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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

by 격암(강국진) 2012. 11. 8.

제가 사는 일본의 와코시는 인구 8만명이 안되는 도시로 소학교라고 일본에서 부르는 초등학교가 8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8개 학교의 5학년들이 모여서 음악발표를 하는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막내가 발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것이야 제가 평할바도 아니고 좀더 나이든 학생이나 어른보다 일반적으로 못하겠지만 아이들 음악은 그래도 들어줄만 합니다.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이 음악감상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듣다가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역시 아이들이 있어야돼. 아이들이 희망이야.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종종 그렇게 생각되어지듯 그들이 자라서 좋은 세상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거나 좀 더 개인적으로 자식들이 잘되서 어른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기를 바래서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가 크고 작게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당장 당면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어른의 희망인 이유는 어른들에게 인생에 있어서 뭐가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거나 잊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동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다시 아이를 기른다는 이 수없이 오랬동안 반복되어진 생명의 순환의 가치는 오늘날 너무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거나 파괴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많은 것을 시작되게 만든다.


이런것 부터 시작해 봅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는 종종 그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됩니다. 왜냐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보편적이며 그래서 어른들이 자식들을 더 잘 키워보겠다고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녀온 음악회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듣는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만나고 집단으로서의 활동이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통학길에 안전하게 다니게 하기 위해서 부모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대책을 논의합니다. 그 이외에도 유해한 환경을 없애고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라는 것은 포유류의 기본적 감성으로서 바로 그 감정때문에 우리는 여러가지 일을, 정말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작게 보자면 나 혼자 살면 내방이 그보다 더 어지러워도 그냥 그러려니 할 사람도 집에 아이가 있으면 위험한 물건이 바닥에 있지는 않은지 아이가 내가 게으른 모습을 보고 게으름을 배우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커지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만은 좋은 세상에 살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세상을 바꿔갑니다. 


또한 결국 아이가 있어야 지역경제가 활성화 됩니다. 노인만 있고 아이가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한게 훨씬 적습니다. 단순히 학원같은 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있어야 외식산업도 발달하고 의류산업도 발달합니다. 맥도널드 같은 곳이 장난감을 주면서 아이를 유혹하는 이유는 아이가 결국 외식산업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걱정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복잡해 집니다. 내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면 동네가 싸구려 술집으로 채워지고 더럽고 위험해져도 어른들은 그저 그려려니 할 뿐입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키운다. 


또하나 중요하면서도 잊혀지고 착각되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부모가 아이를 일방적으로 키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있음으로해서 부모는 어른 세대는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지, 여러가지 인생의 문제에 대해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가 있음으로해서 어른들은 인생을 짧은 시야와 좁은 시야로 보는게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조망하고 세계를 통째로 조망하는 그런 시야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어른을 키웁니다. 


예를 들어 동료나 주변사람들과의 경쟁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어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가 자신의 직장생활에 빠져있다보면 세상은 모두 적이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빼앗기는 사람이 바보라고 끝없이 자신에게 말할 법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앞에 서서 그렇게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어른들은 아이앞에서 자신의 좁아져만 가는 경험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나아가 바로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은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약 30살이 넘은 어른들만 세상에 존재하고 그들이 모두 불임이 되는 세상이 있다면 그 세계는 단숨에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은 지켜지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세계어디를 가던 아이의 소중함에 대한 감정은 보편적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칩니다. 뭘 가르칠 것인가. 바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보면서 어른은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인간은 매우 유년기가 길다는 사실입니다. 성년으로 자라나는데 수십년이 걸립니다. 어쩌면 인간이 유년기가 긴것은 아이가 자라나야할 시간이 필요한 때문도 있지만 어른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통상 두번 탄생합니다. 인간은 아이로서 성장하고 다시 아이를 키우는 어른으로서 재탄생하여 다시 배우고 성장합니다. 이 성장과 재탄생의 순환이 없었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문명을 발달시켜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책임을 질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인간은 무언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무언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없을 때 인생은 의미를 잃고 특히 미래가 열려있지 않고 어느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어른의 경우 우울증을 동반한 무의미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 모두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행복할수 없습니다. 


내 아이이건 우리 지역의 새 세대이거나 우리 민족의 새로운 세대이건 어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근원이 됩니다. 백년후에나 50년후에나 쓸모있을 나무심기를 한다는 것은 물론 후에 살아갈 세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런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에 대해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일입니다. 백년뒤의 아이가 지금의 어른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시작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동양은 아이를 통해서 죽음이 주는 허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의 삶은 미래 세대를 통해서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요즘 많은 노인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생활고도 있을것입니다만 그 근원은 외로움과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허무함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시 결국 어느정도는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진 어른이 겪는 문제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망울을 느끼는 어른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외로움과 허무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강합니다. 쉽사리 죽지 않습니다. 


맺는 말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입니다. 그들이 언젠가 미래에 좋은 세상 만들어주겠지가 아니라 당장 어른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삶에 의미를 주는 존재들입니다.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이뤄진 생의 순환은 인간을 동물이상으로 키워준, 인간존재의 소중한 핵심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환이 현대사회에서 망가지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그저 자기들이 키워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을 하기 싫은 의무를 다하는 것, 일종의 적선을 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종종 가능하면 아이따위는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싸구려 욕망에 몸을 던지고 마치 천년 만년 영원히 그렇게 살 것처럼 생의 순환에서 자신을 끊어냅니다. 


그렇게 될때 먼저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사회적 윤리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경제도 무너집니다. 어느 동네에 갔더니 거기에는 도서관과 좋은 찻집과 서점과 극장과 아동용 옷집이 있는데 그 옆동네에 갔더니 거기에는 여자 나오는 술집이나 퇴폐다방만 즐비하더라고 하면 어디가 죽어가는 마을인가는 분명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그 과정이 자기 스스로를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저 교육비만 내면 그걸로 내 할일, 내 의무는 다한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할때 교육은 당연히 망가지고 어른들도 망가집니다. 어른들은 그저 좁디 좁은 자기의 계곡속으로 점점 더 깊숙히 빠져들어가서는 눈도 귀도 막힌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그런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어른은 아이라는 수호천사가 없이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생의 순환이 있어야 완전해 집니다.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세계 최저의 출산율입니다. 이왕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뭘가르치는가를 보면 정말 열심히 뭐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더라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고 가르치고 있는것같지 않습니다. 많은 어른들은 티브이 광고에 나오는 말을 반복하거나 자신의 공포를 아이들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어린 학생이 나는 커서 결혼은 안할거라던가 나는 절대로 아이는 낳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슬픕니다. 그건 생명의 한종으로 말하면 멸종하는 종에게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입니다. 그걸 잊지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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