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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반일감정에 대한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0. 8. 12.

그러고 보면 일본에 대해 이런 저런 글을 쓴적은 있지만 반일 감정에 대한 저의 생각을 쓴적은 없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쓴 기아 포르테를 빌렸던 경험에 대한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글이 누군가를 설득할수 있을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만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알맹이가 되는 것은 바로 민족이나 국가란 개념에 실체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념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해나가다 보면 이러저런 결론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글의 최후의 말미까지는 어떤 것도 결론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쉽게 이거다라고 단정짓지 말아달라는 것이지요.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전에 몽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몽고사람에게 징기스탄은 민족적 자부심을 제공하는 위대한 선조일 것입니다. 그러나 몽고의 침략을 받은 우리는 징기스칸을 위대한 인간으로 숭상할수 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몽고사람은 한국사람에게 과거 징기스칸의 침략에 대해 사죄해야 할까요? 그게 언제적일인데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모순이 생깁니다. 그 과거의 징기스칸은 자랑스워하되 그의 침략의 죄는 물려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재산은 물려받되 부채는 안물려받겠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라고 하면서 몽고사람이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한국 사람이 이젠 다 용서했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광경도 머릿속에 그려보면 좀 희극적입니다. 침략한 사람도 침략당한 사람도 다 죽고 사라진 마당에 이제와 자신을 징기스칸과 징기스칸에게 침략당한 사람과 동일시 하는 시각으로 대화하는 것은 좀 억지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걱정이 되는 군요. 몽고와 일본을 동일시해서 일본이 역사에 대해 사죄할 필요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그런 생각에 분노를 키우는 분은 좀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실은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란 최근의 것이며 해체하여 마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민족정서를 말하거나 애국심을 말하는 사람들을 전체주의자나 국우파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족이나 국가란 개념은 실은 힘없는 민중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며 그런 목적에 지금도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이엠에프터지면 애국심 이야기하면서 금모으기 하고 홍수나면 이재민돕기성금걷고 하는 식으로 문제가 생기면 국가나 민족을 들먹이며 그걸 해결하지만 돈을 벌고 이익을 남길때는 기득권은 자기 실속만 챙긴다는 것입니다. 민족이니 국가니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결국 속박하고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반성이란 개념하에서 국가나 민족개념을 무시합니다. 국제적인 여행과 협력이 흔해진 요즘 시대에 국지적인 국가나 민족개념에 연연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시대에 뒤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론에 이르기 전에 개념의 적용범위의 한계라는 것에 대해 -전에도 이야기한적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모든 지식과 개념은 그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겁다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 거시적인 세계에 적용가능한 것입니다. 높은 온도를 가진 한개의 원자라는 말은 모순적인 것입니다. 온도개념은 에너지가 평균적으로 어떻게 흐르는가에 대한 것으로 통계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한개의 원자의 온도라는 것은 마치 한사람을 말하면서 평균값을 말하는 것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모나리자의 그림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당한 거리에서 보기때문에 모나리자 입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는 물감조각과 캔버스를 볼뿐일 것입니다. 그걸 가르켜 모나라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개념들이란 것은 이렇게 적당한 수준에서 그에 대응하는 문맥속에서만 의미를 가지지 그걸 끊없이 확장시켜서 적용하면 우스꽝스러운 결과에 도달합니다.


한국인이라던가 한민족이라는 개념도 그렇습니다. 한민족의 정의가 뭘까요? 유전자로 결정됩니까? 그런 걸 비교할수 있다고 해도 그리고 의미있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저 납작한 분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정의를 따르면 아마도 일본국적을 가졌는데 더욱 한국유전자를 많아 가진 사람이나 한국국적을 가졌는데 일본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판명되는 사람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선택할수 있다거나 문화로 정의한다면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절대 진리라고 할수 있는 개념은 이세상에 없다고 할수 있습니다. 한계없이 옳은 것은 언어와 정의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가 한계를 가진 것이지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옳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개념은 허무한 것이며 가치적 허무주의로 우리는 돌진해야 한다고 하거나 득도한 고승이 그런다고 믿는것처럼 모든 것을 나누지 않는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개념들은 한계는 있지만 현실적 존재의미는 분명히 크고 작게 존재합니다. 어찌보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이지만 세상을 살아갈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국가개념을 무시할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대국의 국민들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개인을 지켜줄 공동체가 없을때 개인은 얼마나 무력해 지는가를 절실히 보게 됩니다. 한국도 가난한 나라는 아니지만 강대국도 아닙니다. 한국 문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정체성을 잃어버릴때 한국인들은 불행해 지고 말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족 애국심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매우 유용한 것이며 유효한 것입니다.


다만 그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일본인과 일본을 동일시 하는 것은 모나리자와 물감조각을 동일시 하는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지금 일본에 사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전후세대거나 일제시절 아주 어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과연 그 개인에게 어떤 사회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의심됩니다.


