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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항공모함과 쪽배

by 격암(강국진) 2011. 4. 26.

2011.4.26

 

요즘 신문같은데서 항공모함은 빨리 방향을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실제로 항공모함처럼 큰 배는 엄청난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터보트처럼 확방향을 꺽을 수가 없다고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문득 나의 인생은 항공모함일까 아니면 쪽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화급한 일이 생긴다. 큰 위기가 온 것같거나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 방에 뜰 것같고 저렇게 하면 한 방에 인생 망할 것같으니 인생의 방향타를 어서 빨리 확 꺽어야 하는지 그러다가 아니면 좀 더 진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연일 종말론적 상황이 반복된다. 이번 선거를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이번 재난에 대처하는 것에 따라, 이번 개발계획을 관철시키는가 마는가에 따라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같다. 

 

이럴 때 스스로를 항공모함으로 생각하는가 쪽배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방향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달라진다. 항공모함은 우직하게 사는 것이고 방향전환을 쉽게 하지 않는 것이다. 큰 위험이야 피해야하겠지만 섯부른 방향전환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직하게 사는 사람은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사고나 손실은 그저 운명이겠거니 한다. 어차피 가속도 빨리 안되니 앞에 암초가 나타나면 그저 운명이려니 하는 것이고 고통과 손실을 감당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음이 편하니까 주변을 살필 여유가 있게 된다. 항공모함은 코앞을 보지 않는다. 멀리 저 앞쪽을 보고 옆과 뒤도 멀리 본다. 

 

반면에 쪽배는 이에 비하면 약삭바르게 사는 것이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그때 그때 내가 살고 싶은대로 가볍게 가볍게 사는 것이다. 과거의 자기나 주변 사람에게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삶에는 주변을 두루 살필 여유가 없다. 우리는 고독한 섬이 아니다. 나혼자 홱 방향타를 틀어봐야 온 세상이 홱돌아가는게 아니니까 가볍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기 쉽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기 쉽다. 그래서 쪽배처럼 살면 궁극적으로는 매우 외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신없이 좋은 것들을 향해 뛰었는데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아무 것도 없다. 더빨리 더빨리를 외치다보니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우리는 더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쪽배가 되기 위해서, 더 가벼워지기 위해서 뭔가를 자꾸 떼어내고 버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뭔가를 얻겠다고 어디로 빨리 가려고 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세상에는 좋은 충고의 말이 많다. 그런데 좋다라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의 세계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계속 뒤집어진다.  예를 들어 발이 편한 멋진 신발을 보면 아주 좋은 것이 분명하지만 현대인은 발이 편한 신발을 신어서 건강을 해치는 면이 있다. 본래는 마사이 족처럼 앞발로만 걸었는데 뒷발에 쿠션을 대고 다니니 점점 뒷꿈치에 충격을 가하는 걸음걸이가 되고 이게 건강에 좋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진짜로 현명한 것일까. 짧게 보면 편한 것이 길게 보면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노장철학에서 큰 지혜는 느긋하고 작은 꾀는 좀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오해하기 쉽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남들이 보기에 그사람은 놀고 있는 것같다. 그리고 놀고 있는게 사실이다. 좋아하는 걸 하고 있는데 일이라고 할수는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계속 놀기만 하는데 시간이 지나보면 한게 아주 많다. 이런 저런 업적도 세우고 여행도 많이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해놓은 일을 써보면 밤낮으로 일한 것같다. 반면에 매일매일 일한다고 바쁜 사람인데도 몇년후에 내가 지난 몇년간 뭐했나를 보면 한게 없는 것같은 사람도 많다.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고 남에게 나 이거했다고 할만한게 하나도 없다.

 

매일 놀고 즐겼는데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일 일하고 절약했는데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남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야 그렇게 놀고 있으면 안돼,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하고 종종 이게 급하다 저게 급하다를 말한다. 그런데 과연 뭐가 급한 것인것일까. 이 답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크기에 달려 있다. 말도 안되는 크기의 세계만 보고 사는 것도 문제겠지만 좁쌀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안달복달인 경우도 많다. 뭐가 그리 급하다는 것인가. 항공모함생각하면 최소한 하나는 좋다. 마음이 느긋해진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 마음의 평화를 주는 생을 산다는 것, 그것은 적어도 아주 가치있는 일중의 하나가 아닌가. 우리의 삶은 항공모함인가 쪽배인가. 답은 보기 나름이다. 하지만 그 고민을 멈추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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