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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일본의 노인들이 사는 법

by 격암(강국진) 2010. 2. 15.

와코시의 생활에서 노인들에 대한 인상은 큰 한부분을 차지한다. 일단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가게중에 노인들이 하는 가게가 많다. 예를 들어 와코시에는 우리가 잘가는 우동집이 하나 있다. 안그래도 우동을 좋아하는 경호가 가장 좋아하는 우동집으로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올라치면 자기가 안내하겠다며 아는 척을 하는 곳이다. 이렇게 경호가 마치 자기 가게라도 되는 양 소개하는 이 우동집은 중앙의 조리공간을 제외하면 4명이 앉는 탁자하나와 조리공간을 둘러싼 카운터 테이블이 있는 작은 가게다. 대개 늘어진 전등 아래서 카운터 테이블에 앉아 주인을 마주보고 우동을 먹는다. 가격표를 보니 우동들이 늘어선 가운데 진짜김치라는게 있다. 김치만 주는데 430엔이나 한다. 한국에서는 공짜로 끼워주는 김치가 여기서는 엄청나게 비싸다. 


주인 할아버지는 개량한복 같은 옷을 입고 열심히 막대로 우동을 휘젓는다. 한쪽에서는 할머니가 튀김을 만든다. 테이블 한 구석을 보니 잡지가 복사되어 붙여져 있다. 몇 년전엔가 어디 잡지의 가게 설명에 나온 모양이다. 일본 사람들은 먹는것에 관심이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사람이 먹는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모두 먹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까. 


이 가게는 우동 맛이 좋고 깨끗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네 단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다. 입구도 작고 어디 광고도 하지 않으며 역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할아버지 우동맛을 아는 동네 사람들이 꾸준히 가게를 찾는다. 가게문도 점심때와 저녁때 몇시간만 할뿐만 아니라 그날 팔 우동을 다 팔면 바로 문을 닫아버린다. 


일본은 한국보다 체인점이 발달된 나라다. 한국에서는 대형할인마트가 소형슈퍼들을 죽인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지만 일본에서는 대형할인마트는 물론 라면집이나 술집, 우동집, 패밀리레스토랑, 갈비집등 여러가지 전국적 체인이 워낙 많아서 역전앞의 풍경은 어느 동네를 가나 비슷하게 느껴진다. 같은 가게들이 똑 같은 모습을 하고서 늘어서 있다. 대형체인은 무엇보다 가격이 싸고 가격에 비해서는 품질이 좋다. 중앙에서 제품개발과 품질관리를 하니까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체인이 아니면서 살아남는 방법은 둘중의 하나다. 하나는 압도적 품질로 높은 가격이면서도 그만한 가치를 한다고 인정받는 것이고 또하나는 단골중심으로 영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네 사랑방 같은 가게다. 몇몇 사람들은 별일이 없어도 거기와서 죽치고 떠들다가 간다. 


우리동네에는 할아버지가 주인인 가게가 몇몇 있는데 위에서 말한 우동가게를 제외하고도 작은 바도 그렇고 커피숍도 그렇다. 이 가게들의 공통점은 모두 단골이 먹여살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와코시가 한국의 명동 같은 시부야도 아니니 낯선 사람이 얼마나 오겠는가. 동네 단골이 충성스럽게 찾지 않으면 가게가 버틸리가 없다. 


빵모자를 쓰고 홀쭉한 뺨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조끼를 입는 날이 많은 할아버지는 매우 허름한 바를 한다. 그러나 가격이 매우 싸고 술한잔 시켜놓고 몇시간 떠들어도 뭐라하지 않는 곳이라 가끔 가보면 퇴근할때마다 들리는 것 같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다. 와인한잔에 5백엔이며 과자는 공짜로 준다. 사람들은 5백엔짜리 와인 한잔 시켜놓고도 마냥 떠들고 있다. 불행히도 내가 일본어를 하지 못해서 크게 어울릴수는 없었지만 누구 한사람 들어올때마다 서로 아는 척 하는 보면 서로 다 잘아는 사람들이다. 이 가게엔 서빙하는 예쁜 아가씨가 한명 있기는 하지만 이 할아버지가 없으면 같은 가게라고 할 수가 없다. 허름한 가게가 빵모자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 덕분에 뭔가 있어보이는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이 난다.

 

언제나 스카프를 히끗히끗하고 헝클어진 머리에 두른 모습이 약간 히피같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키트리라는 예쁜 커피숍을 한다. 커피숍은 한쪽에는 카운터 테이블이 있는 좌석이 반대편에는 작은 테이블이 중앙에는 신문들이며 잡지들이 널려있는 큰 테이블이 하나 있다. 들어가면 언제나 작은 컵에 얼음물을 주고 테이블 한쪽에는 공짜로 먹는 초콜릿이 있다. 직접 만든 메뉴한켠에는 나름대로 그달의 소식 같은 것도 써놓았다. 


이 가게 역시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회합장소로 아무래도 팔고 있는게 커피가 아닌 것 같다. 노인부부의 주된 업무는 단골들과 이런 저런 말상대를 해주는 것이다. 혼자와서 카운터에 앉아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떠들다가 가는 사람이 많다. 일본어를 모르니 그 사람들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별별 동네 작은 일까지 들고와서 떠들고 간다. 커피값은 일종의 상담료로 지불되는 것같다. 프로 축구하는 날이면 가게에 깃발을 걸어놓고 같이 축구를 본다. 


