하는 사람은 적지만 대부분의 육교에는 자전거도 옮길 수 있게 경사길이 있답니다 .

 

 

살면서 이렇게 쓰레기에 집중하며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픽 웃어봅니다. 너무나도 깨끗해 보이는 일본의 거리, 가끔 자조적인 목소리로 '국민성이 달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쓰레기를 주워모으다 보니 버리지 않는 것보다 이렇게 치우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부자이니 거리 청소를 맡은 공공근로자들도 많겠지만 학교, 마을, 클럽 등에서 하는 이런 자발적인 청소 역시 무지하게 많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너무 단면만 보았던 것이 아닌지요?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봉지 속에 들었던 쓰레기 중 패트병, 캔류는 분리하고 나머지는 묶어서 쓰레기 수거함에 놓아두었습니다. ‘오늘은 쓰레기가 많지 않았슴. 다만 보통때보다 담배갑이 많았슴하고 일지에 적어 둡니다. 하지만 내일 담당자의 집에 바로 들러 가방을 가져다 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예나가 돌아오자마자 귀여운 예나, 엄마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하며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가방을 떠맡깁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옆 아파트로 예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에 신이 나서 달려가는 동안, 엄마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도 무사히 완수한 임무에 혼자 흐뭇해 합니다.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 순찰반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예나에게도 알리고 생색을 좀 내겠다는 것이 공식적인 취지이지만 사실은 귀차니즘의 발로에 다름아니지요. 하지만 이럴 때 가방 주러 가서 다른 학부형들이랑 얘기도 좀 하고 해야 더 친해지는데 그게 참 여엉 잘 안 되네요, . 게으른 엄마는 어디를 가도 문제가 많습니다.

출처 : 아무나 못 보는 일본 이야기
글쓴이 : 길 위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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