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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우리가 좋아하는 것

by 격암(강국진) 2011. 5. 10.

하루는 아내와 일본영화를 보는데 문득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영화는 항상 자연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고. 사실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가 보는 영화는 우리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렇기는 하겠지만 일본드라마나 일본영화를 생각해 보면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아내가 자연이라고 말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자연이 아니라 인간화된 자연을 말한다. 아마존의 원시림이라던가 에베레스트산같은 인적이 드문 자연이 아니라 어느 동네의 뒷산이나 공원에 있는 나무, 작은 강의 강가같은 것을 말한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는 사실 엄청나게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뜨거운 여름에 강변에 난 길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는 주인공, 그 옆쪽으로는 푸른 나무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는 식이다. 매우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내 느낌에는 일본 문화물에는 그런 자연이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주 진하게 배여있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은 그리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자기 주변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한다.


내가 일본에 처음 왔을때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일본은 한국의 과거인지 한국의 미래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일본에는 한국에는 이젠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 남아 있다. 전통을 좋아하고 옛 것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징때문일 것이다. 사실 잘사는 선진국은 대개 다 그렇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동경과 추억이 있다. 


반면에 한국은 과거를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고만 싶어하는 나라처럼 느껴진다. 항상 새 것이 좋다. 옛 것이란 그저 지긋지긋했던 과거를 떠올리게만 만들뿐이다. 요즘은 약간은 다른 것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본을 여행해보면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지겹도록 각인된다. 마쯔리(축제)가 엄청나게 많고 우동이나 모밀국수를 좋아하며 여자들은 유카타라고 하는 일본 전통옷을 자주 입는다. 단층집으로 죽 이어진 상가골목이 사방에 많고 거기에 가면 일본 전통과자라던가, 오래된 형식의 장난감을 파는 집, 돈까스, 초밥같은 흔한 음식집이 있다.  


그리고 일본 어디에 가던 조금만 걸으면 바로 공원이 나오거나 자연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공원이 많다. 엄청나게 많다. 인구당 공원면적을 비교하면 미국같은 곳과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미국은 우선 인구밀도가 작고 미국의 공원은 대개 차를 타고 가면 있는 그냥 대자연이다. 엄청난 규모의 산에 줄몇개 그어놓고 공원이라고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일본은 인구밀도가 높으니 인구당 공원면적이야 어찌되건 사방에 공원이다. 나는 일본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계 경제규모 2등 -당시에는 그랬다-의 일본이 그다지 잘 못사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원들을 보면서 생각을 다르게 했다. 일본은 공원을 참 잘꾸며놓았으며 일본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공원에서 산책하고 아이들과 놀고 바베큐를 하고 여러가지 취미 활동을 하면서 보낸다. 


이렇게 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단순하다. 결국 일본 영화에 어떤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그걸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그런 걸 좋아하니까 결국 일본이라는 나라의 각지에서 그것이 현실화 된다. 


한국사람으로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그럼 우리는 뭘 좋아하나. 우리도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있나? 별로 없는 것같다. 있어도 좀 더 단편적이고 단순하지 않나 한다. 강하게 부각되는 것은 부와 권력과 명예에 대한 동경뿐이다. 


이건 아주 나쁜 것이다. 미국은 땅이 워낙넓고 나라가 커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된다. 각지역이 워낙 다르다. 어떻게 말하면 원하는 곳에 가서 살면된다.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는 어떻게 사는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게 어떤 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 지역에 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나만 혼자 꿈꿔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 맘대로 공원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지역민의 공감대가 없다면 민폐다. 가능성의 소진이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 숲을 만드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법적으로야 무죄지만 법의 테두리를 넘어 생각하면 완전히 죄없는 행위가 아니다. 내 땅에 내 돈주고 짓는다고 무조건 자유일 수 있을 만큰 큰 나라가 아니니까. 


우리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이게 아니다 저게 아니다라고 비판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출생의 비밀이나 재벌가의 암투, 정치모략이나 왕가의 변화를 그리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람들이 아 이런게 좋은나라야 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하고 상식적인 행위가 한국에는 드물지 않나 싶다. 뭘 하고 살고 싶은데에 대한 답이고 표현이다. 다들 너무 바쁘고 코앞의 일이 너무 급하다. 돈이며 명예며 학위며 권력을 향해 뛰는데 그래서 그걸 가지면 뭘 할건데에 대한 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실종된 것같다. 국민소득 2만불 3만불을 향해 뛰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래서 국민소득 3만불 4만불 되면 뭐할 건데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드물다. 우리는 북한에서 '이밥 (쌀밥)에 고깃국 먹는'게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는다. 사는데 꿈이 고작 그거냐고. 국민소득 3만불 4만불 만드는게 꿈인건 그것보다 훨씬 고상한 것일까? 


상상하고 꿈꾸는 것의 가치는 매우 크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중 누군가 어떤 한사람이, 꿈을 대신 꾸거나 독점해 버린다. 우리나라를 맘대로 바꿔놓고서 이게 좋잖아해버린다. 우린 의견이 없으니까 그냥 그리로 끌려간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 꿈꾸는 것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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