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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단편소설들

소설 한반도 2060년

by 격암(강국진) 2012. 1. 10.

2060년, 한 노인의 회고


1. 이글을 누가 읽게 될런지 나는 잘 모른다. 분명 나의 손녀는 읽어줄거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나의 마지막 편지다. 되도록이면 많은 시민들이 이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 나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이글은 나자신의 욕심을 위해 쓴 글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어느 정도 살아갈수 있는 돈은 가지고 있다. 사실 요즘의 기술발전을 생각해 보았을때 이돈으로 몇십년을 더 버틴다면 말그대로 영원히 살아갈수 있는 기술이 나올때까지 버틸만큼 각종 인공생명유지장치들이 싸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돈을 내 생명을 연장하는데 쓰는 대신 나의 손녀를 교육시키는데 쓰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코리의 딸을 키우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오랬동안 코리의 나이든 세대들은 자기들이 먹어치울 생각만 했을 뿐 코리의 새싹에 물을 주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때문에 우리는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코리의 싹을 티우는데 내가 가진 힘을 보태고 싶다.


게다가 그것 이외에는 살아가는데 큰 기쁨도 없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전에는 마지막 여행이 상당히 드문일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고나 병으로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당시는 사람은 그렇게 저절로 죽을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다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것은 괴상하게 느껴진다.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을 그들은 왜 원했을까. 


이제는 사람은 거의 죽지 않는다. 두뇌를 제외한 모든 곳의 기계적 생물학적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낡은 기계몸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생물학 기관으로 대체한 쪽이 많다. 두뇌도 대부분 수리 보수가 가능해서 돈이 있는 한 사람은 매우 극적인 상황에서만 죽는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현대과학은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서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충분한 돈이 없는 경우 나이를 먹으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진다. 아무래도 의료비지출도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삶의 존엄성은 지켜지기 어렵다. 결국 돈이 없으면 죽고 만다. 그것도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테일러 교수는 말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그는 존엄성을 잃으며 육체를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마지막 여행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는 마지막 여행을 위해 조용하고 고통없이 사는 것을 끝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회사를 설립했으며 스스로도 어느날 이제 충분하다라는 말만을 남기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테일러 교수는 좋은 일을 했다고 나는 느낀다. 실은 테일러 교수의 마지막 여행법이 통과되기전에도 한반도에는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나이든 부모를 자식들이 보살펴 주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그같은 풍습은 인간의 수명이 보통 백살을 넘기면서 급격히 바뀌었다. 몇대에 걸친 가족이 살아가는 시대에 모두 스스로를 돌보기에도 바빴고 사실 극소수를 제외하면 과학적으로 가능한 연령까지 살아남을수 있을 만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뭏튼 부모의 나이가 백살이라면 자식도 이미 70이 넘은 노인이다. 손자가 부양해야 할 사람이 너무 늘어난다. 할아버지까지 부양할수 있는 손자 손녀도 매우 드물다. 


한때는 많은 노인들이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국가등 생활비가 적게 드는 나라로 떠나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2035년에는 안락사가 일반화되고 돈이 떨어지면 대개의 노인들은 스스로 마지막여행을 떠났다.  


사실 먼 이국에서 생활비가 적게든다고 해도 늙은 몸을 수리하며 계속 살수있는 돈은 없기 때문에 그들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단지 자식들 앞에서 죽지 않았을 뿐이다. 반면에 지금의 마지막여행은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떠나는 것이다. 약속한 날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난다. 정부에서 축하금과 여행 서비스를 주기도 한다. 약속한 날이 되면 서비스 센터로 가서 캡슐에 눕는다. 그러고는 조용히 잠이 든다. 적어도 혼자서 멀리 떠나는 슬픔은 없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것은 이 여행이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것에 대해, 그리고 나자신에 대해 몇줄 적어 놓고 싶다. 


2.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서울의 강남이다. 강남의 거리는 대부분의 서울지역이 그렇지만 쓸쓸하고 무섭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서울의 강남에서 산다는 말을 하면 대개 혹시 하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 물론 나는 소위 코리다. 그렇지만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죄없는 민간인을 죽일 생각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따금씩은 나도 내가 코리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던 적이 있다. 나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미국인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다면 나도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옷을 입고 안전한 곳에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헬기가 떠다니며 감시를 하고 이따금 이유없이 총탄을 퍼붓는 일은 당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코리나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모두 사람이다. 무엇보다 차별받는다는 것이 큰 아픔이 된다. 


