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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노인과 프랜차이즈의 나라.

by 격암(강국진) 2012. 10. 26.

일본이란 사회가 어떤 사회일까를 말하는데 있어서 언뜻 떠오르는 몇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먼저 일본은 노인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고령화는 신문방송에서도 자주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일본의 65세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은 2009년 기준으로 22.7%이며 7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0.8% (2010년)로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한국도 요즘 일본을 능가하는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일본이 더 고령화 사회입니다. 


또 일본하면 이야기하는 것중의 하나가 부동산 거품붕괴며 잃어버린 10년이니 20년이니 하는 불황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항상 한국이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무너진 나라입니다. 이제 일본은 부동산을 사면 크게 돈을 번다는 것을 거의 아무도 믿지 않는 나라입니다. 20년간 내리기만 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바로 일본에는 체인점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처음왔을 때 저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네마다 역전앞 풍경이 너무도 똑같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게 7년전쯤이었는데 한국이 빠르게 그렇게 변해가는 것같더군요. 역앞에 가면 있는 가게는 설마 이런 것도 체인일까 싶은 것까지 거의 예외없이 체인점들이더군요. 오늘 아내와 이야기하다보니 한국에서는 꽤 돈잘버는 직종으로 알려진 약국이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일본 약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의 약국들을 보고 배워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도 근원적으로 보면 체인화때문입니다. 미국처럼 일본의 약국은 전부다는 아니더라도 슈퍼마켓 같이 변한데가 많습니다. 체인화된다는 것은 약사가 사업주라기보다는 단순 고용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약사의 수입과 지위가 약화된다고 합니다. 체인에서 일하거나 체인과 싸워야 하니까말이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함께 생각하다보면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면서 이것들은 서로 각각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서로 인과관계로 얽혀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질문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불황기에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상당히 뻔한데요. 불황기에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돈과 직업입니다. 돈과 일자리가 넘쳐나는 사회는 불황이 아니고 돈과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가 바로 불황기니까요.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이긴 합니다만 위에서 말한 일본사회의 특징들과 결합하면 그리 단순하기만 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노인이 많다는 것은 퇴직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실직자가 많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들도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싶어하니까 직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 난다는 것이죠. 이와 같은 것은 물론 불황기에 직장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더더욱 심해지며 특히 금리가 낮아지면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일본은 제로 금리입니다. 통장에 돈넣어둬도 이자로 돈을 안주니까 돈이 워낙 많은게 아니면 이자수익으로 노후를 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부동산도 안오르죠. 노후에 땅과 돈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수입이 생겨서 먹고 살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노인들도 당연히 뭔가를 해야한다는 압력을 더더욱 받게 되는 것이죠.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는 것, 부동산이나 돈 자체만으로 돈을 불리는 일이 재미없어졌다는 것은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돈을 불릴 다른 방법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돈있는 사람이 땅사고 집사는게 당연한 것 같은 부동산 거품 팽창의 시기는 뒤집어 말하면 돈있는 사람은 무조건 돈놀이 하거나 부동산을 굴릴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재미없어지면 돈많은 큰손들이 뭘 할까요?


바로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과 돈을 굴릴 데가 없어진 큰손들이 결합한 상품이 인기가 좋아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체인점이고 프랜차이즈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인기가 많아질 것은 고등교육과 자격증일 것입니다. 바로 직업을 얻을 가능성을 늘려주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실제로 그런가 하는게 핵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으면 체인의 권리와 고등교육과 자격증을 파는 사람들이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돈이 약간 있는 서민들을 생각해 봅시다. 은퇴했거나 실직한 사람들은 어쩌면 아껴쓰면 은퇴생활을 할수도 있을지 모릅니다만 앞에서 거론한 상황들때문에 가지고 있는 나머지 얼마간의 돈이라도 어떻게든 굴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뭔가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도 상당합니다. 즉 그냥 저금으로 사는 것보다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것이 장사입니다. 돈이 있으면 시작은 할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치킨집을 한다던가 한식집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커피숍을 하건 하다못해 호떡장사를 하건 그냥 시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폼이 안납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럴듯한 것이 바로 체인점이라는 겁니다. 돈만 투자하면 그럴듯한 모양새와 노하우 전수까지 약속되고 직업이 생기니까요. 불황기에 몰렸다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처럼 보입니다.


이번에는 돈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빵집이니 피자니 통닭이니 하는 업종에 대기업이나 재벌3세들이 끼어든다고 사회문제가 되곤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마구 커지던 단계에서는 재벌들에게 그런거 하라고 해도 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거품이 꺼지니까 이제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야 겠는 겁니다. 


그렇다고 몇십억 몇백억씩 굴리는 사람이 치킨집 하나 열어서 사장을 하는 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본들이 체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빵집이나 음식점같은 것도 체인으로 규모를 키우면 큰 자본이 눈을 돌릴 만한 먹이감이 되는데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고령화시대, 불황의 시대에는 체인을 잘 팔아먹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들으셨겠지만 이렇게 체인점을 시작한 사람들은 2년안에 셋중 둘은 망한다고 하더군요. 불황의 시기에 직업을 파는 장사꾼을 만나서 2년어치 직업을 사고 큰 돈을 빼앗긴 셈이 된것입니다. 물론 판단은 투자자가  직접 한것이기에 그렇게만 말할 수 없습니다만 요즘 체인점이 난립하는 것을 보면 아니라고만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커피점은 백미터도 안떨어진 간격으로 자꾸 자꾸 있는 것도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체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상품으로 삼는 것이 체인 자체인지 그 통닭이건 짜장면이건 빵이건 커피건 그 상품들 자체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일들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들이 뭘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역전앞에 가보면 전부 다 랄 정도로 체인점이 많습니다. 한국은 이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초기인것같습니다. 과연 한국이 일본처럼 변해가는 것을 막을수 있을까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물론 체인사업 그자체를 사회악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파트 짓고 파는게 나쁜 일이겠습니까. 거기에 투기가 끼어서 몰상식해지지만 않는다면 좋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체인사업도 그저 수단일뿐 그 자체가 나쁜 것이 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고 어떤 윤리의식을 가지고 감시하는가에 달라지겠지요. 어쩌면 사람들이 협동조합같은 형태로 직접 연합하는 형태를 가지면 자본에 이용당하기만 하는 미래를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올해말에 협동조합의 설립이 쉬워지도록 법이 바뀐다고 하더군요.


제가 말하는 것은 변화는 올 것같다는 것입니다. 고령화되고, 직업이 귀하고, 발전이 늦은 사회가 되면 전에는 대기업화 되지 않던것까지 모두 체인화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국민이 사기당하듯이 얼마안되는 돈을 날리는 일이 많은 사회, 혹은 착취당하는 시스템으로 갈수 있습니다. 미리 걱정하고 미리 고민해야 새로운 시대, 천천히 발전하거나 그저 유지되는 사회를 현명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합니다. 또 어떤 '상품'이 왜 뜨는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거기에 속기도 쉬울 것입니다. 체인점과 자격증과 고등교육을 가지고 악덕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속아서 안그래도 살기 힘든 불황의 시대를 더 힘들게 살게 되어서는 곤란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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