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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안전한 동네에서 겪은 일본 대지진 그리고 그것이 보여준 세상

by 격암(강국진) 2011. 3. 14.

제가 있는 도시는 일본 사이타마현의 와코시로 이번 일본대지진의 직접적 피해를 입었던 센다이에서 3백킬로쯤 원전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후쿠시마쪽하고는 2백5십킬로 쯤 떨어진 곳입니다. 따라서 이번 일본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이 겪고 있는 여러참상에 대해서는 아마 한국에 계신분들이 저 이상으로 잘알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저라고 해서 쓰나미 현장을 직접겪었다거나 한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 동경시내 한인거리인 신오쿠보에 다녀와 보니 이젠 차들도 보통때처럼 다니고 가게들도 정상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특별히 굉장한 피해사진을 보여드리거나 할것은 없군요. 다만 이번 지진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보고 들은 소소한 일본 생활의 몇가지 부분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지난 금요일인 3월 11일 오후에 세미나를 듣고 있었습니다. 연사는 마침 시각적 신호가 어떻게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제의 지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는 지진이 흔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았으나 이번 지진은 이렇게 진원지에서 먼 곳인데도 일본사람들조차 내평생 겪은 가장 강한 지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기록상으로도 강도 9.0으로 일본역사상 가장 강한 지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건물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만 지진은 꽤나 길게 멈추지 않았으며 길에 서있는데도 바닥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7층에 사는 우리집은 입식거울이 쓰러지고 책꽃이위의 책들이 무너져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지진났을때는 탁자밑으로 피신했었는데 아이가 엄마 죽기싫어요라고 말할정도로 무서웠다는 군요. 저도 담담히 이렇게 글을 적고 있습니다만 실은 지진이 난후 몇시간은 일종의 정신적 휴유증에 시달렸습니다. 강한 지진은 물론 매우 드믄것이죠. 매우 드믄 자연재해를 겪으면 마치 탁자가 갑자기 하늘로 떠오른다던가 내 등에 날개가 솓아나는 기적을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이로인해 추측컨데 더 큰 재해를 입은 쪽의 주민들은 육체적 피해이상으로 정신적 휴유증으로 고생할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비슷한 것을 뉴욕의 쌍동이건물 테러에서도 느낀적이 있습니다. 쌍동이건물이 테러로 무너진다는 것은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말하자면 절대 일어날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 절대일어날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이젠 평상시에는 믿지 않았던 말도 안되는 음모론도 그럴듯하게 들리게 됩니다. 한번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도 한동안은 그런 정신적 휴유증을 겪었는데 지진은 더한 피해를 남겼을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진도 5이상의 여진이 하루에 150회이상씩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동네는 안전한 곳이라고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안전하다는게 가벼운 멀미가 지속될 정도의 상태입니다. 계속 흔들리기 때문이죠. 지진의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공포에 떨고 있을지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일본은 지진이 나면 핸드폰에서 지진이 발생했으니 대비하라고 신호가 옵니다. 핸드폰통화가 정상화 되자 핸드폰이 밤새 울어서 잠을 자기 힘들정도 였습니다. 


