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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커뮤니티 붕괴와 아이들 그리고 살림살이

by 격암(강국진) 2013. 2. 4.

얼마전에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 교수가 연구소를 방문해서 저녁을 먹다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기억에 남았던 것을 하나 이야기했었는데요. 그건 바로 아이들 생일 파티 문제였습니다. 뉴욕에서는 아이들이 서로를 생일파티에 초대하면 그 부모도 꼭 같이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생일파티에는 어른도 따라가서 파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이건 큰 악몽중의 하나입니다만 왜냐면 만약 당신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열명의 손님을 초대하고 싶다면 그 말은 거꾸로 당신이 일년중에 그런 파티에 열번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십명을 초대한다면? 이게 왜 악몽이 되는지 이해가 가기 바랍니다. 그 미국교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온 세상이 그런줄 알더군요. 여기서는 그냥 애들만 보내고 파티한다는 말에 부러워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같이 노는 것을 플레이데이트라고 하는데요. 부모들이 서로 약속해서 아이들이 같이 노는 동안 서로의 집에서 혹은 놀이터에서 옆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지역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플레이데이트를 이용해서 지역 커뮤니티에 연결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보기 나름이지요. 그것도 한마디로 아이들 옆에 그 부모가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는 미국사회의 육아원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미국 교수는 지금도 그렇고 뉴욕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는 동네도 그렇다고 확인해 주더군요. 미국에서 애를 제대로 키우는 것은 엄청나게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했습니다. 


플레이데이트라는 것은 미국에서도 항상 그랬던 것이 아니고 80년대 정도 부터 그랬으며 그전에는 한국에서 그랬고 일본에서 그랬으며 어느정도는 지금도 그런 것처럼 미국도 그냥 아이들이 나가서 자기들끼리 친구 만나서 노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커뮤니티 붕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지며 미국에서의 총기사건에 대해 간단히 말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여기에 적기로 한것은 이 일화가 커뮤니티 붕괴의 결과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혹은 공동체 붕괴란 결국 주변사람, 동네 이웃을 그냥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뢰의 붕괴입니다. 전에는 그냥 먹던 달걀인데 달걀장사들이 이상한 달걀을 판다더라하는 소문이 돌아서 신뢰가 붕괴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믿을 만한 곳에서 사먹기 위해서 더 비싼 달걀을 사먹어야 합니다. 신뢰는 결국 금새 재정적인 문제가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데는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교육이란 특히 공동체의 존재 유무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붕괴하면 어떻게 됩니까? 신뢰가 없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시간과 에너지와 돈이 새기 시작합니다. 불신을 돈으로 메꾸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공동체 문제같은 것은 별로 우리 생활에 닿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이런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동네 인심이 흐려지기는 순식간이더라 뭐 그런 것은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 시작으로 결국은 위에서 말한 미국 사회처럼 되며 물론 그 여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나아가기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도 사교육시장이 엄청납니다. 다들 사교육비 내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만 이것도 역시 공동체 붕괴, 신뢰 붕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과외선생이나 학원이 존재한다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못난다고 거의 모든 사람이 확신합니다. 즉 정규 학교과정과 대입 선발과정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부모들과 학교선생님들간의 신뢰도 많이 망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교육을 시켜서 각자 교육시키거나 아예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서 교육을 시킵니다. 캐나다나 호주같은 나라에 가면 한국아이들이 버글댄다고 하더군요. 일본이나 미국아이들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들어가는 돈이 너무나 엄청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아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로만 생각하며 따라서 아이를 낳는 것을 애초에 포기하는 일도 많은 것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든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정도문제라는게 있겠지요. 미국도 그렇습니다만 요즘은 한국도 부모가 아이를 줄줄이 쫒아다녀야 합니다. 무슨 학교가 좋은지, 뭘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도 엄청나게 해야 합니다. 결국 부모가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로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다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요즘 부모들이 더 아이를 열심히 키운다고 말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바탕에는 공동체 붕괴가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붕괴하면 모두의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대개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댐이 무너져서 홍수가 난다는데 우리집 담벼락을 더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아이들 학원이야기나 학교진학 이야기만 반복 됩니다. 내 아이가 남을 이기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물론 공동체 복원내지 발전이라는 주제는 낯설거나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은 맞습니다. 대개 잊혀진 분야니까요.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경제적 규모가 팽창하는 것만 일어났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더더더 큰 것만 찾고 그래서 거대한 시스템의 자랑스럽고 소중한 부속품이 되는 것만 신경쓰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사실 그런 경제적 성공의 바탕에는 우리 문화가 이룩한 공동체의 윤리적 굳건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저는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 문화 우리 윤리가 있으니까 한국이 이만큼 부유해 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거대한 호수옆에 살면서는 물걱정을 하지 않듯이 그런 것은 그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족공동체, 지역공동체 나아가 국가 공동체도 허약해지기만 하거나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쉽사리 범세계주의같은 것으로 빠져서 니것 내것 안가리는 객관적이고 세계적 윤리와 사회를 꿈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게 존재하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돈과 욕망을 가진 시대를 살고 있으며 고도경제성장은 끝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직업교육이 아니라 수신하는 공부, 사람사는 도리에 대한 공부, 재미있고 가치있게 사는 법에 대한 공부를 평생하는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그런 공부는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필요한 윤리와 도덕의 근원에 대한 공부이기도 합니다. 철학적 공감이 있으니까 말이 통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못할때 순박한 시골마을에 돈에 대한 욕심이 퍼지면 공동체가 깨지고 마는 것처럼 현대의 풍요가 불러온 욕망은 공동체를 깨버릴 것이고 결국은 많은 사람이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게 될것입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인문학교실이라도 계속 해야 공동체를 유지하고 삶의질을 유지할수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과 철학이 살림살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2008년의 미국발 경제난 이래 세계는 항상 거대 대공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실 좀 산다는 나라치고 빚더미에 올라서지 않은 나라가 없으니까요. 거대한 붕괴의 파도가 몰아칠때 그럭저럭 견딜만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공동체의 존재유무에 달려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경제난이란 신뢰의 붕괴고 공동체의 유지란 신뢰의 유지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공동체고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정신과 가치와 철학입니다. 다가올 서서히 성장하는 세상 혹은 거품이 붕괴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것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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