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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의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보수성.

by 격암(강국진) 2010. 6. 22.

하루는 아내가 한국학교에서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가 일본만 좋다고 찬양하길래 듣기 싫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연인 즉슨 그 여자분은 한국사람은 너무 대충대충인데 일본사람들은 모두 계획성이 아주 뛰어나다는 말을 아주 아주 강하게 이야기했던 것같더군요. 


그런 비판은 확실히 옳은 면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충대충주의는 제가 보기엔 심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일단 공과 사가 구분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어보이는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법이라는 것도 제멋대로 적용됩니다.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인 예는 재미없으니 제가 보고 듣는 것을 몇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이 한 열명쯤 모여서 술자리를 하자고 결정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간사를 정하고 장소를 물색하고 두루의견을 모아 나중에는 장소에 대한 지도와 예산이 첨부된 메일이 옵니다. 


연구소에서도 1년에 한번 야유회같은 것을 갑니다. 사실은 연구발표도 하는 교류회의 성격이기 때문에 노는 것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준비를 거의 1년내내 합니다. 교류회끝나면 한두달 후에 바로 위원회는 다음해 행사준비를 시작하는 느낌인데 뭐랄까 준비성이 좋은것도 좋지만 엄청난 공을 들인다는 느낌으로 이런 에너지를 쓰려면 잡일이 엄청나게 많아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에 비하면 정말 대충입니다. 예를 달어 한인모임이 있으면 비슷한일이 벌어지는데 일본인들이 하는것과 비교하면 의견모으는 것도 대충물어보고 예산도 대충결정해서 결국 주도하는 사람들이 몇몇 친구들과 대충다 결정해 버리는 식입니다. 사람들도 일일히 물어보는 쪽보다는 그쪽을 선호하며 물론 모임에서 돈낼때도 대충냅니다. 누군가가 더내고 그러면 짜투리 돈이 남고 그러면 회비로 남기거나 그돈을 가지고 간단한 것을 사먹어서 억지로 없앱니다. 대충대충하는 것이죠. 놀고 마시자고 모이는데 대충하고 말자는 것이죠. 


글의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이글의 종반으로가서는 일본의 이러한 특징이 어떤한 어두운면이 있는가를 쓰고 마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한국의 이런 문화적 문제점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하나 적어두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대충의 문화는 정량적 분석과 사고가 한국에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서양의 계몽주의가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그런 단계에도 한국이 미치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겁니다. 


일본은 개화기에 많은 것을 독일로 부터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독일도 그걸로 유명하죠. 농담을 못하고 철저히 분업화된 전문화가 시작된곳이며 장인정신으로 유명합니다. 왠지 메뉴엘따라 한다는 일본과 비슷한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철저한 계획성은 당연히 어두운면도 만들어 냅니다. 일본사람들이건 한국 사람들이건 개인차가 매우 매우 크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이렇다라는 말은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선진국 국민들은 비선진국쪽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이야기는 관심있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역사나 현실에 별로 관심없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선진국민들은 -우리도 그렇듯이- 모든 좋고 중요한 일은 선진국 세계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도시 거주자들이 모든 좋고 중요한 일들은 도시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죠. 


둘째로 그래도 그나마 유럽이나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안에 일어나는 일에는 전반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기계적인간, 부속품적인 인간이 아닌 독립적 이성으로서의 인간이 되려고 하고 그것이 권장됩니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엘리트를 제외하면 일반적이고 대국적인 일들에 관심이 정말 적은 것같습니다. 그냥 자기 생활밖에는 관심이 없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투표가 별의미가 없어서 할아버지가 수상하면 손자가 수상하고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로 지역구를 세습하는 일이 아주 흔하며 무슨 문제의식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은 바로 초등학교 교육에서 부터 시작되고 잘나타납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아이들을 키우는데 절대적으로 주변사람과 사이좋게 정해진 규칙을 따라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를 풀어도 선생님이 풀라고 하는 방식으로 풀지 않으면 그 풀이는 틀린것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려도 선생님이 구도를 정해주고 똑같이 그리게 합니다. 똑같이 똑같이 다같이 다같이가 엄청나게 강조됩니다. 


일본인들이 거대한 기계속의 작은 부속품으로 자기 생활에 충실하여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것, 즉 라면의 달인이 되고 초밥의 달인이되는 그런 것은 감탄스럽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달인의 경지를 넘어 일반화에 이르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동경대를 나왔다거나 하는 식의 엘리트가 해결한다는 식의 사고가 뿌리깊은것같습니다. 


이 엘리트주의는 전체로 말해서는 좋은게 아니지만 사실 걸핏하면 일본과 미국에서 자기 좋은것만 들여와 이야기하는 우리사회의 기득권을 위해서는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엘리트주의는 제가 보기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 즉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그래도 강조합니다. 회사를 위해 죽는다는 말이 실천하는 엘리트랄까요. 실제로 회사가 망했다고 책임지고 자살하는 사장 이야기는 그렇게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엘리트는 권리는 이야기 많이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죠.  


한국사람들에게 정말 자주 하는 이야기중의 하나가 바로 책임과 의무의 선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선을 맘대로 넘나 듭니다. 일본식으로 할거면 매우 보수적인 나라가 되겠지만 엘리트층은 그에 준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에 대해 어떤 욕을 하던 일본의 엘리트층은 메이지 유신이래 일본을 세계적 대국으로 만들어낸 성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에도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학장도 그렇게 부자가 아닙니다. 소니나 도요타 사장이 자기 아들에게 회사 물려준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입니다. 만약 일본식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런 엘리트주의를 받아들이고 해야 할 소리죠. 


책임 이야기 나오면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일본식이었다가 미국식으로 바끱니다. 평등이고 민준데 내가 무슨 책임이 있냐는 것이죠. 학생들 앞에서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굴던 교수가 어느 순간 갑자기 미국적 가치를 들고 나오는게 그런 것입니다. 자신을 만약 스승이라고 부를 것같으면 그런 대접을 원한다면 책임도 져야죠.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렇지만 문제가 생기면 너와 나는 그저 고용인과 피고용인사이다라고 말하는 회사사장처럼 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죠. 


그 한인학교의 한국여성분은 일본철학과 문화에 매료되어 그것이 어떤 보수성을 만들어 내는지 지금 일본이 겪는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건 좋은 것도 나쁜것도 아니죠. 그런 보수성 우리는 도저히 견디고 살아갈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될수도 미국이 될수도 유럽이 될수도 없습니다. 멋진 자동차 타이어는 자동차에는 중요한것이지만 제트기나 오토바이에는 쓸모가 없는 것이죠. 뭐가 좋은지 나쁜지는 그것만 떼어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우리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일관적이고 깊이가 있는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전통을 잘 다듬으면 분명 그런게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런게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낡은 모습을 먼지만 덮어쓰고 있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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