물론 많은 보통 사람들이 코리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번 세계 문화센터 폭탄 테러라던가 코로나 비행선 추락사건등 많은 테러 사건, 정말 많은 테러 사건들의 배후에 코리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과연 그 모든 사건의 뒤에 정말 코리 해방전선, 작은 촛불이 실제로 관련되어 있는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모든 코리가 테러 사건에 연루되는 것도 아니고 찬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코리들은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다만 가난하고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그들은 차별받는 것에, 그들의 힘든 삶에 화가 나있을 뿐이다.


이젠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많지만 코리는 한반도의 주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코리들이 번성했던 건 아주 잠시이거나 없었으며 예전에는 중국이 한반도의 주인이었고 그이후에는 일본이 그리고 그다음에는 미국이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이 뭐건 그게 왜 중요하냐고 말한다. 이제 한반도는 세계의 모두가 공유하는 곳이고 코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지 배타적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요즘 코리스럽다라는 말은 어리석다라는 말로도 쓰인다. 코리의 역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므로 그리고 코리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씌여지므로 그야말로 코리스러운 사람들의 역사로만 남아있으며 그나마도 부정확한 것같다. 나는 나이가 많으므로 분명 과거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 사실들은 다른 명확해보이는 사실들에 의해 흔들리고 만다. 솔직히 뭐가 진실이고 뭐를 믿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단단해 보이던 진실은 많은 상처와 시간속에서 이젠 아주 물렁물렁해졌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믿음을 가질 뿐인지 모른다. 그 믿음이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믿음의 가치가 더더욱 소중히 느껴진다. 그래서 코리들이 믿음이 없었던 것에 대해 대단히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된다.


코리가 한반도의 주인이었다는 증거, 코리의 나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증거는 많이 있다. 적어도 한때는 그랬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한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코리는 코리의 말과 문자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 당시의 번영함은 무엇보다 이제 흉물로 남은 건물들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왜 이렇게 고층 아파트 건물들만 집중적으로 지어서 흉물스런 콘크리트 숲을 만들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코리들은 아파트를 짓는 데 열중했고 아파트를 매우 가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서 잠도 자지 않고 일했고 아내와 보낼 시간도 아이를 낳아 기를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넓지도 않은 한반도를 반으로 나눠서 싸우고 죽였고 그 반쪽의 안에서도 다시 반으로 또다시 반으로 끝없이 나뉘며 서로를 온갖 방법으로 죽였다고 한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그래서 한반도는 급격히 늙은 노인들만 사는 지역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되지도 않는 인구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고등교육기관은 급격히 부실화되었다. 그당시 최고교육기관이던 대학의 졸업자는 물론 대학원 졸업자도 급격히 늘었는데 나중에는 돈이면 얼마든지 학위를 사고 파는 시대가 와버린적도 있다. 무식한 사람들이 모두 학위를 돈으로 샀기 때문에 모두가 고학력자가 되었다. 이건 뒤집어 말하면 소위 학력이란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학력의 구분이 의미가 전혀 없어지자 한국은 더욱 급속도로 외국에 의존하고 야만적으로 살아가며 무엇보다 자기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지식인이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인은 모두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었다. 그들이 뭔가를 배운 건 다 남의 나라에서 만들어 진것 이었으니까. 


이렇게 까지 된것도 따지고 보면 코리가 코리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학문이건 사업이건 문화건 사람의 수가 어느정도 이상이 되지 않으면 그안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상류층은 대부분 자식들을 미국에서 교육시켰고 한국교육기관은 더더욱 부실화되어 연구건 학생이건 질이 저하되었다. 이는 다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쪽으로 나가서 결국은 한국의 대학들이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다. 코리들은 항상 너무 쉽게 한국에 그게 없으면 어때 바깥에서 수입하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코리들은 코리스러웠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일어날수 없었던 것은 노인 세대가 자신들의 사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중 한국에서 대학졸업장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장사를 계속 하던대로 하고 싶어했을 뿐 한국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도 졸업장을 원했고 대학을 운영하는 사람도 졸업장을 팔기만 원한다면 결국 학문이니 교육이니 하는 중간단계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대상이 되고 만다. 


부자들이 미국으로 보내서 미국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잘몰랐다. 가르쳐 주는 어른도 없었고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어른도 별로 없었으며 특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른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므로 코리의 나라는 노인들이 마치 영원히 살면서 자기들이 영원히 한국을 이끌것처럼 굴러갔다. 내가 곧 한국이다하는 식으로 말이다. 교육은 지도자를 양성하는게 아니라 바보아니면 매국노를 양성하는 것이었으니까.