지진이 시작되자마자 휴대전화는 바로 끊겼습니다. 그러나 유선전화는 끊기지 않았고 인터넷도 끊기질 않아서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들이 트위터로 가장 빨리 정보를 접하고 인터넷 전화를 통해서 가장 원활하게 소통할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집도 한국과의 통화는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전화이기때문이죠. 그런데 오랜간 휴대전화가 끊겨서 가족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지진이 어느정도 가라앉자 가족이 걱정되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당연히 도로와 철도가 온통 마비상태였으므로 집이 먼곳에 있는 사람들은 귀가가 힘든 형편이었으나 저는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였으므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돌아가보니 막내가 학교에서 귀가할 시간인데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도 우리가족처럼 집앞의 공터에 나와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막내의 학교로 가보니 운동장에서 모든 아이를 선생님이 데리고 있더군요. 지진이 났는데 길바닥으로 아이를 보내지 않고 다 관리해 주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실제로는 더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부모들은 맞벌이 부모로 방과후에는 학교에서 그아이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모두 동경에서 귀가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동경에서 피난소로가서 밤을 지새웠다고 하더군요. 학교는 그 아이를 학교에서 재우고 다음날 찾아온 부모에게 인계했다고 합니다. 선생님들도 다 자기개인 사정이 있었을텐데 학교같은 관공서가 당장 자기일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집은 지진이 나면 가스공급이 저절로 중단되고 엘리베이터도 대개 저절로 운영을 멈춥니다. 그래서 우리도 저녁은 휴대용가스버너로 조리를 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중단된 가스공급을 다시 시작시키는 방법을 제가 몰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묻지도 않았는데 안부를 물으며 찾아와서는 한 일본인 이웃이 와서 그걸 켜주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여러통로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사회에도 오타쿠가 있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대개 침착하게 대응하고 서로를 돕고 관공서나 가게도 정상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카테리나 태풍때는 폭도로 변한 시민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런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난은 물론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또한 견뎌내면 큰 기회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물론 이런 자연재해가 반가울것일리는 없으며 그것을 잘 이겨내기는 힘든일이지만 잘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것은 일본사회에 큰 재산으로 남게되고 기회가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정쟁이 심하고 사회적 분열과 환멸이 깊어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전세계에서 정부재정적자가 가장 심각한 나라중의 하나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젊은 세대의 수는 적고 불황과 미래에 대한 절망이 조금씩 더 깊게 나라를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럴때 드는 회의는 바로 우리 일본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이런 고난의 시기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분명 그래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우리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우리 희망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정치인들은 당장 정쟁중단을 선언하고 야당은 총리에게 전적인 협조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원자로 폭팔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데 그걸 고치겠다고 찾아가는 엔지니어는 내가 죽어도 원자로 붕괴는 막아내겠다는 메세지를 남겼다고 하더군요. 수백킬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현장에 찾아가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과장은 아니지요. 문제가 일어나자 당장 음료수회사들은 자판기를 공짜로 개방하고 편의점에서 물을 나눠주는 가게주인도 많았으며 핸드폰회사는 요금을 무료로 했다고 합니다. 방송국도 당장 광고를 중단하고 재난방송에만 주력했습니다. 그 속력을 생각하면 나중에 이돈 어디서 받지, 얼마나 피해가 생길까 따위는 계산하지 않는 빠름입니다. 그런 하나하나가 다 일본의 저력입니다. 


물론 일본 스스로에게 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대지진은 한국사람에게도 어느정도 우리는 누구인가를 보고 듣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주로 트위터나 언론사 보도를 통해 듣는 한국의 정서는 많은 경우 상식적이고 건강한 것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쓰나미로 온동네가 불타고 정유공장의 불꽃이 백미터는 솟아오른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 난리를 보면서 한국언론은 한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일본침몰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감정적 분리를 확연히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실수라고 할수도 있겠으나 술집의 어느 취한이 뱉은 말이 아니고 거대 언론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때 좋건 나쁘건 우리 한국의 윤리적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언론사뿐이겠습니까. 트위터에서도 상식적 그룹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여러가지 잡음이 상당히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몇 목사들이 이번 재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을 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샀으며 일본은 돕자고 하는 사람들중에도 일본은 밉지만 같은 서두를 꼬박꼬박 다는 사람들이 꽤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완벽히 인간일수 없었고 이익을 따지거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또하나 주목할만한 것에는 한국사회에 대한 자학입니다. 일본인들의 침착한 반응을 칭찬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누구말마따나 조선놈은 어쩔수 없지 하는 식의 자기비하로 가는 일이 참많았습니다. 일본은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우리도 그이상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있어야 마땅한데 그런 자긍심이 트위터에 넘쳐나지는 않았으며 트위터가 그럴진데 기타 다른 게시판은 훨씬 더 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비하에 주식이 오를까, 기름값이 어떨까같은 계산기 굴리는 소리가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것이 비록 일부라고 할지라도 가슴아픈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분명 우리모습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부터 부분적인 단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핵발전소가 문제가 생겨서 전력공급에 차질이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분명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것을 잘이겨낼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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