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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기대치의 힘

by 격암(강국진) 2011. 6. 24.

2011.6.24

 

우리의 기대에 따라 우리의 경험은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대치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마술사들은 5살짜리 꼬마들보다 한 무리의 물리학자들을 관객으로 가지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더 군요. 아는 것이 많은 소위 전문가들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는 결론에 빨리 도달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속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2002년엔 프레데릭 브로셋이라는 사람이 54명의 와인 전문가들에게 적포도주의 맛을 시음하도록 했답니다. 그런데 여러 적포도주중에는 백포도주에 맛이 없는 식용색소를 넣어서 만들어 낸 가짜 적포도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54명의 와인 전문가중에 시음하는 적포도주들 중에 백포도주가 있다는 것을 느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시음을 해본 사람들 중에서 불과 2-3퍼세트의 사람들만이 술에서 백포도주의 맛이 난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와인문화에 별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모두 백포도주의 맛을 느끼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포도주의 붉은빛에 너무나 깊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붉은 빛을 보고 이러저러한 맛을 느낄거라고 강하게 예견한 사람은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기대가 맛을 바꾸는 예는 또 있습니다. 한번은 심리학자들이 32명의 자원자들에게 딸기맛 요구르트의 시식을 해줄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맛에 따라서만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 불을 끄고 시식을 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자원자들이 시식한 것은 초코렛맛 요구르트였습니다. 이 자원자들은 모두 딸기맛이 어떤 건지 잘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32명중 19명이 이 '딸기맛 요구르트'가 아주 훌룡한 맛이라고 칭찬합니다. 그 중 한명은 딸기맛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앞으로는 이 브랜드로 먹는 요구르트를 바꿔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대치는 우리의 미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때문에 멋진 자기 접시에 놓여진 브라우니는 종이 접시위에 올려진 브라우니보다 맛이 좋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어떤 와인에 족보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맛을 실제로 좋게 느낍니다. 그게 거짓말이라도 말이지요. 어떤 생선은 이름만 바꿨을뿐인데 생선이 팔려나가는 속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름이 다르면 기대치가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면 맛도 더 좋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미각은 생각보다 둔합니다. 한 바텐더에 따르면 눈을 감고 시음을 하게 했을 때 세븐업, 펩시, 진저에일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는 군요. 즉 그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눈으로 그걸 보고 어떤 다른 맛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뿐이라는 겁니다. 

 

마술사를 위해 환각을 만들어 내는 짐 스테인메이어가 말하기를 모든 속임수를 쓰려는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을 관중으로 원한다고 말합니다. 즉 더 많은 문화적 경험적 선입견을 가지고 오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남들보다 더 빨리 이게 이거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속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물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사물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하고 있을까요? 1977년 미국에서 행한 한 실험에서는 실험대상자에게 여러가지의 질문을 무작위로 던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에콰도르의 수도는 어디인가라던가 한 해에 미국에서 자살로 죽는 사람과 살인사건으로 죽는 사람의 수중에 더 많은 쪽은 어디일까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 그 질문들에 대해 실험대상자들은 답을 하는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그 답에 대해 확신을 하는가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우리는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을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해서 확신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실험대상자가 자신이 많은 지식을 가진 분야에 대해 답을 할 경우 물론 그 사람은 좋은 성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자신이 정확한 것 이상으로 자신이 더 정확하다고 확신한다는 겁니다. 즉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실제로 자신이 잘 아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대부분 에드워드 도르닉이 쓴 2008년의 뉴욕타임즈 칼럼을 부분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nytimes.com/2008/09/02/opinion/02dolnick.html?ref=opinion&pagewanted=print)

원문에는 식당에서 있었던 물고기 사기에 대한 논쟁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적 선호에 따라 그건 생략했습니다. 바텐더의 이야기는 제가 다른 곳에서 읽었던 것을 더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뭔가를 안다는 것을 압니다. 문제는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뭔가를 모른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즉 뭘 모르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무지의 크기를 제대로 재고 있지 못한다는 뜻이며 이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지식에 대해 과신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를 공부해서 어느정도 자신이 아는것에 확신이 들때 자신의 무지에 대한 측정치는 더더욱 틀릴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이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모두 다 안다고 느끼는 거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가 오히려 더 속이기가 쉽고 전문가가 더더욱 자신의 기대치에 더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주식시장에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주식투자에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식공부를 좀 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과신합니다.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주식이 오르거나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비슷한 패턴을 보고 잘못된 예측을 하고 마는 겁니다. 

 

이것은 단지 전문가의 문제들만은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같은 문제를 가질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나 당신의 아이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그들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남편이나 아내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확신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더욱 속기 쉬운 사람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당신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뭔지 당신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이 무지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더 큰 문제입니다. 

 

그것이 우리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어 내고 우리의 매일을 만들어 갑니다. 똑같은 하루를 보냈을 때 전혀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우리의 기대치에 의해 변형됩니다. 이름과 껍데기에 속아서 실제로도 나쁜 걸 좋게 느끼고 좋은 걸 좋게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는 그럴지 몰라도 어느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죠. 그때는 대개 너무 많은 것이 낭비된 이후이고 너무 많은 것이 바뀔 수 없이 결정된 이후가 됩니다. 이걸 생각한다면 나에 대해 이것저것 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나는 이사람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초심자의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이 진짜 나를 더 쉽게 발견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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