노인세대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일으켜서 돈은 자기들이 벌고 그 비용은 세금의 형태로 젊은 세대가 부담하게 했다. 물론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그런 세금을 내지 않게 만들고 말이다. 


코리의 힘은 날로 약해진다. 2024년 코리언 정부는 한반도 세계화 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이는 한반도의 주권을 포기하는 선언으로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아무 차별없이 일할수 있고 재산권을 행사할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의 발전을 위한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외국인이 오히려 우대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한반도를 돈받고 외국에 파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과 일본과 미국의 삼국은 코리 정부가 진 큰 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자국민들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한반도 세계화정책에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걸로 그들이 부자가 될거라고만 생각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땅을 팔고 개발권을 넘겨주고 대신에 그 결과물을 나눠받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때 당시 아파트 재개발이라던가 뉴타운건설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던 재개발 사업을 전 국가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아파트를 좋아하는 민족답게 나라를 통째로 외국자본에 넘겨주고 나라를 통째로 재개발 하겠다고 나선것이다. 당신들에게 나라의 지분과 개발권을 주겠으니 당신의 자본으로 우리나라를 재개발해주시요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재개발은 대개 기존에 거주하던 사람들중 남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제 재개발된 아파트에 살만큼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개발된 동네를 떠나야 한다. 국가적 규모로 재개발이 일어난다는 말은 코리들이 대규모로 외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많은 코리들이 나라를 떠났다. 반면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코리들은 차별을 받는 반면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정착금이 지불되었다. 결국 코리가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말은 얼마지나지 않아 의미를 잃었다. 


이제 한반도 내부의 코리의 수는 불과 5백만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코리의 수가 줄은 것도 있지만 많은 젊은 코리들이 국적을 버리고 외국인이 되었다. 그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한때 우리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재개발 쿠폰을 팔고 동남아시아며 아프리카로 떠나간 일이다. 한반도의 대대적 개발이 진행되면서 물가는 터무니 없이 올랐고 재개발 쿠폰이라 불리는 채권의 가치는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10년 만기 국채로 지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채권을 할인해서 팔았다. 이때 거주권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이주한다면 채권을 아주 높은 가격으로 사준다는 제안이 있었다. 결국 재개발이 시작되고 그것이 완료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코리들은 한반도를 떠났다. 


이것이 코리의 비극이다. 나라는 실질적으로 없어져 버렸다. 한반도에서는 코리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를 공평하게 쓰기로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코리어가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코리의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한반도는 점점더 자주 세계반도로 불린다. 코리의 자취는 사라지고 잇다. 


지금의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살기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단지 그 주인이 코리가 아닐뿐이다. 서울쪽은 워낙 고층빌딩 난개발을 많이 해서 재개발이 거의 포기되어져 왔다. 때문에 서울은 세계반도에 남은 가난한 코리들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 코리들은 정부의 계약이 불공정계약이라고 주장하며 한반도를 코리에게 돌려달라는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극렬화되어 지금은 많은 코리들이 테러리스트의 취급을 받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숲은 한때 코리들이 그랬다고 말해지는 것처럼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다. 사실 가난한 그들이 살수 있는 곳은 이제까지 너무도 엄청난 재개발 비용덕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거기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곳도 이젠 헐리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중 하나는 테러리스트를 두려워하는 세계정부가 코리들을 밀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사람은 고향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비록 그곳이 차가운 콘크리트 숲이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리가 그저 밀어내고 없애야 할 바퀴벌레 같은 것이나 범죄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점점더 넓은 지역이 재개발되고 있고 이제까지의 선례로 보았을때 서울까지 개발되고 나면 코리의 수는 더더욱 줄어들것이다. 한반도를 떠나 외국으로 간 친척들은 대개 소식이 없다. 그들은 마지막 여행을 떠난것일까? 우린 단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을 뿐이다.  


세계의 시민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라도 마지막 남은 코리의 땅을 남겨두었으면 한다. 코리는 세계의 시민들과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허락해 주기를 세계 시민들에게 나는 부탁하고 싶다. 


