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펌] 4. 통나무집과 소로우, 감옥과 신영복 (세일러)

by 격암(강국진) 2010. 2. 2.

안녕하세요?

 

꼭 일주일 만에 글을 올리게 되네요지난 주는 업무 관련하여 급한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통 아고라에 들어와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해드리는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원래 앞 글 ‘집’이라는  편에서 소로우의 월든과 같이 소개해드리고자 했었는데그 글이 너무 길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람에 뒤로 미루어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월든과 비견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두 책을 읽다보면두 저자 모두 다 그 사고와 통찰이 명징함에 놀라게 됩니다.

 


이 명징함은 두 저자의 어떤 공통점이 낳은 결과일까?

저는 단서 중의 하나가 두 저자의 주거형태일 수 있다고 봅니다소로우는 손수 지은 소박한 통나무집에 살았고신영복 교수님은 본의 아니게 감옥이라는 주거형태(?)에 살았습니다.

 

두 저자의 주거형태가 그렇다는 것은물질에 붙들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꼭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두 분의 사상은 버림을 기반으로 합니다이 버림이 두 저자에게 통찰의 명징함을 가져다주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두 저자의 책에서 비슷한 얘기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월든: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더 명료해질 것이다. (46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85)

 

 

두 저자가 버림을 통해 붙들림에서 벗어났다면반대로 오늘날의 한국인 대부분은 부동산에 붙들려 있습니다이 붙들림이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덮고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제대로 보아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경제 원리와 지식은중간고사(신문기사를 가지고 했던 오픈북 테스트이전까지 제가 제시해드린 걸로 충분하다고 봅니다그 뒤로는 배운 경제원리와 지식을 적용하여 사태를 보아내는 적용단계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식을 더 쌓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즉 덜어내기가 중요한 셈입니다저도 불필요한 지식을 덜어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아내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복 교수의 아래와 같은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충고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책에서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설령 책에서 무슨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옳게 판단하거나 일머리를 알아 순서 있게 처리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外界)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 놓거나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우리가 이러한 것을 지식이라 불러온 것이 사실입니다출석부의 명단을 죄다 암기하고 교실에 들어간 교사라 하더라도 학생의 얼굴에 대하여 무지한 한단 한 명의 학생도 맞출 수 없습니다‘이름’은 나중에 붙는 것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번 새마을 연수교육 때 본 일입니다만지식이 너무 많아 가방 속에까지 담아와서 들려주던 안경 낀 교수의 강의가 무력하고 공소(空疏)한 것임에 반해 빈 손의 작업복으로 그 흔한 졸업장 하나 없는 이가 전해주던 작은 사례담이 뼈 있는 이야기가 되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139-140)

 

지금 우리 한국인 대다수는 어떤 환상에 눈이 가리워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데출발은 부동산 환상’ 내지 아파트 환상인 듯 하고‘경제성장률 환상’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화폐환상’‘숫자환상’이라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추신:

 

에 관한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마무리인 서울역의 집과 아파트 공화국은 가급적 오늘 안에 완성해서 내일 올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좀 지지부진했는데앞으로는 좀 더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래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뽑은 몇 구절 추가로 소개해드립니다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본문 첫장(20)에 지혜의 여신에 대한 구절이 나옵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석양에 날기 시작한다. (20)

 

첩경을 찾는 낭비

… 무슨 편법이나 첩경이 없나 자주 살피게 됩니다이것은 관심의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103)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涼)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3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