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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아내가 쓴 이스라엘 3-5

by 격암(강국진) 2010. 2. 17.

예루살렘으로부터의 편지 3 .

 

징글벨 징글벨~

지금쯤 한국은 크리스마스다, 밀레니엄이다 해서 축제 분위기가 한참이겠군요.

 

얼마 전 구세군에서 신용 카드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신문에서 읽고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여기는 물론!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일은 없답니다. 예수가 유대인이지만 유대인들은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들 아시죠? 사이비 교주들이 성자는 본토에서 박해받는 법이라고 얘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예잖아요. 성경을 구약까지만 인정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태어난 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당연하지요. 언젠가 남편이 함께 일하는 교수님에게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나쁜 유대인라고 하더라는군요.

 

하지만 이 곳도 지금 한창 축제 중이랍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촛대 보신 적 있으세요? 그 촛대가 주인공인 하누카가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첫날부터 매일 저녁 하나씩 불을 붙여나가서 마지막날인 이번 주 금요일이 되면 8개의 초에 모두 불을 붙인다는군요. 참 아름다운 의식이지요? 그런데 하누카라고 하는 그 촛대는 양쪽에 네 개씩, 그리고 가운데 하나, 해서 모두 9개의 초를 꽂을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 뭔가 이상하죠? 9개일까요?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하나는 불을 붙이는 데 쓰는 거래요.

 

뭐니뭐니 해도 명절이 되어서 가장 신나는 것은 아이들인 것 같아요. 하누카는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인 데다 갖가지 문화 행사, 선물꾸러미로 가득하거든요. 거리에서는 온갖 모양의 근사한 촛대를 팔고, 가게들은 화려한 장식을 하고, 박물관들은 저녁까지 특별 행사를 열고... 명절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저희도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예쁜 초를 하나 샀어요. 매일 저녁 불을 밝혀 놓으니 독특한 향까지 은은히 피어올라 아주 근사한 느낌이 든답니다.

 

그런데 하누카의 유래가 뭐냐구요? 물론 굉장한 뜻깊은 유래가 있지요. 하지만 그 전에 대략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의 이집트 탈출까지는 대충 아시지요? 그 이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에 나라를 세우고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를 거치면서 번영을 누리지만 곧 페르시아와 그리스에 이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갑가지 왠 재미없는 역사 강의냐구요? 이스라엘의 명절은 대부분 이렇게 험난하고 힘겨운 역사에 그 유래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누카는 그리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는 명절이에요. 그리스 인들이 물러가고 난 다음 신전에는 초를 밝힐 수 있는 하루어치의 기름만이 남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매일 저녁 초를 밝히는 거라는군요.

 

그 동안 저희가 겪었던 명절들에 대해 조금만 얘기하자면요, 저희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유대인의 달력으로  하시나(새해)가 시작되었어요. 유대력은 음력인데 대충 추석하고 비슷한 시기에 새해가 시작되더군요. 새해는 신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며 빵에 꿀을 발라먹는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일 동안은  욤 키푸르(속죄의 날) 기간으로 단식하며 지난 1년 동안의 죄를 참회한대요. 욤 키푸르는 아주 중요한 날로 모든 시설이 휴업에 들어가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습니다. 비종교인들도 이 날만큼은 차를 타거나 시끄러운 소음은 내어서는 안 된다고 해요.

 

그리고 꺡求㈓이전에 가장 재미있었던 명절은 바로 꺖穉?이라고 하는 움막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8일 동안 움막 생활을 한 것을 기리는 동시에 가을걷이를 축하하는 의미로 즐기는 명절인데, 집집마다 텐트를 쳐 놓고 거기에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잔다고 해요. 시내 곳곳에 갖가지 모양의 텐트가 늘어서 있고, 그 안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이집트를 탈출한 게 그리 먼 옛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이 이외에도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리는 날, 로마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는 날, 예루살렘의 신전이 붕괴된 것을 한탄하며 기도를 올리는 날 등 역사와 연결짓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명절들이 줄줄 이 있습니다. , 물론 이스라엘을 세운 것을 축하하는 독립 기념일도 있구요.

 

참 억수로 힘들게 살아 온 민족이지요. 우리 나라의 외세 침략사도 만만치는 않지만 유대 민족에 비하면 뭐, 참을 만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온갖 고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 나라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명절들을 정해 그 오랜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일 거구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유대인들의 독특한 종교적 관습에 관해 말할 여유가 없군요. 그건 다음에 들려 드릴게요. 여러분 모두 즐거운 연말연시를, 이건 너무 상투적인 인사네요.

 

, 오늘 제 부팅 화면에 뜬 글 중 이런 말이 있었어요.

인간은 말하는 불꽃이다.