3. 젊은 코리들은 이제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를 쓸뿐 코리의 말은 알지 못한다. 이제 거의 그말은 사라져 버렸다. 단지 몇몇 단어만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단어중에는 후회라는 단어가 있다. 수많은 단어가 사라지고 후회라는 단어만 남았다. 코리들이 많은 후회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후회를 했을까. 그들이 남긴 책들은 잔뜩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젊은 코리들은 그것들을 읽을 수없다.  그안에 어떤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하루는 내 또래의 코리들이 모인적이 있다. 날로 격화되어 가는 테러와 그로 인한 보복전쟁으로 우리는 하루도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때가 없었다. 극렬파들은 정당한 한반도의 주인인 코리들을 내쫒으려는 나쁜 중국인 미국인 일본인들에게 무력으로 맞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없다고 말한다. 그를 넘어서 사실 그들은 분노와 슬픔때문에 우는데 지쳐버렸다.


세계시민들은 외곽에서 야금야금 땅을 먹어들어온다. 그들은 코리의 거주지역을 되도록 비참하게 만들고 엄격하게 규칙을 적용한다. 그러다가 빈틈이 보이면 경찰들이 벌금을 내게 하고 사람들을 쫒아낸다. 그러고 나면 이제 세계시민들이 들어와 거기를 재개발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땅이 헤아릴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폭력에 답이 있다고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만큼 분노하고 슬프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코리의 무력은 세계의 무력에 비하면 한줌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시민쪽은 코리는 본래 폭력적이고 가망없는 인간들이라 그들이 그렇게 조심스러워하고 여러가지 자기보호장치를 동원할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폭력을 더해 봐야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무기나 폭력이 아니다. 그런 것은 지금보다 열배나 더 가진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다. 나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 없고 공동체 정신이 없고 코리로 불리면서 코리라는 것에 대해 사랑이 없다. 심지어 세계시민들에 대한 사랑도 우리는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코리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코리가 코리 아닌자들을 전부 죽이고 없앤후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사랑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부적으로는 사랑이 필요하고 외부적으로는 코리가 누구보다도 더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총탄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희생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서만이 가능하다. 이같은 것은 이미 간디가 영국 식민지로 지냈던 인도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잘 보여준것이며 마틴루터킹이 비폭력투쟁을 통해서 다시 보여준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코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마침 젊은 코리들- 그중에는 내 손녀도 끼어있다-의 교육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그들에게 코리의 말과 문자를 가르키고 코리의 역사를 가르켜야 하며 그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고 번성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세모임이란 것을 만들었다. 백살이 넘은 코리들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들은 돈이 없다. 마지막 여행을 얼마간 돈이 남았을때 떠나면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에 돈을 쓸수 있을 것이다. 


본래는 백세같은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우리들안에는 어떤 강렬한 감정이 터져나오게 되었다. 그러더니 너도 나도 마구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새나라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 감정은 너무도 강해서 심지어는 50살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자기도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모든 걸 기부하겠다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말렸다. 누군가는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백살이란 기준이 생겼다. 이제 우리 코리의 백세모임은 세계에 코리가 사람인 것을 보여줄 모임을 가질 것이다. 집단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모임이다. 그것은 물론 살아남아 있는 젊은 세대에게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고 촉구하는 모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 돌아볼것 없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가 괴물정부를 만들고 우리의 나라를 빼앗아갔다. 결국 우리는 뭉치지 못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배신하는 일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사기는 당하는 놈이 바보고 나쁜 일은 그저 관행이며 사람들의 행동은 항상 어떤 이권이 얽힌 배경이 있다는 식으로만 봤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없었던 건, 자기 자신이다.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을 성취했던 것, 미국이 영국에게서 독립을 성취했던 것, 심지어 옛날 일제에게서 한국이 독립을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기자신이라는 것은 마음쓰고 신경써주는 사랑이다. 누가 죽고 아프고 괴로워하면 어떻게 된일일까 생각해 봐주고 신경써주는 마음이다. 자기는 배터져 죽을 상황이면서 남들이 배고픈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면, 옛날로 부터 내려온 우리의 기억에 대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죽고 만다. 


수많은 눈물이 뿌려졌다. 그 눈물은 오직 느끼는 능력이 있는 인간들만이 멈출수 있다. 나같은 노인들은 이미 후회같은 감정밖에는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씨앗을 뿌릴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우리의 나라를 세울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입은 가슴들도 치유될수 있을 것이다. 바보같이 겨우 독립을 성취한 후에 남의 나라에서 흘러온 이런저런 말들에 휘둘려 정신병자같이 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슴이 따뜻한 지식인이 필요하다.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남은 사람들의 미래에 희망이 있기를 바란다. 


2060년 4월 11일.


노 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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