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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가족과 공동체에 대해 아내와 나눈 대화

by 격암(강국진) 2011. 8. 26.

저는 공동체 생명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런 구체적 예로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도 핵가족을 말하는 경우도 있는가하면 3대나 그 이상의 친인척을 포함하는 가족 공동체를 말하는 경우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런 집단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가 형식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개는 우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단이 그저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그 집단은 서로 돕고 의지할수 있는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도움이 안되거나 흔히 차라리 없는것만도 못한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되버리기 쉽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존재할수 있는가. 결국은 덕이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리더는 여러모로 서로 굉장히 달라서 어떤 경우는 독재고 어떤 경우는 민주주의고 어떤 경우는 그런 리더가 집단안에 존재하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민감한 것이 아니고 서로 돕고 살자면 일정한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한 것이죠. 


리더라고 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리더의 고마움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를 리더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집단을 떠올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사람이 만약 없어진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서로 만나지 않게 될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미워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뢰의 정도가 틀리고 관계가 틀립니다. 


리더는 리더처럼 가장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사람이 연결고리고 이사람이 여러가지 분란이 생기면 상호조절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3대로 이뤄진 가족집단에서 종종 이역할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맡게 됩니다. 가족들이 모이고 식사하고 이런저런 도움도 주고 받고 연락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고리는 한사람에게 크게 달려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한사람은 무슨 명령을 내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없지만 단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 집단내부의 질서를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친구집단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선후배 모임이나 직장모임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요. 


이것만이라면 별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아내와 한 이야기의 핵심은 형식적으로는 수없이 많은 집단이 있지만 요즘은 이 중심이 와해된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장내지 리더역할을 맡아야 할 사람이 그럴 능력이 없거나 그럴 의사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같습니다. 사실 이것자체는 누굴 비판하고 할 문제는 아닙니다. 능력이 안되고 힘에 겹고 해서 그렇게 못하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수 있겠습니까. 


다만 모두가 개인이 되고 말때 삶은 훨씬 더 힘겨워 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인것은 맞는것같습니다. 이렇게 리더는 없는데 다른 리더가 옹립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면 형식적으로는 집단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집단이 없습니다. 내부적 질서유지가 안되니까요. 그럼 삐걱거리고 사람들 시간과 돈만 낭비하게 되기 쉽상입니다. 


리더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신뢰가 있어야 일을 해나갈수 있지만 신뢰는 또한 덕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덕이 있다라는게 뭐냐는 것이죠. 리더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통찰력이 있고 문제해결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한다고 인정받을 수있어야 합니다.  문화적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에게 있어서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일관성입니다. 심판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더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사람이 좀 능력이 떨어져도 일관되게 오래 그렇게 살면 그 나름의 부채와 질서가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안지켜지는 새로운 법보다 좀 비효율적이라도 반드시 지켜지는 옛날법이 훌룡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핵심중의 핵심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의 중년이하세대는 이 일관성문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리더나 가장의 역할을 할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대부분 위선자라는 말입니다. 일관성이 없는게 위선자니까요.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저는 세대를 비교해서 노년세대가 더 도덕적이라든가 능력이 좋다고 말하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노년세대는 더 보수적 질서를 지키면서 살았던 반면 -그것이 심지어 도덕적으로 나쁠때조차도 일관성은 있다는 말이죠- 중년이하세대는 일관성이 크게 떨어져서 어떻게 말하면 항상 애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못하죠. 나이들어도 실질적으로 부모밑에서 밥얻어먹는것처럼, 부모가 정해주는데로, 부모에게 기생하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꼭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돈은 잘버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그들은 리더가 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뢰가 안가죠. 책임지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리더라는건 정말 혼자일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 혼자 판단을 내릴수 있는 능력입니다. 떼는 쓰지만 결국 잘 안되면 부모가 어떻게 해주겠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리더가 아닙니다. 


거듭말하지만 저는 보수적 질서를 옹호하거나 비교적 젊은 세대를 비난하는게 아닙니다. 이런 현실이 누구때문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런 경향을 주관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며 그결과 사방에서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실질적으로 붕괴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로 새로운 공동체들이 더 행복한 삶을 도울수 있게 만들어지기를 바라지만 그런 공동체는 잘 안만들어지는 가운데 기존에 있던 공동체들도 하나둘씩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제일 흔한게 할아버지세대의 노쇠나 사망입니다. 학연이니 지연이니 하지만 그런 집단들도 이젠 잘 안됩니다. 그게 좋은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그말도 맞습니다. 문제는 대안도 없다는 점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고독한 개인으로만 채워져 있는 사회도 대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형제들인데 20년간 본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럼 무슨 원수졌나 이런 생각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남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세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강한 고리가 되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유지할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한국과는 달리 가족윤리가 약화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그런일이 쉽사리 일어나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인가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을때 시비만 붙기 쉬워서 오히려 사람들은 서로를 피하고 여러가지 핑게를 대고 모이는걸 꺼려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과연 지금의 6-70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들의 아들딸들은 얼마나 자주 서로 만나고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깊게 유지하고 만날까요. 제사라는 문화도 지금의 중년은 얼마나 유지할까요. 손자세대에는 어떻습니까. 제사가 대세가 아니게 되면 과연 가족끼리 만나는 문화가 얼마나 유지될까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여기서 특별히 가족윤리의 소중함을 설파하는게 아닙니다. 대안적 공동체라도 있다면 그나마 좋지만 그렇지도 않아서 결국 모두가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는것은 아닌가 하는것입니다. 성미산 지역 공동체같은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한국의 지역공동체는 대개 갈수록 약화만 되어가는 추세입니다. 


서로 같이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는 것은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를 꾸미고 가꾸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서로 같이 살아가는 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저 남을 배려하고 살피고 그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그런 보편적 윤리를 넘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개성을 찾지 못하고 그저 착한 사람에 지나지 않다면, 스스로 리더가 될수 있는 능력을 배우지 못한다면 같이 살아갈수 없습니다. 


과거의 공동체적 질서는 무너져 가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새로운 한국적 질서를 만들어낼 공동체 윤리도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결국 개개인은 더욱 외로워집니다. 지금 한국이 역대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이 외롭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지키고, 자기를 찾고, 가치판단을 하고,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뛰어넘고, 손님을 대접하되 자신이 주인임을 잊지 않는 것을 배우는 일이 오늘날 매우 절박합니다. 한국은 형식적으로는 물론 아직도 존재합니다만 알게 모르게 많이 이미 텅텅 비어가는것같습니다. 철학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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