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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아름다움이 낯선 시대

by 격암(강국진) 2011. 4. 8.

2011.4.8

 

통영, 부안 이야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는 사람을 오랜간 별로 보지 못한 것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이라던가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은 대학입시에 나오지 않으며 돈이 되는 일도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아예 머리에서 제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얼굴표정이며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1년동안에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아름답다란 표현을 쓰거나 비슷한 표현인 멋지다, 근사하다같은 말을 많이 쓰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걸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 안에서 정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보다는 어떤 복사품의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방은 대통령의 휴계실과 똑같습니다라던가 이 옷은 유명한 여배우가 입었던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멋지다, 근사하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방이나 옷자체에서 개인적으로 매력을 발견했다기보다는 그저 유명인이 그와 같은 것을 쓴다는 사실로 부터 이 것은 멋진 것일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정이 생략되어져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그런 식의 행동은 하나둘이 아니다. 누군가가 우리는 강남의 30억짜리 집에 살아요라고 말하면 그 집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도 멋지다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주 많아보인다. 누군가가 직함이 이러저러하다는 말 즉 종합병원 원장이라던가 유명대학의 교수라던가 사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사람을 가르켜 와 멋진 분이군요라고 좋게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같은 사람도 많아 보인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방식도 그렇다. 유명한 곳을 찾아서 하나라도 더 가려고 한다. 파리의 르블박물관에 가면 곧장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 그림 앞으로 가서 서둘러 사진을 찍고는 이제 다른 유명한 곳으로 재빨리 떠나는 식이다. 거기에는 이 유명한 그림을 한번 찬찬히 보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를 기다려보는 태도가 실종되어있다. 말하자면 유명한 요리사의 요리라니까 그걸 시키고는 맛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삼켜버리고는 이제 다른 유명한 요리를 먹으러 가자고 서두르는 모습이랄까. 여기서 우리는 분명 불감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지 자기과시용이나 투자목적으로 유명한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을 가르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가끔씩이라도 아름다움이란걸 느끼면서 사는 사람, 어떤 일이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나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기엔 한국엔 그런 사람이 정말정말 없다. 무서울 정도로 없다. 세상을 좋게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나로서는 괴상한 일이다. 

 

내가 돈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돈이 아주 많거나 혹은 돈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세상을 돈만으로 보거나 먹고 살기 위한 돈벌기가 너무 빠듯해서 배부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사람들은 뭐 그렇지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이공계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말하건데 다 그렇다고는 물론 말할 수 없어도 대부분의 이공계 출신 사람들은 아름다움같은 주제에 완전히 무지하다. 물론 아름다움도 종류가있고 예외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공계 출신자가 있다면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이 당신의 친구와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지. 야 그 콘도 멋지더라라고 하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은 정말 순수한 자기 느낌일까. 대중매체가 주입한 아름다움에 대한 어떤 이미지와 비교해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스티브잡스의 말이 요즘 세상에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솔직히 말해 그런게 거의 없다. 아름다움이 이공계에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문과계열은 어떨까? 나는인문계출신이 아니니 인문계를 싸잡아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소위 인문학도들 중에 자칭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 책많이 읽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왠지 다시 한번 불감증의 냄새를 짙게 느끼게 된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이념적 분석적 맥락의 정보를 머릿속에 넣은 나머지 아이나 꽃을 그저 아이나 꽃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남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중독되어 있달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노동자로만 보이고 어떤 젊은이는 그냥 젊은이가 아니라 88만원세대라고만 보이는것이 아닐까. 자기가 만든 개념과 분석도 그걸 반복해서 외우면 이제 아름다움에 대한 불감증에 걸릴 수가 있다.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오로지 나로서만 그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외워둔 패턴으로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입견이 문제고 기계적으로 아 그거 나 알아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하물며 남이 만들어낸 개념을 비틀거릴정도 잔뜩 머리에 담고 제대로 소화도 하지 못하면서 여러가지 단어를 써대는 가운데 그들은 얼마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을까. 

 

이것은 물론 대중적 인기때문이 크다. 정신없이 남의 이야기를 떠벌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존경을 받고 인기를 얻는 경향이 있다. 그런 흐름의 중심적 메세지는 아름다움은 저기 어떤 대단하신 분이 느끼는 것이다. 부족한 네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라는 불유쾌한 것인데도 그렇다. 그런 공부방식, 그런 교육방식이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데 배우는 사람들은 거기에 종종 열광한다. 그들을 보는 것은 제발 내게 더 많은 권위의 족쇄를 보여주소서하고 속박을 갈망하는 집단을 보는것 같을 때가 있다. 

 

내가 이미 거쳐온 사람들, 부자들, 가난뱅이들, 이공계 사람들, 이념과잉의 진보주의자들을 빼면 한국에 사람이 얼마나 남는가. 아 나는 유치원때부터 문제풀기 기계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 청소년을 잊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시공부로 그렇게 바쁘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별로 좋은 모범의 예를 발견하지는 못할것이다. 아름다움같은 것은 이미 매우 낯선 일이 되버린 기성세대가 세상을 가득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사대강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찼다는 정치인들, 대통령도 있다. 진보인사도 보수인사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을 종종한다. 나는 그들이 담장에  핀 이름없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정서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투적으로 허겁지겁 책을 읽어대는 사람들은 그 책하나 하나를 정말 아름답게 느끼면서 읽는지 의심스럽다. 아름다움에 대한 불감증이 넘치는 것같은 시대에 아름다움을 위한 개혁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말들이 또한 넘친다. 아름다움이란건 그저 수뇌급 몇명만 느끼면 충분한 것인가, 그들이라도 그런 감수성이 정말 있기는 한가?

 

도대체 뭘하자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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