그러나 분명 집단으로서의 일본은 실체로 존재하고 시간적 연속성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의 정부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사회에 퍼뜨릴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일본 사회의 문화적 흐름에 대해 우려하고 경고하고 분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젊은 일본인들은 과거 역사에 대해 무지해서 그 결과 자기 편한대로의 편협한 시각을 가지는 것도 같습니다. 한국은 본래 역사적으로 항상 식민지였다라는 말을 태연히 한국인인 내앞에서 하는 젊은 일본인 과학자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일이 기억납니다. 오만한 역사의식이 보이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결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저는 과거사에 대해 좀 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성하는 독일인 친구를 본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동아시아의 분열은 일본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일본인이 가지는 가치관과 역사의식이 보편적이지 못한 것에 크게 영향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사회는 일본 사회의 테두리를 넘어설 의지도 능력도 불충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가슴아픈 역사를 보면서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과 누군가를 미워할 대상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현재의 일본을 제국주의 일본과 동일시 하는 시각도 억지입니다. 일제차를 쓰면 매국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부품은 일본제가 많습니다. 완성품을 삼성이 팔면 국산품이 되는 걸까요? 반면에 아이패드의 부품이 삼성과 엘지거라면서 자부심을 가지자는 식의 기사를 쓰는 것도 봤습니다. 일본 아사히에서 삼성 핸드폰이 사실은 부품이 다 일제라고 말하면 우리는 이제 삼성 핸드폰 불매운동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자동차는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이라서 국산써야 하는 걸까요? 그런 식이라면 2000cc 미만의 서민용차는 수입하고 사치품이라 할수 있는 비싼차는 절대 수입못하게 해야 옳은 거 아닐까요? 현실은 반대이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국내언론들은 국내대기업에 유리하면 다 애국애족이 되고 그 반대면 매국으로 선전하는 것같습니다. 그것에 따라가는 국민도 많고 말입니다.


일본에 한류열풍이 불면 자랑스러워하고 일본사람이 한국에 여행와서 돈쓰는 것을 반기면서 일본 드라마를 즐기고 일본물건 사고 일본에 가서 돈쓰는 것을 매국으로 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침략적 사고 방식입니다. 수출은 침략이고 수입은 침략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 이런 시각이 합리화 될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다 적합한 시각은 교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적당한 댓가를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받는 거지요. 거기에 침략이니 침략받는거니 하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부적절한 개념은 잘못된 결과를 만듭니다. 사회가 국제적으로 고립됩니다. 일본도 그래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면이 있습니다. 개념적 일반화가 잘안되는 문화를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다른 의미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철지난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빨갱이 운운하는 행위로 고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일부 반일감정을 강하게 가진 분들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됩니다. 분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곳에 분노를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부적절할 억압은 또한 오히려 반항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일본하면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소위 일빠로 불리는 사람도 생겨 납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 하는 식으로 일본 물건 좋아하면 매국노 하는 식의 과도한 편가르기는 아예 한국에 대한 비하감에 빠지는 한국인을 만들어 내는데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저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집단, 한민족, 일본민족이라는 개념의 현실적 실체성을 믿습니다. 우리 애국 애족합시다. 그거 없이는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 질것입니다. 특히 한국 문화의 발전을 통해 한국 사회가 보다 강한 구심점을 가지고 협동하고 같이 살아갈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강력히 바랍니다. 우리가 확실한 철학적 가치적 구심점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를 개방해 나갈수 있다면 그 가운데에서 역사 문제도 재정립될것이며 그것을 넘어 오직 그럴때만이 우리가 만족하는 형태로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개념의 한계를 잊지말고 적절한 상황에서는 그런 개념을 넘어설수도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개인의 일본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개념적 격차가 아주 큰 사람을 만나면 항상 그렇지만 곤란해 집니다. 입장차이로인한 한계로 이해하려고 해도 감정을 배제하기 어려운 말을 마구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일문제만 그런것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여러가지 방면에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적정거리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 해야 할 행동은 해야 합니다만 개념적 차이가 엄청난 경우는 대화가 불가능하며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됩니다. 준비가 될때까지는 거리를 둘수 밖에 없습니다. 논쟁으로 이겨서 본질적인 것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입니다. 일본에 한류열풍으로 한국드라마가 퍼지자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인식이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게 된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북한 사람들은 이해불가이고 폭력성이 높고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류열풍이 있기 전에 일본사람들은 북한과 남한을 뭉뚱그려서 같은 이미지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젠 구분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켜 달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 아주 많으며 한국에 여행간다고 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현대 한국인과 일본인이 인간적 신뢰를 먼저 구축하게 되면 그 바탕위에서 보다 보편적 역사의식을 만들어 갈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으로서의 일본인에게는 분노를 터뜨리지 말고 오히려 잘해주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친절한 한국인을 볼때 일본인은 역사적 반성을 보다 깊게 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저는 한국이 일본이 되거나 미국이 되거나 프랑스나 독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될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을 헤엄치듯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가 살아가는 방식은 둘중 하나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저 환경과 역사의 차이에 의해 다를수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국이 아닌 것을 보면서 가장 잘 답하게 되는것같습니다. 한국이 아닌것은 이렇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이것입니다. 그 결과가 그런 방면에서는 외국과 같아져야 한다던가 그럴수 없다던가 하는 것은 우리 나름의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외국에 대한 부러움에 빠져서 그리로 가야 한다는 것과 우리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에 대한 구분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후자를 항상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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