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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노인을 위한 나라

by 격암(강국진) 2012. 6. 17.

2008년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의 출산률은 벨로루시, 체코, 폴란드등의 나라와 함께 전세계 최저였다. 출산률뿐만 아니라 뭐든지 극단적인 숫자가 잘나오는 한국답게 자살률도 OECD 국가중 1등으로 전세계 수위를 달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는 큰 이유는 노인의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아서다. (2010년에 자살한 65세 이상의 노인수는 4378명으로 10대 청소년 자살수의 12배에 이른다.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기이하게 큰 차이라고 한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206/e20120617174354117920.htm이제 한국이 급격하게 고령화국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되는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부인할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노인들의 나라가 되어간다는 사실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발전하는 한국의 역사가 만든 착시도 크게 작동한다고 본다. 한국은 해방때 전세계최고 빈국이었고 지금은 선진국을 자부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만큼 부자나라가 되었다. 노인세대들중에는 한류바람이라던가 현대나 삼성의 제품이 외국에 나가서 수출되는 것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나이도 나이지만 이제 한국도 그 유년기의 한국에서 장년기 내지는노년기의 한국으로 변해간다. 즉 뭐든지 새것이 좋고 급격하게 경제규모가 커져갈것이라는 생각이 상식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특이한 나라다.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 엄청난 속력으로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변화를 막거나 뒤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럴때 우리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 인식의 오류를 만나게 될것이다. 이미 변화는 우리 앞에 있어도 그걸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붕괴같은 엄청난 일도 그 충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때 우리가 이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인에게 최고로 필요한것


노인을 위한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뭘까. 그걸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죽이기다. 시간죽이기라는 것은 시간낭비를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으므로 다르게 말하자면 청년과는 다르게 살기라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괄적으로 그렇게 말하기 어렵고 그게 꼭 바람직하다고 할수도 없지만 청년의 삶과 노인의 삶은 종종 사는 방식이 다르다. 청년의 삶은 많이 투자하고 많이 벌려는 고위험 고수익의삶이라면 노인의 삶은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저위험 저수익의 삶이다. 이는 에너지가 넘쳐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수 있는 청년, 가진것없는 청년과는 달리, 이미 돈뿐만 아니라 인맥이든 지식이든 추억이든 많은 것을가진 노인들은 안정성을 보다 더 신경쓰게 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둘중의 어느것이무조건 좋다고 생각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그 답은 다를것이다. 상황에 따라 무조건 도전정신을 가져라라는 것도 무식한것이고 변화없는 보수적 삶을 추구하는 것도 몰상식한 일일수 있다. 물론 우리는 도전하는데 겁을 잘 먹는경향이 있다는 의미에서 도전정신을 가지라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이제 빠르게 성장하던 시대를 지나 지속적이고 유지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전이라는 말은 때로 무모한 투자라는 의미로 잘못사용되어지기도 한다. 1-2억쯤 빚내서 집사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말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천조운운하는 수준으로 역사상 최고수준에 올라 한국경제를 침몰시킬 위협이 되고 있다. 


어떻게 되었든 이런 전망의 차이에 따라 생활의 차이가 나온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청년의 삶은 바쁘다. 할것이 너무 넘친다. 그러니까 항상 할것을 다 하지 못하는것이 문제지 시간을 죽이는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노인의 삶은 시간을 죽이는 것이 큰 과제다. 


시간을 죽인다고 하면 쉬운것같지만 우리는 바위가 아니니 그저 돌부처처럼있을수없다. 경제적인 고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유지, 무엇보다 행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한국이 예전보다 더 부유해졌지만 노인자살률이 크게 오르는 이유는 이 시간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아무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살은 외로움과 큰 관련이 있다. 외롭지 않게 되는것, 할일을 찾는 능력이 바로 시간을 죽이는 능력중의 큰것이다. 외롭지도 않고 할 일도 있는 사람은 어지간해서 자살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버려야 한다. 시간을 죽이는 것을 다르게 살기라고도 말했는데 시간을 죽이면서 사는 노인의 삶이야 말로 경우에 따라서는 진정한 삶이 될수도 있다. 도전하는 청년정신이라고 하면 아름답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과 혼동속에서 저질러진 여러가지 일들을 뒷감당하느라 밥먹을 시간도 잠을 잘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정말로 냉정하고 잠잠해진 마음이 말해주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아니라 그저 남의 노예, 욕망과 허영의 노예가 되어사는데 바쁘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게 뭘까를생각하고 그것을 하면서 산다는 노인의 삶은 어쩌면 진정한 자기삶의 시작일수 있는 것이다. 아주 한가하게 살면서 일본어공부를 하는 노인이야말로 진정한 도전정신을 가진 분일수 있다. 단지 바쁘고 남이 보기에 번쩍이는 것을 위해 뛰는게 반드시 도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면 진짜 삶을 살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시간을 어떻게 죽이는가


