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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아내가 쓴 이스라엘 2

by 격암(강국진) 2010. 2. 16.

어휴, 춥습니다, 추워요.

사막 지대라 일년 내내 더울 줄 아셨죠? 아니에요. 적어도 여기 예루살렘에는 한두 번쯤은 눈도 내릴 만큼 추운 겨울이 찾아온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m나 되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다른 지방보다 더 춥다고 해요. 하지만 집들은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막기 위해 지어진 탓인지 집 안에 있어도 어딘지 써늘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든답니다. 집 안의 벽은 온통 흰색이고 바닥은 사무실 바닥처럼 생겼거든요. 그렇게 생긴 집, 어디 생각나는 데 없으세요? 맞아요, 바로 병원 같은 느낌이랍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은 우리 나라 온돌방이 최고예요, 정말.

 

이 곳은 겨울이 우기여서 요즘은 가끔 하늘에 구름도 많이 끼고 흩뿌리듯 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아직 우산이 필요할 정도의 비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까짓 한두 방울, 우리 나라의 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여름 내내 강수량이 0mm인 나라니까 그 정도도 아주 고마운 비랍니다.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땅. 이렇게 메마른 곳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으시죠? 하지만 예루살렘에 한번 와 보시면 사막의 기적이 무엇을 말하는지 금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우리 나라만큼이라고 한다면 좀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꽤 무성한 나무와 꽃들이 온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으니까요.

 

저희 집 앞의 화단에는 국화와 금잔화가 잔뜩 피어 있고, 골목길에는 장미, 코스모스, 분꽃, 나팔꽃 등이 저마다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답니다. 어제 아침에는 남편을 배웅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떨어진 잘 익은 석류 하나를 주워 왔습니다.

 

석류...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살던 집의 대문 입구에 아주 커다란 석류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석류 속에 빼곡이 차 있는 동그랗고 투명한 씨들을 골라내어 입 속에 넣고 톡 터뜨릴 때 입 안 가득 고이던 그 달콤한 액체... 아마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온 후에는 이상하게도 석류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더군요. 하지만 제게 있어 석류는 그 마당 깊은 집의 우물과 제비집이 가득 들어선 대문, 달콤하고 쌉싸름한 아득함, 이 모든 것을 빼곡히 담은 그리움의 과일로 늘 남아 있었습니다.

 

그 석류를, 가게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금방 떨어진 진짜 석류를 이 먼 나라에서 맛보게 되다니 정말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 얘기가 너무 감상적인 데로 흘러가는군요.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과일이 골목에 떨어져 뒹굴 정도로 풍요로운 사막 도시의 정경입니다.

 

이렇게 메마르고 건조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 대답은 화단마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고무 호스들 속에 있었습니다. 기적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집을 나서면 누군가 긴 고무 호스를 들고 나무에, 꽃에 물을 주는 풍경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 집 화단에 물 주는 것뿐이라면 그리 인상적일 것도 없겠지요. 동네 구석구석, 화단이 아니라 버려진 공터 같은 곳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단비에 촉촉히 젖어 있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단함, 아니 인간의 위대함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답니다.

 

물론 그 물들이 모두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문제는 좀 다른 문제이긴 해요. 땅 속 어딘가에서 끌어오는 물들이 얼마 남지 않아 벌써부터 걱정이라는 얘기도 있고, 팔레스타인 지방의 땅 속 물을 이스라엘에서 끌어와 쓰는 바람에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거든요. 사람이 하는 일이 자연과 진정한 조화를 이루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곳 물은 석회가 너무 많아서 반드시 간이 정수기로 걸러서 먹어야 하는데 그나마도 그리 맑지 않답니다. 우리 나라의 물. 하느님이 주신 그 멋진 선물을 더럽혀서 비싼 정수기를 사들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 곳에 와 보니 왠지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또 하나 덧붙일 만한 물 얘기가 있어요. 여기 예루살렘에 비가 오면 사해 지방에 있는 도로가 아주 위험해진다고 해요. 그다지 비가 많이 오지 않았는데도 말예요. 예루살렘은 800m의 고지대에 있고 사해는 해발보다 낮은 곳에 있으니 예루살렘에 비가 오면 그 비들이 죽죽 아래로 흘러 내려가서 문제가 생기나 봅니다. 도로에 물이 넘치기도 하고 길가의 흙들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대요. 사막 지대의 홍수.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세상은 참 별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한국에는 첫눈이 왔나요? 멀리 있는 사람은 작은 눈송이 하나가 언 뺨에 내려앉는 그 간지러운 촉감을 그저 그리워만 할 뿐입니다. 혹 누구 첫눈을 꽁꽁 얼려 이메일로 보내 주실 분 안 계신가요?

아직도 장미꽃이 만발한 예루살렘에서 춥다고 벌벌 엄살을 떨면서 눈을 그리워하는 제 모습이 너무 우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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