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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단편소설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

by 격암(강국진) 2010. 12. 24.

언제나 화창한 날씨만 계속되는 해변가 마을의 해변가에는 시간을 낭비한 한마리 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만약 거북이의 몸통이 그렇게 무겁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다리가 그렇게 짧고 두껍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거북이가 햇살을 그렇게 사랑하지만 않았더라면 거북이는 많은 알을 낳고 많은 자손을 거느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무척이나 느렸습니다. 게다가 햇살을 받기만 하면 거기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졸았습니다. 그러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밤이 되거나 이따금씩 구름이 해를 가려 잠에서 깨어날 때면 거북이는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느려터진 거북이인가. 내가 이렇게 게으른 거북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알을 낳고 새끼들을 많이 생존시키려면 해변가에서도 좋은 자리를 알아두어야 했습니다. 시기도 정확히 따져봐야하고 무엇보다도 좋은 짝도 빨리 찾아야 했습니다. 잠에서 거북이는 허둥지둥대면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구름에서 나와 햇살을 비추게되면 계획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거북이가 다시 잠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거북이는 자신의 무거운 몸과 짧은 다리와 햇볕에 취하는 습성을 한탄했습니다. 거북이는 자신이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해변가를 거닐던 고양이로부터 마을 안에는 현명한 고양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명한 고양이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며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현명한 고양이를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방법을 묻고 싶었습니다


거북이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서 거북이는 스스로를 현명한 고양이라고 부르는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너무나 기뻐서 그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고양이는 물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것이 괴롭지 않습니까?”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서둘러 대답했습니다.


아주 괴롭습니다.”


그러자 현명한 고양이는 거북이에게 신비의 물약을 주었습니다. 물약만 마시면 시간을 낭비한 괴로움 따위는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물약을 주는 고양이에게 감사의 말을 거북이는 서둘러 물약을 마셨습니다


물약을 마시자 거북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뭘해야 하는지 잊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괴로움도 잊었습니다. 그러나 약기운이 떨어질때면 괴로움이 다시 몰려오는 것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자기를 잊어갔습니다. 이제 거북이는 자신이 거북이인지 고양이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던 어느날 사고가 생겼습니다. 현명한 고양이가 담장위에서 떨어져서는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거북이가 만난 첫번째 현명한 고양이는 목이 부러져 혀를 내밀고 죽었습니다. 고양이는 본래 그런 일이 없는데도 흉하게 죽은 고양이를 보고 거북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렇게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진짜로 현명한 고양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힘들었지만 거북이는 물약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오랜 시간을 걸었을때 거북이는 스스로를 현명한 고양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고양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있을까요?” 


현명한 고양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그게 제대로 계획을 세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리미리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정확한 계획을 세우면 시간은 낭비되지 않을 있지요. 나에게서 바로 정확한 계획을 세우는 법을 배우세요.” 


과연 옳은말이라고 생각한 거북이는 현명한 고양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을 배우는 일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어려웠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북이가 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에 거북이는 점점 이해를 하기보다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외워버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거북이는 이제야 말로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거의 익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북이는 자신이 세운 계획 안에서 이상한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계획 안에는 A장소에서 B장소까지 날아가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거북이는 실은 자신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을 통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계획이 완결될 때쯤 보니 자신은 정작 그런 계획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현명한 고양이에게 이를 알리자 현명한 고양이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계획은 완벽한 겁니다. 당신이 날개가 없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요. 계획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좀더 노력을 해보세요. 날개가 나올 있도록 자기를 바꿔 보는 겁니다. 새로운 거북이로 태어나야 합니다!"


거북이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거북이에게는 날개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현명한 고양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거북이는 스스로가 제대로된 계획조차 따를 없는 형편없는 거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펐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수련을 하면서 자기 몸에서 날개가 나오기를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친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뒤로하고 길을 다시 떠났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뒤로도 몇명의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춤을 추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고양이도 있었고 거대한 무덤을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처럼 답을 알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거북이로 만들 답은 아니었습니다. 거북이는 그래도 현명한 고양이들의 말에 따라 방법 방법을 써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거북이는 드디어 지치고 말았습니다. 더이상 여행을 계속할 없다고 생각하게 거북이는 다시 옛날의 해변으로 돌아와서 모래사장위에 몸을 눕혔습니다. 해변은 여전히 뜨거운 햇살로 가득했고 햇살을 받자 거북이는 다시 졸렸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그렇게 졸리는 것이 싫었만 이제는 그것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거북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방법을 찾기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했고 이젠 너무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자 거북이는 다시 정신이 들었습니다. 해변은 언제나 기억하던 그대로 멋지고 푸르르게 앞에 있었습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북이는 그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법을 찾아 오랜동안 고생했던 것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시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여기서 꿈을 꾸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거북이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내가 거북이라는게 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사실은 꿈에서 깨어나니 날렵한 몸을 가진 고양이인것이 현실이었다면 좋았을거야.”


거북이가 이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거북이는 문득 해변가쪽의 바위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고양이는 왠지 외로워보였습니다. 거북이는 고양이에게 미소를 보내고 고개를 조금 숙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서 거북이를 봤습니다. 외로워보인다는 첫번째 인상은 고양이의 눈을 보는 순간 바뀌었습니다. 고양이는 뭐라 말할수 없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한동안 거북이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그러더니 고양이는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날씨 좋네요.”


맞아요. 여긴 항상 날씨가 좋지요. 세상이 전부 이런줄 알았는데 현명한 고양이를 찾아나서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현명한 고양이요?”


.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래 현명한 고양이는 찾았습니까?”


찾았어요. 그것도 몇마리나.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니 이젠 그들이 정말 현명한 것인지 수가 없군요. 최소한 나보다는 현명하겠지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방법 그러니까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움직이고 햇살을 받으면 졸지도 않을 그런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런 배우지 못했습니다.”


여긴 날씨가 좋네요.”


이상한 고양이는 날씨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는 햇살이 너무 뜨겁군요. 내게도 두꺼운 등딱지가 있었다면 여기 오래오래 있을 있을텐데 말입니다. 가봐야 겠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한번도 등딱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고양이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햇볕속에서 몸을 일으켜서 천천히 걸어가는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하는 고양이입니까?”


천천히 걸어가던 고양이는 멈춰서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그냥 고양이입니다. 시간을 낭비한 적도 시간을 절약한 적도 없는 그냥 고양이.”


거북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고양이야 말로 현명한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물었습니다


내게 한마디만 해주고 수는 없을까요?”


당신도 그냥 거북이 입니다. 시간을 낭비한 적도 시간을 절약한 적도 없는 그냥 거북이죠.”


말을 남기고 고양이는 사라졌습니다


거북이는 입을 벌린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한동안 쳐다보았습니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거북이가 쳐다보고 있던 참에 구름이 지나가고 햇살이 다시 나왔습니다. 거북이는 다시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가 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전에는 늘상 자면서도 자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왠지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푸르른 파도를 보면서 잠에 빠져든다는 것이 너무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거북이라는 사실이 더이상 유감스럽지 않았습니다. 거북이는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거북이는 마침내 그냥 한마리의 보통 거북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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