노인들이 시간을 어떻게 죽이는가하는 것은 한국이 어떻게 변해갈것인가를 결정할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래에 어떤 직업이 전도유망한가를 생각하는 젊은이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시간을 죽이는 대표적인 방법중의 하나가 여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후에는 이런 저런 여행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많이 하고 여행은 좋은 경험이 된다. 따라서 한국이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것은 아닐수 있다. 이제야 한국은 여행도 다니고 여가도 즐기는 사람들이 다수 출현하는 나라가되어가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고장마다 축제가 활성화되고 관광산업이 더 발전할수 있는 기회일수 있다.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는 생활의 변화가 돈의 변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돈이 없어서 여가활동을 하지 않으며 돈이 많아지니까 사람들이 여행도 다니고 여가활동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화나 인생에 대한 시각이 더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극빈상태의 국가가 국민소득이 두배로 늘면 더 많이 여행을 하는가.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더욱 더 많이 일하고 바빠지며 짧은 시간에 돈을 쓰는 유흥업소만 늘어난다. 사람들은 돈을 버는 쾌락에 바빠서 느리게 여행하고 문화를 감상하는 것은 인기없다. 개개인을 봐도 가장 돈을 잘버는 사람들은 사실 너무 바빠서 그돈을 쓸 시간이 없다. 그들은 돈벌고 출세하는 재미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은 미국 대공황때 생겼다고 한다. 실직자가 많아지자 사람들은 가난해졌고 원하건 원치않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럴때 집에서 가족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죽인 것이다. 부자가 되어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가난해져서 게임을 하기도 한다. 만약 세계적인 경제난이 밀어닥친다면 우리는 더더욱 시간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돈이 있으면 소비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고 소비의 형식, 사는 방식이 중요한 문제다. 이제 경제전망이나 인생의 전망이 가파른 성장에서 현상유지로 바뀌게 되면 사람들은 돈버는 재미나 돈을 펑펑 써대는 재미로부 떨어져서 천천히 돈을 쓰는 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박물관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책도 읽고 느린 여행도 하는 것이다. 간곳이 좋으면 아주 여러번 가기도 한다. 


느린 삶을 추구하면서 제주도로 간 사람들은 문화센터에 가면 많은 수의 강좌가 존재하는 것을 새삼깨달게 된다. 그들은 바로 시간을 죽이는 문제와 부딪힌 것이다. 돈을 비교적 덜쓰고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이 바로 문화센터같은 곳을 통해 여러가지 취미활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사교육시장만 커다랗게 성장했었지만 이젠 노인들의 여가시간을 위한 교육시장이 점점 더 커질것이다. 나이많은 세대가 즐기는 문화활동이 소비에서 더 큰 분야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소비만 할수는 없다.


그러나 소비로 시간을 죽이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돈을 많이 쓰게 되는것은 물론 이려니와 체력도 많이 소모되고 때로는 건강에 나쁘다. 노인들은 쓸돈도 없지만 돈을 펑펑 쓸 체력도 없고 그런것은 자극이 너무 심해서 느리게 사는 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노인들은 뭘하는가. 우선 노인들은 걷는다. 걷는 것은 굉장히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시간죽이기 좋다. 산보는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몸에 무리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좋다. 무엇보다 산책은 장소만 괜찮으면 해도 해도 즐거운데가 있다. 돈도 안들고 건강에도 좋고 날마다 해도 지겹지 않으니 이보다 좋은게 없다.


