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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생태마을, 유지가능하게 살아가는 철학

by 격암(강국진) 2012. 1. 31.

생태도시, 생태마을은 통상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수 있는 도시나 마을을 말합니다. 이말은 언뜻 들으면 비현실적인 낭만주의로 들리기 쉽거나 혹은 자연보호 같은 단어처럼 자연에 좋은 일을 좀 하자 같은 말처럼 들리기 쉽습니다만 저는 이 단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생태마을이라고 원시마을은 아니다


사실 자연보존이나 자연과의 조화같은 말을 그냥 있던대로 원시적으로 불편해도 그렇게 살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은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말자체가 좀 오만한 것입니다. 인간은 마치 자연의 일부가 아닌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벌이 만든 벌집은 자연의 일부인데 인간이 만든 아파트는 자연이 아닐까요? 


사람이 살면서 자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먹고 마시고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저는 내부적으로는 억눌린 욕망때문에 꾹참고 있으면서 주변 자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상황, 예를 들어 모기가 너무 많아서 모기에 물려 괴로운데도, 자연을 보호한다면서 그냥 모기에 물리는 상황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생태마을이라고 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태건 비생태건 일단은 행복하자고 하는 것이죠. 또한 나무가 많이 있으면 생태고 그렇지 않으면 생태가 아니라는 생각같은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생태마을도 매우 인위적인 것입니다. 다만 종류가 좀 다른 것이고 철학이 좀 다를 뿐인데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는 생태마을이란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상태에서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인간의 욕망대로 살아도 환경을 현상태로 유지하면서 살아갈수 있는, 즉 유지가능하게 살아가는 마을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남극에 하와이같은 환경을 유지한 천연 숲을 만들어 유지한다면 이것은 나무도 많고 자연처럼 보인다고 해도 전혀 생태마을이 아닌 셈입니다. 엄청난 유지비가 들어갈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디선가에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죠. 


비생태적 마을의 문제점


생태마을과 비 생태마을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유지비용에 있습니다. 나는 생태마을에 대해 다른 정의가 있다고 말하시는 분도 있을 법한데 그런 분이 있다면 저는 이글에서 제가 말하는 생태마을은 이런 것이며 이 정의에 반대하는 분이 있다면 이름은 뭘로 불러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이글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지비가 많이 드는 마을과 유지비가 안드는 마을의 차이를 우리가 사는 방식자체에 까지 연결해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럼 유지비가 적게 들면 무조건 좋은 마을인가.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아무런 노력과 노동도 없이 저절로 행복하게 살수 있는 그런 궁극의 생태마을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유지비를 많이 쓰건 적게 쓰건 정도의 문제인 셈입니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마을이란 어떤 것인가. 좋은 예는 현대도시고 아파트 단지입니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도시는 기본적으로 환경을 무시합니다. 환경과 싸워 이기려고 합니다. 물이 부족하면 댐을 만들고 산이 가로막으면 산을 폭파해서 없애는 식입니다. 


