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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지루함, 교만, 갑갑함

by 격암(강국진) 2011. 4. 14.

2011.4.1

 

엄청나게 복잡한 요리가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이 요리에 후추를 몇 개 던지고서 이 요리는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한다면 대단한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쉬운 것같다. 하나의 씨앗을 심어 기르는 사람은 흔히 자기가 씨앗에게 행한 행동때문에 씨앗이 성장해서 나무가 되거나 곡식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물을 주고 비료를 줬으며 햇볕을 쬐게 해주었으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당연한 것처럼 주어진 아주 많은 것들이 있는 가운데 사람의 수고는 후추알을 몇 개던지는 것처럼 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가뭄이 오고나서야 물이 당연히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병충해가 돌고나서야 병충해가 없는게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이러한 것같고 이것은 살아가는데 있어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여전히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수한 방향이 있으며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루를 살아가지 않을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문제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몇가지 문제에 처하게 된다. 하나는 치명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고 또하나는 삶이 점점 감옥에 갇힌듯 답답해져서는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걸 구체적으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가진 오감중 하나가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자. 아니 대부분의 감각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런 감각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기에 그걸 치유하려는 생각도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앞에서 말한 것같은 상황이 금방 벌어질 것이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이 절벽끝을 향해 걸어간다던가, 감각이 제거되어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이 점점 줄어들자 어느새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는 뻔히 보이는 혹은 쉽게 느껴지는 어떤 선택도 길이 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년이 갑작스레 과로사하는 일이 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된 것이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가정이 파탄되는 일도 많다. 누구도 예상치않은 어느날 갑작스레 죽고 싶어하지 않고 누구도 결혼을 할 무렵에는 그냥 한번 해본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만족스런 것으로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밖에서 관찰하면 그 행동은 장님을 연상시키는 어떤 것이 있다. 그들은 어느새 어떤 것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해진 것 같다. 몸의 이상신호에 무감각해지고 배우자의 기분을 느끼는데 무감각해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절벽끝으로 마구 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부동산 투기가 시대의 대표적 폐해처럼 말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새 자기가 1년에 천만원 저금하기도 빠듯할 때도 1-2억빚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전인생을 걸고 도박에 나선다. 마치 그렇게 번 돈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것처럼, 자기가 부족한 것은 그 돈뿐인것처럼. 

 

교육도 도박이 된다. 끝없이 갈아댄 칼날은 부러지기 쉽다. 아이를 입시공부를 위해 정도이상 밀어부치면 아이의 어떤 면이, 보이지 않는 면이, 부모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면이, 교수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면이 휘어지고 균열이 가기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금간 칼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순간에 멈추기보다 무한대로 칼갈기를 시도한다. 성공하면 1등 아들, 1등 학생, 1등 인재를 얻는 도박이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종종 우리가 부족한 것은 뭐뭐뭐 뿐이라고 생각하는 패턴을 만나는 것같다. 그게 전부인것 같다. 

 

치명적 위험에 빠지는 증상말고 절망에 빠지는 증상도 있다. 얼마전에 우리 아이가 집으로 오는 길에 비를 맞았다. 우산도 없이 집에 오는데 주머니에 있던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젠 비가 오기시작했고 결국 비도 맞고 물건도 못 찾은 대로 집에 와서 나와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비 한번 맞는다고 큰일은 없을터이지만 그 비는 사람들이 질겁을 하는 방사능비라고 불리는 비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일본대지진으로 원전사고가 난 직후였다. 터무니 없는 것은 물건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물건은 애초에 길위에 없었다. 물건은 주머니 안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아이가 물건을 잊어버렸다고 착각한 순간부터 아이가 당황해서 물건을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너무 몰두한 것에 있다. '어딘가에서 떨어뜨린 모양이야 빨리 길을 돌아가서 물건을 찾아야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아이의 시야는 매우 좁아졌다. 물건이 실은 주머니안에 잘 있을테니 다시 찾아보자라던가 이 물건이 아무리 중요해도 요즘 방사능 물질때문에 야단이라서 이 비를 맞으면 좋지 않을꺼야 라는 생각따위는 절대 들지 않게 된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물건을 찾는다 그리고 집에간다라는 계획이 흔들림없이 들어섰고 그녀는 첫번째 단계인 물건을 찾는다를 실행하기 위해 어려워지는 상황속에서도 오직 그것만을 하려고 한것이다. 비는 오고 물건은 안 찾아지고 그녀는 점점 처참한 심정이 되었을 것이다. 

 

어른으로서 무엇보다 외부의 제3자로서 아이의 그런 행동을 보면 쉽게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지만 어른들도 어떤 상황의 당사자로 나설 때 이렇게 되는 일이 많다. 아니 때로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생에 대해 촘촘히 계획을 잘세우는 사람은 그만큼 잘 절망하기 쉽다. 계획세우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계획세우기는 수단이며 임시적인것이라는 것을 잊고 그 계획에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계획세우기에 너무 몰두하고 계획에 너무 집착하여 그 계획을 세우던 당시의 생각 바깥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글짓기를 한번 잘하면 이 아이가 대단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기대를 가지고 계획을 세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예쁘다는 말 한 번 해주었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한 번 해 주었다는 이유로 자기에 대해 긴 계획을 세우고 기대치를 세운다. 그 계획이란게 종종 유명한 달걀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달걀하나를 가지고 달걀이 닭이되고 닭이 달걀을 낳고 다시 그것들이 닭이 되는 미래를 쭉 생각하고 부자가 되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때 그 달걀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 부풀려진 거품에찬 기대치만큼이나 좌절도 크다. 그건 이제 달걀하나가 아니라 농장하나쯤 아니 그 이상되는 엄청난 것이 깨어진 사건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하나의 자기 생각에 너무 몰두한 결과다. 

 

아이들은 대개 대학에 들어설 무렵의 나이쯤이면 말은 안해도 은근히 내 어딘가에 어떤 천재성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를 기반으로 미래에 대한 부푼 꿈도 멋대로 세운다. 이럴 때 무엇보다 나쁜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자기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하기에 뒤집어 말하면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삶은 살아볼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평생이라는 시간을 요리할 요리사가 요리란 후추알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멋대로 부풀린 기대치와 무감각해진 시각만큼이나 아이의 생각은 경직되어 있다. 따라서 한번 시험을 잘못보거나 한번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하는 일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 된다. 기대치높은 아이의 계란이 깨지는 사건이 된다. 내게는 후추알이 없으므로 요리는 애초에 하기 글러먹은 사건이 되고 만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를 쓴 퍼시그가 참선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그것을 내 식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참선이란 우리의 잊어버린 감각을 살리는 일이다. 앞도 뒤도 답이 아닐때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각이 살아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 잊어버린 차원의 사고가 일어나기를, 보지못한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냥 천천히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서둘러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으로 판단을 내버리지 말고 말이다. 

 

꼭 자리에 앉아 참선을 하는것이 답은 아닐것이다. 동네산보를 하는게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산이나 들판에 가보거나 전에는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겉보기엔 그저 일상의 일을 해나가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자세다. 삶이 지루하고 스스로가 교만하게 느껴지고 삶이 어딘가에 갇혀서 답없는 갑갑함만이 느껴질때  마음에게 시간을 줘야 할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당황한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그냥 스쳐보낸 작은 것들, 아내의 표정, 동료의 한마디, 신문사설난의 한귀절, 쇼윈도우의 라디오, 길가의 꽃한송이 그것들이 뭔가 중요한 것,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지는 않은가. 매일 매일, 매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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