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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감정없는 일본인, 감정적인 한국인

by 격암(강국진) 2010. 8. 25.

아내와 함께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막 답답해 할때가 있다. 일본 드라마는 세세한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뛰어나다 못해 어떤 때는 지나치게 감정적 절제가 일어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같으면 저정도면 싫다고 하거나 사랑한다고 고백할것같은데 일본 드라마에서는 그걸 말을 못한다. 


그러고 보면 연구소에서 일처리하는 것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귀찮게 굴거나 괴롭히면 일본 사람은 상사를 통해서 신고를 하거나 한다고 한다. 한국이라고 해도 정도문제일뿐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남자가 성희롱을 해도 그 앞에서는 싫은 내색을 안하고 대응하다가 뒤로 신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싫으면 바로 쏘아붙이는 한국 사람을 생각하고 농담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는가 보다. 


비행기에서 만난 한 재일교포 아가씨의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미국에서 연수를 하고 돌아오는 그녀는 내게 한국남자는 좋아하면 막 허락도 안받고 기숙사로 찾아와서 조르고 하는 일이 보통이냐고 묻는다. 확실히 정도 문제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훨씬더 조심에 조심을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열번 찍어서 넘어뜨리겠다는 둥 하는 식의 발상은 일본에서는 없다.  


물론 언제나 일본과 한국 혹은 미국을 이야기할때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는 결국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이야기다. 일본이라고 해도 여러가지 사람이 있거니와 어떤 의미로 일본의 다양성은 한국보다 더 커서 이렇게 집단을 비교할때 과연 보통 일본인이라던가 평균적 일본인이란 누구인가를 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분명 이런 감정적 절제는 일본사회의 특징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할때 과연 일본인들은 왜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된것일까.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감정이 없다던가 농담을 잘 모른다던가 하는 것으로 유명한 민족이 하나 있다. 바로 독일 민족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독일인은 그런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보면 일본은 개화기에 독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독일과 일본은 모두 장인 문화가 유명하고 정밀기계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밀기계라.. 그렇다. 그러고 보면 어떤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자신을 파악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감정적 절제와 표현력의 부재를 보이고는 하는 것같다. 스스로가 홀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생각할때, 그 부속품인 나는 정밀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고 방식이 옛 독일과 일본 모두에서 작동했던 것은 아닐까?


농담에 반응한다던가 감정적이 된다던가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일탈행위다.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래서는 안된다.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큰 시스템내에서 찾는 사람들은 그래서 대개 놀라는 것이 싫고 일탈행위가 싫다. 


반면에 개인주의가 발전한 미국에서는 집단이전에 개인이 있다. 따라서 미국 사람들은 때로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도 탈집단주의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감정표현이 자유로운 것일까. 


그렇다고 하고 싶지만 한국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 나라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설명은 잘 통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저런 피라미드를 만들고 감투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던가? 내가 종종 하는 말인데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보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성이 더 작다. 하나의 작은 집단 집단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보이지만 일본은 말하자면 여러가지 다양한 집단이 존재한다면 한국은 그저 하나의 집단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변태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는 알지 못하는 어디 먼 곳에 사는 한국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그저 우리집단의 사람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 비하면 훨씬 관심밖으로 생각하는 느낌이다. 마치 막부시절, 각 번들이 독립적 자치를 했듯이 다른 집단의 일이라면 아주 이상한 것이라도 그러려니 하고 잘 흥분하지 않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다. 


이렇게 봤을때 한국 사람이 감정표현에 좀더 솔직하고 자유로운 것은 합리주의적 사고, 과학적 사고가 좀더 강하게 뿌리박지 못한 것이 이유인것 같다. 전체주의가 가득한 한국이지만 특유의 대충주의가 그나마 각 개인들에게 숨쉴 자유를 주고 있다는 것은 모순적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전체주의적 문화, 권위주의적 문화를 버리지 않고 합리주의를 강화하고 보다 엄밀한 사고와 규칙을 적용하면 한국은 사람이 살수 없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수준을 목표로하는 대기업들은 국제적 수준을 쫒아가기 위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수가 없다. 권위적 문화와 엄밀한 과학주의가 결합하면 사생활도 없이 몸이 고장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친듯이 경쟁하는 그런 곳이 된다. 삼성이 얼마전에 행한 설문조사에서 사원들이 최고로 힘든 일이 몸이 아파도 일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답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가 뭘 배우는가 하는데에 관심이 많다. 여기에 관련해서는 미국의 문화상품과 일본의 문화상품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가하는 문제가 있을수 있겠다. 일본문화물은 그것이 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감정적 절제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좋은 하루키의 책에서도 이런 점들은 쉽게 나타난다. 주인공은 보면 과장을 좀 하면 거의 자폐증적 행동을 보인다. 감정적 파탄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조용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가족은 없고 매일 같이 파스타와 와인을 먹을 것같은 단순한 패턴이며 인간대 인간의 접촉에서 나오는 감정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고작해야 넥타이나 집에 놀러오는 고양이에 대한 감정을 세밀히 묘사하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이런 것은 이런 관점을 가지고 둘러보면 모든 일본 문화물에서 다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일본의 아이들은 혹은 일본 사람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좀 무지해 지는 것같다. 언제 좋아해야 하고 언제 기뻐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할터인데 주변의 사람이나 문화상품에서 절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래도 그안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지만 어린아이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니 배울수도 없다. 일본 아가씨들은 때로 몇가지 감탄사로 자신들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말하자면 감정적 반응을 세개 정도의 가면으로 하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1번 가면 저런 상황에서는 2번가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다보니 감정없는 일본인, 감정표현 없는 일본인이란 말이 나온다. 실제로 부부사이에도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일본에서는 드물다고 하며 내 개인의 관찰결과도 그렇다. 


반면에 미국문화는 바로 월트디즈니 영화들이 잘보여주듯이 감정적 표현이 일종의 싸구려 이데올로기로 구성되어 강조되고 교육된다. 싫고 좋고가 분명하니 아이들은 그런 걸 보면서 언제 화를 내야 하는지 언제 슬퍼해야 하는지를 쉽게 배울수 있다. 다만 월트디즈니식의 이야기는 종종 위험한 가치판단을 과감히 포함시켜서 차별적 시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나는 일괄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의 문화를 어느쪽이 좋다라고 말하지는 않으며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의 이런 풍조를 보고 있으면 왠지 일본은 대다수의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일단 그 절제속에 있는 것을 읽어낼 정도가 되면 일본문화의 내실이 오히려 아름다워 보일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문화가 아닐까. 


반면에 한국 문화는 그 특유의 대충주의가 눈에 거슬린다. 사회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훨씬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면 엄밀하게 말하고 사고하는 사회를 만들어도 우리는 살만한 나라에서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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