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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균형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1. 6. 10.

2011.6.10

 

여기 하나의 가게가 있다고 하자. 이 가게가 티브이방송에 나가서 광고를 크게 하게 되었다. 광고만 하면 손님이 엄청나게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광고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일까. 더 많은 손님이 곧 더 많은 돈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하나의 가게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면서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가게라고는 해도 여러가지 가게가 있다. 어떤 가게는 매일매일 뜨내기 손님만 맞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가게는 거의 회원제처럼 단골손님들이 찾아주는 것이 대부분의 매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가게는 그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손님들이 와서 돈을 낸다는 당연한 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가게가 유지된다는 것은 이렇다. 일정한 매출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유지관리의 방식이 있고 손님들은 일정한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면서 가게에 와서는 원하는 것을 얻고 돌아간다. 이 과정은 결코 가게가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손님과 가게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적 상호 이해아래 진행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식당에서 밥은 얼마든지 더준다라고 했다고 하자. 이 식당에서는 아마도 손님이 자유로이 화장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또 가게에서 손님들은 서로 이야기할 자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손님이 말도 안되게 이 원칙을 악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많이 먹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밥만 엄청나게 소비한다던가, 화장실을 말도 안되게 더럽게 쓴다던가, 친구와 이야기한다면서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시끄럽게 군다면 가게는 그에 따른 지출을 더해야 한다. 규칙이전에 상식과 윤리가 필요한데 이 상식과 윤리란 생각보다 장소마다 다르고 쉽게 바뀐다. 

 

한그릇의 라면을 팔더라도 이 라면에는 위에서 말한 유지비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화장실이 쉽게 더러워진다면 가게는 청소를 하는 점원을 더 고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적자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라면값이 더 비싸져야 한다. 음식값이 너무 비싸면 손님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너무 싸면 가게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짝장사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게와 손님간에는 하나의 평형상태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손님이 엄청나게 몰려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손님들이 계속해서 꾸준히 가게를 찾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광고에 의한 급격한 손님의 증가는 대개 그 광고가 끝이나고 다른 유행이 불면 다시 줄기 마련이다. 이러한 손님의 증가와 감소사이에서 가게의 균형은 흔들린다. 단골손님들은 가게가 전만 못해졌다고 느끼고 발걸음을 끊을 수 있다. 이익을 별로 보지 않고 점잖은 손님만 상대했던 가게는 손님이 왕창 증가했지만 여러 손익을 계산해 보면 생각만큼 이익은 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뜨내기 손님은 그 가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원칙을 잘 안 지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삶의 균형이란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가게와 손님사이에 균형이 있는 것처럼, 가족들끼리도 균형이 있고, 매일 매일의 생활에도 균형이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교를 한다던가, 일을 하는 것에도 균형이 있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과 욕심에 눈이 멀어 어떤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는 것은 다른 것일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무능해질때까지 출세한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아주 잘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사람은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당연해 보이는 과정이 곰곰히 생각해보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국회의원으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면 그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각각의 직업은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출세 출세만을 생각하다보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어서 결국 자기가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고 원하지 않을 만큼 바빠지는 자리로 옮겨가게 되기 쉽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매우 효율적이게 만들었던 균형이 깨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신화적인 이미지는 추락하고 마는 일도 생긴다. 

 

균형을 이룬 것, 익숙한 것은 사실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산소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듯 그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쉽다. 가게주인은 자신의 가게가 유지되는 것이 손님들이 지켜주는 어떤 문화적 원칙때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손님이 더 있으면 돈이 된다는 생각만 하기 쉽다. 정부의 사람이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한국기업이 어느정도 유지되는 것은 한국의 문화, 한국사람들의 문화가 그렇게 하는 것이란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서 일시키면 더 싸고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변화에 반대하는 것도 물론 나쁘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원에서건 사회적인 차원에서건 보이지 않는 것, 균형을 지탱해주는 것을 인식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유기체적 존재인 많은 것들이 시들어 버리고 말것이다. 각자가 다 자기 잘난 탓에 세상이 돌아간다고만 생각한다면 그 세상이 유지될 리가 없다. 우리는 물속의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는 매체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못볼 때가 많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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