촛불 축제에 대해 말하다 보니 이 말이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여러분 모두 불꽃처럼 아름답고 값진 시간들을 보내시길 빕니다. 우리 모두 초는 한 자루씩밖에 없으니까요.

 

 

이스라엘로부터의 편지 4.

 

드디어 전세계를 흥분시켰던 새로운 밀레니엄입니다.

지난 1231일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던 2000년 맞이 행사들을 TV에서 지켜보셨겠죠?

아니면 광화문이나 동해 등에서 직접 몸으로 맞이하셨든지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태어난 이 곳 예루살렘은 너무나 조용한 밀레니엄을 맞이했답니다.

1000년대의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내기 너무 섭섭해 저녁 무렵 남편이랑 아기와 함께 예루살렘 시내을 둘러보았는데요,

온 시내가 죽은 듯이 조용하더군요.

 

아무리 사바트(유대교의 휴일)라지만 좀 너무하다 싶더군요.

그래도 예수가 태어난 나라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예수를 죽인 나라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여러분은 이해가 되세요?

 

여기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이야기할까 해요.

쉽게 말해 유대교는 구약 성서만 인정하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인정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두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유대교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 즉 유대인들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답니다.

 

기독교가 전세계적인 종교인 반면 유대교가 한 민족의 국교로만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 바로 그 하나님을 같이 믿는 데 말이에요.

어쨌든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그런 종교를 위해

아주 엄격한 규율과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유대교를 얼마나 열심히 믿고 있는지는 외모만 봐도 금세 표가 나는데 먼저 검은 모자에 검은 양복(연미복 비슷한)을 입고 귀밑 머리와 턱수염을 덥수룩히 기른 사람들은 아주 독실한 종교인이랍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에 가면 특히 많이 만날 수 있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남자들은 머리에 자그맣고 동글납작한 작은 모자를 얹고 다닌답니다. 아주 어린 남자아이까지 말이에요.

이 모자의 이름은 키파라고 하는데 우리는 농담삼아 뚜껑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구시가에 있는 '통곡의 벽' 앞에서 이 모자를 빌려 주는 곳도 있다는군요. 기도할 때는 반드시 이 모자를 쓰고 해야 하나 봐요.

여자들도 망으로 머리를 감싸고 다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또 남자아이는 만 4세가 되기 전에는 머리를 전혀 자르지 않고 있다가 일정한 의식을 치른 후에 잘라야 한대요.

그래서 머리가 긴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라고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예루살렘으로 부터의 편지 5

 

떴다, 교황!

 

요즘 신문 방송에 이스라엘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요?

교황이 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뉴스인 게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기독교의 유대교에 대한 오랜 박해 때문인지 유대인들은 교황이 오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답니다. 아니, 사실은 굉장히 싫어하고 오는 걸 맹렬히 반대하기도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교황이 여러 번 이스라엘에 오려고 했는데 이런 반대들 때문에 쉽게 올 수 없었다나 봐요. 이번에도 교황이 와서 안 되는 이유 등을 담은 성명서 같은 것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답니다.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차에 타고 있는 교황의 모습, 뉴스에서 보셨지요? 저는 죄인 호송차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보기가 좀 그랬지만 실제로 암살 기도 같은 게 있을 위험이 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베들레헴에서 미사를 올릴 때는 모인 사람의 수는 수천 명이었는데 교황의 경호원은 2만 명이었다나요? 정말 웃고 넘길 일이 아니에요.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며, 세계 최고의 지위에 있는 교황마저 적이 있다니 씁쓸할 따름입니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폭력의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여러분도 신문에서 읽으셨을 거예요.

예수의 세례지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암투 말이에요.

 

원래 요르단 쪽에 있는 요르단 강의 서안이 예수의 세례지라 해서 교황이 그 곳에 가기로 했는데 이스라엘 쪽에서 자기 나라 영역 안인 요르단 강 동안이 세례지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교황이 두 군데 다 가기로 했다지요. 아마 지금쯤은 이미 다녀왔겠네요.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일이지 않아요? 요르단은 국교가 이슬람 교로 예수가 성인의 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이스라엘은 예수를 인정하지도 않고, 교황이 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처지에 예수의 세례지가 여기니 저기니 따져서 교황의 일정을 바꾸는 해프닝이 생겼다니 말이에요. 종교는 종교고, 관광 수입은 또 별 문제인가 봐요.

 

얼마 전에 어떤 유대 인들의 저녁 모임에 초대받아 갔었어요. 거기서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모두들 모르겠다고 하니 그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교황이라고 하더군요. 자기 보스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걸 매일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래요. 어찌 들으면 하하 웃으며 넘어갈 이야기인 것 같고 어찌 들으면 유대 인이니까 할 수 있는 냉소적인 농담인 것 같기도 하고... 그 농담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껄껄 웃었지만 저는 왠지 좀 그랬어요. 제가 너무 예민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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