나는 종종 이 커피숍에 가서 홍차를 시키고 책을 보고는 했다. 홍차는 주전자로 줘서 세잔쯤을 마실수 있다. 사실 다즐링 홍차가 500엔이니까 엄청 비싸다. 그러나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 할아버지들 가게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할아버지들 인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품질이 뛰어나서다. 우동도 칵테일도 커피도 가격과 품질을 고려하면 돈이 아깝지 않다. 커피잔을 커피를 붓기 전에 데우고 홍자 주전자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천으로 감싸주고 하는 등 여러가지 세심함이 느껴진다. 마셔 보면 그냥 커피가 아니라 역시 전문가의 커피다. 물론 맛도 매우 훌룡하다. 


내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우리동네는 허름해 보였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정이 든다. 바로 이 할아버지 가게들 같은 가게 때문이다. 이 가게들은 전국어디에 가도 없고 와코시에만 있다. 체인점은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로 있을 터이니 와코시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종종 말하는 것은 이 허름한 할아버지 할머니 가게들이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일본의 훌룡한 자산이다. 언젠가 제주도의 호텔 지하 커피숍에서 5천5백원짜리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커피메이커에는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커피가 끓고 있었고 가지고 가겠다니까 담아주는 종이컵은 싸구려 종이컵이다. 이래선 왜 이런 커피를 비싸게 받는지 모르겠다. 자판기 커피나 다름이 없다. 어제부터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 듯한 초보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동 커피메이커로 왕창왕창만들어 내는 커피를 비싸게 판다. 이래서는 아무리 그 아가씨가 젊고 예뻐도 좋은 인상이 생길 수가 없다. 


내가 제주도를 생각할 때 마다 이 호텔과 이 커피숍이 생각이 난다. 한쪽은 이름없는 작은 소도시의 동네 작은 커피숍이고 동네 아저씨 아줌마가 오는 곳인데 전문가의 느낌이 나고 한쪽은 국제적 관광지의 관광호텔인데 이렇다. 나라와 나라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이지만 정성과 전문성이 깃든 것을 보면 깊은 인상이 남는 법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격이 비쌀때는 그렇다. 호텔을 운영하려면 그정도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것이다. 정성들인 파전하나 수정과 한잔이 우리나라의 인상을 결정할수도 있다. 우리도 인상좋고 친절하며 전문성이 있는 노인들이 있다면 그쪽이 젊고 예쁜 아가씨보다 좋을 것이다.   


한국도 종종 그렇기는 하지만 일본에 살다보면 작은 자기 가게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한번은 연구원들과 식사를 하는데 나는 연구원을 그만두고 라면집을 차리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커피숍을 내고 사는게 꿈이라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일본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이란 은퇴해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노인이 하는 가게들이란게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맛있는 커피 한잔이라도 뭔가 세상에 쓸모있는 것을 만들며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 것이다. 은퇴해서 골방에서 쓸쓸하게 지내거나 소비지향적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훌룡하다. 


가게를 하는 노인들에 대해 말했지만 그밖에도 노인들은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나무를 정리하는 작업이나 거리를 청소하시는 분들을 보면 노인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젊은 사람들이 하는 톨게이트 수금원 같은 것도 일본에서는 대개 노인들이 많이 하는 것 같다. 일본은 노인이 많다. 숫자도 숫자지만 노인들이 활발히 돌아다니고 일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인상이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는 식으로 말할수도 있고 그럴수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이밖에도 노인들을 많이 볼수 있는 곳은 역시 공원이다. 우리집 앞의 공원에서도 노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운동삼아 소일거리 삼아 노인분들이 나와서 산책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나는 한때 아침마다 이 공원에 가서 달리기를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노인분들을 보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도 그렇긴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취미생활에 열심이며 특히 노인들의 취미 생활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취미의 폭도 넓다. 아침에 나가면 언제나 같은 시간에 나와 트렘펫을 부는 노인이 있다. 나는 음악가가 아니니 그 실력을 평가할 정도는 아니나 듣기는 좋다. 가끔은 이노인의 연주에 합주가 붙는 경우가 있다. 다른 악기를 든 노인이 나오거나 노래를 부르는 노인분이 합류한다. 노래는 아무래도 평가하기가 더 쉽다. 굉장한 실력이다. 나는 놀래서 달리는 걸 멈추고 노래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한번은 공원에서 한무리의 할아버지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할아버지들은 종이비행기 만들기 동호회 회원들이다. 어찌 만들었는지 한번 날리면 아예 찾으러 갈수 없을 정도로 멀리 그리고 높게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성공했다면서 박수를 친다. 언젠가 한번은 노인들의 수채화 동호회를 본적도 있다. 공원 여기저기에 앉아서 수채화를 그리는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들이 사생대회 나온 것 같다. 


커피를 만들고 재즈를 듣고 그림이나 음악에 조예가 있고 종이 비행기를 만들거나 무선 배를 만들며 즐기는 노인분들은 멋져 보였다.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형과 아빠를 보고 할아버지를 보고 아 사람은 이렇게 커서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할것이다. 실은 아이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항상 자기보다 앞서 나이들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아 우리는 이렇게 되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근사한 노인이 많은 나라는 약간은 국민들의 마음이 편안한 나라가 아닐까. 저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생각할수 있는 노인들이 많다면 나의 노년도 나름대로 꽤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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