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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크리슈나 무르티 쾌락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11. 5. 31.

2011.5.31

크리슈나 무르티가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쾌락에 대해 논한 것이 있습니다. 정리겸해서 여기 그 소감을 남겨볼까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느끼고 이해한 대로이니 맘에 들지 않으면 크리슈나 무르티를 욕하지 마시고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길.

 

보통 종교는 쾌락에 빠지지 말라고 하고 사람들은 쾌락에 빠지는 것에 대해 윤리적 죄책감을 느낌니다. 그러나 크리슈타무르티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쾌락이 뭔지 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맘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쾌락이란 무엇인가. 쾌락이란 결국 우리의 머리가 만들어 낸 과도한 기대입니다. 자연스런 즐거움은 쾌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쾌락의 본질이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허상이기 때문에 그걸 쫒으면 우리는 결국 빈 손으로 돌아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쾌락의 끝은 고통입니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한 연예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심장이 터질것 같습니다. 그녀의 손을 잡는다면 그날로 죽어도 좋을 것같습니다. 여기서 쾌락이란 바로 그녀의 손을 잡는 행위입니다. 

 

종교적 윤리적 가르침은 종종 이렇게 들립니다.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죄악이다. 죄를 짓지 말아라. 크리슈나 무르티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손이 뭔지를 생각해 보라. 그는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거 별거 아니거든. 니가 지금 눈이 멀어서 착각하는거지 아저씨 손은 손이고 그 연예인 손은 다이아몬드가 아냐. 그는 단지 말합니다. 그게 뭔지 생각해 보라고. 

 

어쩌면 범상한 우리 대부분의 사람은 쾌락 혹은 과도한 기대없이는 세상을 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보통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희망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대개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인경우가 많습니다. 복권한장 사놓고 행운의 꿈을 꿉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미쓰 김이 한번 웃어준 것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그녀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꿉니다. 상사가 한번 칭찬하니 이제 내 앞길은 탄탄대로라는 생각이 들고 논문 한 편쓰고 나니 이제 나는 세계를 바꿀 대 과학자가 될 것같습니다. 

 

이렇게 보고 나면 보기나름에 따라서 우리의 일상사 전부가 쾌락의 행위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고 하고 나면 더더욱 많은 꿈과 희망에 부풀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주는 생활력에 만족해 하고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약 야 그거다 별거 아니거든, 정신차려, 복권? 붙을 리가 있냐, 미쓰김은 벌써 다른 남자한테 넘어갔어. 그 상사는 원래 돌아가면서 한번씩 칭찬날려. 그래야 열심히 일하는거 아니까. 야 그 논문 누가 읽기나 하냐. 그나마 아직 합격도 안 됐잖아. 논문심사에 떨어져서 출판도 안될지 몰라. 이렇게 말한다면 살 기운이 없어질지 모릅니다. 우린 이런 사람 보통 싫어합니다. 

 

우리는 마치 마약중독을 겪는것처럼 쾌락중독에 빠져듭니다. 우리가 꿈꾸던 연애인의 손을 한번 잡고 나면 쾌락을 갈구하는 마음이 진정되고 이젠 더이상 그걸 추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이 더 강렬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녀의 손을 잡았을때 느꼈던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 짜릿함이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에서 연유한 것이던 뭐던 짜릿한 것임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복권사는 것에 중독되고 미쓰김의 표정을 살피는 일에 중독되고 상사의 칭찬을 얻어내는 일에 중독이 되며 논문을 발표하는 것에 중독이 됩니다. 더 짜릿한 쾌락의 느낌을 찾기 위해서.

 

자 이쯤되면 거의 마약중독과 우리의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건전해 보이는 희망의 행위까지 모두 동등하게 놓은 꼴이 되었으니 어떤 결론도 난감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쪽으로 가면 모든 희망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위에서 쓴 비관론자의 목소리처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말해야 할것같습니다. 그 반대로 가면 이젠 스토커가 되거나 마약중독자가 되고 게임중독자가 되는등 모든 쾌락중독자를 옹호해 주는 것같습니다. 이거나 저거나 다 꿈인데 쉽게 꿈꿀 수 있는 쪽으로 가자. 어찌보면 이것도 비관론입니다. 인생은 어차피 허무하다라는 결론이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일까요?

 

크리슈나무르티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매순간을 새로운 사람으로 살면, 어떤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새롭게 그 순간에 집중해서 살면 고통없는 즐거움과 행복이 우리를 채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얻으려고 하고 뭔가로 자기를 채우려고 하고, 뭔가가 되려고 하는 행위없이 자연스럽게 매순간에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해 하면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작은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이라는 것, 저기 숲속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내 손안에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더 좋은 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침에 출근길에 나올 때 아름다운 햇살이 거리를 비추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게 아니라 아름다운 햇살이 있어서 감사하게 됩니다. 꽃한송이가 아름다워 보여도, 오늘따라 아내가 아름다워 보여도 의자가 푹신하게 느껴지고 점심으로 먹은 라면이 맛있어도 다 감사하게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무수한 불확실성의 벽을 뚫고 나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뭔가를 기억한다고 할때 우리는 뭔가가 우리옆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뭔가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적인 기대치입니다. 그런데 이 기대치들이 틀리고 과도하게 평가된 경우가 바로 쾌락이라는 것입니다. 

 

저 산에 가면 나는 무지 행복해 질거야 라고 가보지도 않고 판단하고 기대하고 하는 것이 쾌락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기대치가 우리를 자극합니다. 그러나 계속 거기있어보면 진실이 들어납니다. 기대치와 현실이 틀립니다. 우리는 다급히 더 많이 더 강렬히 쾌락을 추구하지만 점점 더 진실은 강하게 들어나고 그럴때 우리는 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 실상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쾌락의 끝은 항상 실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로맨틱 코메디 드라마를 본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그 드라마를 적당히 즐길 수가 있습니다. 단 그 드라마의 현실성을 우리가 조절가능한 수준에서 믿는 경우만 그렇죠. 그게 아니라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면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사람은 저 드라마 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하여 세상이 그렇다라고 믿게 됩니다. 애초에 허구인것이 뻔한 드라마를 볼 때도 이런일이 일어나니 현실에서 추구하는 쾌락이 어떨까는 뻔한 일입니다. 쾌락은 기대와 합리화를 만들어 내고 우리는 허구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스스로가 만든 환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발앞을 보지 못하게 되죠. 

 

이 허구를 벗어날 때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밥이 그냥, 당연히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신기한 현상이 될 것입니다. 아들딸이 당연히 아빠 엄마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옆에서 아빠 엄마를 따르는 존재로 남아있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될것입니다. 

 

쓰다보니 한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글을 쓸 곳이 있다는 것,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로인해 나를 지키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 훨씬 즐겁고 쉬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쾌락없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에 나오는 내용은 거의 다가 제가 쓴 것이지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액면 그대로 인용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네것 내것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행여 흠결이 있을때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그걸 물을까 싶어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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