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14
스마트폰에는 R-2 플레이어라는 어플이 있다. 이 어플은 KBS와 다른 군소 라디오 방송국들의 방송을 듣게 해주는 데 덕분에 주요방송국이 아니라 마포 방송국이라던가 영주방송국 같은 작은 방송국의 방송도 들을 수가 있다. 지금 나는 영주방송국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영주방송국의 방송을 들으면서 나는 참 어설프다 그리고 신선하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훨씬 더 매끄러운 주요방송국의 라디오 방송보다 이 지역방송에 더 흥미를 느낀다. 왜 그럴까.
수필가 윤오영은 수필과 예술을 논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필도 다른 예술처럼 엄격한 형식을 지키는 가운데 한자락의 파격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예술품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수필도 형식을 지켜야 하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형식만 따른 것이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형식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기계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학공식처럼 이러저러하게 사용하면 이러저러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와 같은 것이다. 과거에 여러가지 가능한 형식들이 시도되었고 그들 중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는 형식들이 살아남은 것이므로 알려진 모든 형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어떤 것을 창조하려고 한다는 것은 마치 현대인이 황무지의 원시인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우주선을 처음부터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왜 파격이 필요할까. 파격이 없다는 것은 형식만 있다는 것이고 형식만 있는 것은 그 형식을 전에 접해본 사람에게는 예측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공학에서 예측가능한 정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정보가 아니라고 한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그런 정보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는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측 가능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워낙 많은 영화가 만들어 지므로 미국영화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대작 영화들이 바로 이 부분을 잘 말해준다. 언젠가 부터 할리우드 대작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영화가 점점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한번 실패하면 영화사가 망할 정도의 규모로 자라나자 영화는 점점 더 검증된 공식에 매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영화에서 감독이나 배우의 개인적 매력과 감이 파고들여지가 없어진다. 각본도 한사람이 일필휘지로 쓰는게 아니다. 수십명의 작가가 몇년에 걸쳐서 다듬고 다듬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무 개성이 없는 매끈한 작품, 완벽한 형식을 구현해낸 작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런 영화는 이제 영화를 좀 봐서 그 형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예측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고 할리우드 영화는 돈을 더 퍼부어서 예측을 뛰어넘는 특수효과의 쇼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은 다시 제작규모의 향상과 함께 위험부담의 증가가 오게 만들고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오늘날 라디오 방송같은 것은 전혀 파격적인 새로운 매체가 아니다. 더구나 기술적 발전을 통해 전같으면 거대매체에서나 할 수 있었던 것을 요즘은 작은 방에서 혼자방송하는 사람도 할 수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형식의 다듬어짐, 그 형식의 기술적 구현이 누구에게나 널리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대형방송국의 방송은 할리우드 영화의 문제, 완벽한 형식아래 개성이 죽어 예술도 신선감도 주지못하는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기 쉽다. 어느정도의 형식을 이루고 나면 어설픈 가운데 들어나는 개인적인 특성이 거기에 숨쉴 공간을 준다. 그런데 대형방송국은 점점 완벽을 추구한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 더 검증된 개그맨, 검증된 컨텐츠에 검증된 멘트 그러다보면 재미가 없다.
나가수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면 경쟁은 결국 개성을 죽인다. 모두가 어떤 객관적 공식의 완벽한 복제품이 되고자 한다. 그런 시스템을 멀리서보면 바로 다같이 죽어가는 시스템처럼 보일 때가 있다. 새로움을 끝없이 죽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경직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 인생은 마땅히 예술이 되어야 한다. 지역자치 시대가 왜 요즘 중요할 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형식과 파격의 조화라는 부분을 기억해야 한다. 형식은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성의 표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역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생각난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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