이런 마을은 어떤 의미로 복잡한 컴퓨터나 제트기 같은 기계를 연상시킵니다. 어떤 의미로 매우 뛰어난 성능을 보여줍니다. 매우 풍요롭게 살수 있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능이 뛰어나고 복잡할수록 고장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먼지가 들어가고 제트기에 오염물질이 들어가면 곤란하지요. 고층아파트를 만들면 엘리베이터 같은 것때문에 전기세도 많이 나갈뿐만 아니라 거기에 모여사는 사람들에게 물과 식료품, 교육기관과 오락시설등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주변 시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것중의 하나만 고장이 나도 도시나 아파트 단지는 지옥이 됩니다. 수도나 전기가 끊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쓰레기를 치워가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살수 없는 지역이 됩니다. 4대강공사때문에 구미에 단수가 되어 화장실에서 물을 못쓰자 사방이 똥투성이가 되었었다는 뉴스가 작년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그래서 유지비가 많이 듭니다. 고장이 나면 절대 안되는 부품이 아주 많으니까 안정성보장을 위해 비효율적이 되는 것입니다. 큰 승용차는 빠르고 편안하지만 경차보다 에너지효율이 안좋고 자전거와는 비교할수 없죠. 결국 복잡한 기계로서의 마을이나 도시는 유지비가 많이 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게 좋기 때문에 우리는 복잡한 기계를 씁니다. 걸어가는 것이나 자전거를 타는게 에너지 효율이 좋고 야채와 곡물을 직접 먹는것이 풀을 소에게 먹여 소고기를 먹는것 보다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스테이크를 먹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때로 좋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선택은 몇몇경우 예를 들어 갑자기 유가파동이 오거나 자기몸에 뭐가 좋은지 모르고 막 기름진 것만 먹다가 어느날 쓰러지는 일이 있을때 나쁜 것이 됩니다.  결국 복잡하고 효율낮은 생활방식, 주거방식이 선택되는 것은 일종의 투자입니다. 많은 유지비용을 내는 큰 투자를 해도 더더욱 댓가가 크다면 합리화 할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보같은 선택이죠.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고비용의 비생태주의적 생활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화 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선진국으로 가면 한국같은 나라보다 오히려 훨씬 생태마을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는 느낌입니다. 선진국은 사회적 안정성을 달성했기 때문에 보다 예측가능한 삶을 살게 되고 경제성장의 속력은 느려집니다. 그말은 뒤집으면 마구 투자해서 큰 돈벌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보다는 버는 이상으로 어떻게 쓰는가를 걱정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도로도 투자고 공항도 투자입니다. 모든게 시간과 에너지와 돈의 투자지요. 제대로 문명적인 것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뭐든지 마구 지어대면 다 쓸모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설투자가 일어난 선진국에서는 이제 투자한 것들이 요구하는 유지비용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본은 많은 돈을 토건에 쏟아부었는데 지금 그렇게 만들어 낸 구조물들의 유지비용때문에 지자제들이 파산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 이야기할 것도 없이 강원도에서 동계올림픽때문에 리조트를 건설했는데 유치가 안되니까 유지비용때문에 야단이었죠. 서울시나 경기도 인천등지만해도 경인운하가 있고 청계천이 있으며 세빛둥둥섬이 있고 모노레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으면 무조건 좋을줄 알았는데 유지비만 나가고 쓸모가 없는 겁니다. 인천의 모노레인은 운영도 못해보고 철거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도 벌써 어느정도 살만하기 때문입니다. 63빌딩지을때처럼 큰거 하나지으면 무조건 화제가 되서 돈벌이가 되는 때와는 다릅니다. 유지비가 많이 들면 수지를 맞출수가 없습니다. 


유지비가 나가는데 유지비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일본의 계획신도시에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파트도 유지관리비가 필요한데 사는 사람들이 가난해지거나 해서 유지비를 안내면 유지보수가 안되니까 더 살기 나빠지고 그럼 더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빈민촌이 됩니다. 즉 비생태적 마을은 수도가 끊긴 구미처럼 유지비를 낼수 없는 상황이 되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경제성장의 한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나 중국같은 나라가 어느정도 살기 시작하면 경제피라미드의 맨 위에서 호의호식하는 것은 꿈꾸기 힘듭니다. 즉 경제저성장이 불가피 합니다. 자 그럼 이런 시대를 맞이했을때 고비용 구조를 만들어 놓은 도시들과 마을들은 어떻게 될까요. 한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환율이 폭등해서 기름값이 엄청나지면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이 도시를 탈출했습니다. 이미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중에는 아이엠에프터졌을때가 참좋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은 이미 얼마전부터 수도권에서 인구가 유출되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실은 도시의 삶이 이미 견디기 나빠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저성장시대가 오면 이것들이 어떤 족쇄가 될까를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고비용구조가 무조건 좋은거라고 말할수 없는거 아닐까요? 


생태마을은 그럼 어떤 것인가.


지역마다 주어진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생태마을이다라고 일률적으로 말할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정의대로라면 궁극적 생태마을에서는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수 있는 마을입니다. 비용이 0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궁극은 비현실적이겠지만 말이죠.


생태마을 이야기를 하면 마을 가꾸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뻔합니다. 유지비용이 안들게 마을이 아름답다면 동네를 거닐고 산책하고 즐기는 것만으로 오락비용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부산출신의 아내는 예전에는 바닷가에서 홍합을 얼마든지 캐서 그대로 삶아먹곤 했노라는 말을 합니다. 돈 안내고 공짜로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음식점가서 별로 좋지도 않은 것을 비싼 돈내고 사먹지요. 집뒤가 산이고 앞이 강이라면 산을 산책하고 강변을 산책하면서 매일의 피로를 푸는데 돈이 들리없습니다. 이런 차이인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사는 분들은 자신들은 야채값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동네를 한바퀴 돌면 아는 사람들이 시장에 나갈 상품으로 삼기에는 모양이 이상하지만 먹는데는 문제가 없는 야채들을 나눠주기 때문이고 이도 아니면 텃밭에서 야채가 나기 때문입니다. 