이답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즉 산책하기 좋은 자연경관을 가진 환경이 노인에게는 매우 중요한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밥만먹고 나가서 한밤중까지 일하다들어오는 청년들에게 집이란 거의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지평선에 이르기까지 고층아파트의 숲을 만들고 녹지공간따위가 없어도 소음으로 자동차매연으로 환경이 안좋아도 큰 의미가 없다. 바로 수도권의 아파트숲처럼 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전원주택 붐이 일어난지 한참이다. 노인들이 전원주택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데에는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다. 물론 생활의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간단한일이 아니라서 그것도 언제나 간단하지 않으며 문제도 많지만 노인들이 전원주택에 가고 싶은 이유중 두가지 커다란 것은 바로 자연과 텃밭이다. 


공기좋고 숲이 좋은 곳에서 날마다 산책만 해도 즐겁게 살아갈수 있다면 시간을 죽이는 일이 고역이고 돈을펑펑쓰는 여가생활이 부담스런 노인들에게 그것보다 좋은게 없다. 텃밭도 그렇다. 가장 비효율적인 1차산업이 정확히 그 이유로 좋은 것이 된다. 노인들은 큰 투자 안하고 적게 소득을 올리는 일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기르는 일은 정신적으로도 많은 기쁨과 안정을 준다. 


이렇게 보면 알지만 사실 집자체가 단독주택이란게 핵심이 아니다. 자연과 공간이 있는 주거공간이 노인에게 더 절실하며 이것은 결국 빽빽히 채워진 서울시대가 지고 지방시대가열린다는것을 의미한다. 인구밀도가 낮으면 텃밭도 어디서든 구할수 있고 자연공간도 쉽게 확보된다. 서울에서 아무리 돈을 들여서 자전거도로를 깔아도 그냥 인구밀도 낮은 중소도시에 가서 자전거타는것보다 못하다. 


직업의 의미가 변하다. 


사는 곳을 바꾸거나 돈을 소비하는 형태가 바뀌는것 말고도 물론 중요한 분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직업분야다. 필자가 사는 일본에는 체인점도 많지만 많은 작은 가게들을 보게 되는데 그 가게들의 상당수는 노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시간을 죽이는 최고의 방법은 그냥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날이 즐겁게 보내기위해 가게를 유지한다. 수입은 매우적을지 몰라도 시간을 죽이고 적게라도 돈을 벌수 있다면 노인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일이 된다. 노인들은 자원봉사활동같은 것에 참여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것도 수입은 없을지 몰라도 보람되게 시간을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심해질수록 사회는 점점 더 비자본주의적 논리에 익숙해질것이다. 노인들의 경제생활은 어떤의미에서 역설적이다. 비효율적일수록 좋다. 사먹는것에 비해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이 수익의 차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시간보내는 데도 좋고 믿을수 있는 먹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된다. 이익도 안남는 장사를 계속하는 것은 고생이기만 할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라도 계속할수 있는 장사가 있다면 역시 시간보내는데도 좋고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좋다. 직업이란 취미같은 것이다. 더 위험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라면 더 벌수 있다고 하더라도 더 벌수 있는 쪽으로 가야할 이유가 없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과정중의 하나다.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익숙해서 그것이 상식이지만 예를 들어 영국이나 일본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고 낡은 것일수록 좋았을때 만들어진 진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부자나라일수록 오히려 벼룩시장같은 것이 더 발달되어져있는 것같다. 우리는 말하자면 영국이나 일본사람들의 삶쪽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가운데 인식이 뒤쫒아가지 못하는 상황일수있다.


맺는말


인식이 뒤쳐졌을때 우리의 판단은 잘못될수 있다. 그리고 그결과는 뼈아프다. 한때 세계 핸드폰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스마트폰세계에서 뒤지기 시작하더니 끝없이추락해서 언제 부도가 나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다. 세계적 국가적 변화속에서 과거의 인식에 매달려있을때 우리는 산처럼 크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도 둔감할수 있다. 


급격한 성장의 시대에 돈이면 전부다라고 생각하고 집이란 그저 잠이나 자는 콘크리트박스면 되고 이웃이 누가되었던 알바아니고 했던 식의 생각은 이제 크게 뒤쳐진 것이다.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기준으로는 가치가 평가되지 않던 무형의 자산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복고바람이 불고 유행처럼 잠시 번지는 것보다는 오래 오래 고전처럼 우리곁에 남아있는 것들의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될것이다.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생각들이 미친생각처럼 보일수도 있다. 일본사람들이 버블이 터지기전의 일본사람들이 미친듯이 소비하고 빚내서 투자하던 행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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