생태의 개념은 나무같은 자연환경만 있는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것이상이 필요합니다. 공연이나 강연같은 문화 활동이나 교육도 저절로 이뤄지면 돈이 필요없겠지요. 문화센터에 가면 공짜로 교육을 시켜주고 거리에서는 공짜 공연이 널려있으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식을 공짜로 나눠주는 그런 마을이야 말로 생태마을입니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자라서 어른이 되는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유지비가 없습니다. 미국도 자원봉사가 많지만 일본에도 많은 자원봉사가 이뤄져서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줍니다. 그런 부분이 강해야 진정한 생태마을이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멋진 카페를 찾아서 돈내고 차를 마시거나 펜션에서 바베큐를 먹기 위해 돈을 냅니다. 마을의 집이 모두 예쁘고 아름답다면 따로 카페가 크게 필요없고 바베큐를 해먹는 펜션이 필요할리 없습니다.  공동관리하는 숲이나 바다의 공원이 아름다우면 거기로 가서 바베큐 피크닉을 갈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생태마을과는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일본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청계천은 한해에 백억씩 써서 돌리는 인공하천입니다. 돈이 없으면 할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서울같은 도시야 그렇다고 해도 지방의 도시들도 유지비가 들지 않는 다는 의미의 생태마을로 진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골의 자연도 파괴된 곳이 워낙많아서 부산같은 곳 주변보다 못한 곳이 많습니다. 노인만 남은 시골은 결국 천천히 죽어가는 마을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갑작스런 수출문제나 경제문제가 닥치면 한국인의 삶의 질은 충격적으로 떨어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아이엠에프를 통해 배웠습니다만 10여년동안 한국이 충분히 바뀌지는 않은 것같습니다.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대교도 교통량부족으로 해마다 엄청난 돈을 지자제에서 민간운영업체에 보조해 줘야 합니다. 4대강 운하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엄청난 유지비용을 요구합니다. 예전처럼 무조건 도로깔고 다리놓고 시멘트로 바르면 그걸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당장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태마을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도 모릅니다. 답이 있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메뉴얼화 시킬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형태는 무한정할 것입니다. 규모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태마을은 당신만이 알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마을은 우리가 들어가서 사는 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것의 일부가 되어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벽돌이고 기둥입니다. 그러므로 인적 구성이 중요하고 문화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는 끝없이 교육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수되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생태마을은 우리가 들어가서 사는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방식을 합의하고 지키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중의 하나입니다만 동시에 인간을 무감각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생태마을이 가능하려면 삶의 질에 대해 민감한 안목, 다른 사람의 요구를 느끼는 감수성 그리고 생태마을의 철학을 깊숙히 이해하는 이해력등이 필요할것입니다. 발전적 계승이라는 것을 전제로 서구적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한국을 가득채우기 전에 이땅에 있었던 우리의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것입니다. 


맺는 말


여기까지 쓰고 돌아보니 생태마을이 사는 방식의 근본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충분히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사고가 개인의 차원에까지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과를 짜고 미래를 설계할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이웃과 시간을 보내고 혹은 홀로 시간을 보낼때 우리는 종종 어떤 계획을 짭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지적인 설계가 결국 마을 만들기에서 마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촘촘히 계획으로 채우면 그것은 높은 유지 비용을 요구하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끝없이 자기를 채찍질하고 한개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그댓가로 우리는 큰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나 많은 쾌락, 유명세, 권력등을 즐기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쉼없이 계속하면 더더더 원대한 계획만 세우다보면 우리는 결국 파멸합니다. 전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언제 이성적 삶을 절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고 느낌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지가능한 삶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성공하고 평생을 뭔가를 이뤘는데 수십년이 지나 돌아보면 왠지 이젠 모든 시간과 기회들이 낭비된듯한 기묘한 결론에 이르게 될수 있습니다. 더욱 높은 확률로 우리는 한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날려버릴지 모릅니다. 더 많은 것을 위한 길고 복잡한 계산을 통한 투자란 결국 복잡한 도시의 삶과 같은 것입니다. 한가지만 어긋나면 엉망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생태마을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에 까지 이르는 일관성이 있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 있는가, 어느 정도의 생태적인 고려를 하고 있는가, 지나치게 큰 길을 외면하고 기기묘묘한 방식을 찾아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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