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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정의에 대하여

정의란 무엇인가

by 격암(강국진) 2011. 5. 17.

2011.5.17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정의란 현실적으로 어떤 테두리, 범주, 공동체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직 그런 테두리들을 다 잘 인식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테두리는 극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공동체, 테두리를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은 혹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매우 잘못된 것이 아닌가 걱정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도둑의 무리가 있다. 이 도둑의 무리안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란 태만이고 나쁜 일이며 다른 동료들에게 짐을 지우는 나쁜 행위로 비판받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도둑의 무리라는 이 집단의 내부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나쁜 행위다. 도둑질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테두리로 보면 좋은 일이고 도둑질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쁜 일이다. 이건 도둑만 이런게 아니다. 제국주의국가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일 때 가장 애국적인 제국의 시민은 어떤 사람일까. 그건 바로 가장 열심히 식민지를 정복하는 사람이다.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칭찬받을 것이지만 식민지 입장에서 보면 가장 극악한 범죄자이다. 

 

나는 전에 제5공화국같이 전두환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언짢게 생각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드라마는 주인공이 전두환이므로 전두환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주변에 테두리를 치고 그 안을 주로 보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는 전두환이라는 개인주변에만 테두리를 치고 전두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좀더 넓어봐야 전두환과 그 동료들로 이뤄진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어떤 소설도 어떤 드라마도 세상을 전부 보여줄 수 없으며 그렇게 한다면 소설과 드라마는 아무런 줄거리도 가지지 못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박스를 치고 세상을 보여주면 바로 위에서 말한 도둑의 무리안의 논리를 말하는 세상만 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거기를 보고 있으면 착시가 일어난다. 바로 도둑질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도둑질을 당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들도 사람들도 대부분 자신의 시야라는게 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게 온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주목해 봐야할 전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조중동을 보면 그게 잘 나타난다. 그들이 온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은 정말 작은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신문들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도 그게 온세상이라고 생각해서 재벌이나 권력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재벌이나 황태자 공주가 굉장히 자주 나와서 그들의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게 실은 그들의 시야로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기에 빠진 사람들이 착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런 드라마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어떤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지지리 못살던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재벌 회장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밝혀지고 이 회장의 아들은 친부모와 만나서 1년뒤에는 그 회사의 경영자가 된다. 이것은 고생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행복한 결말일까? 그 재벌회사가 100% 그 가문의 소유라면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큰 회사들은 다 주식회사이며 주식회사는 사장의 개인소유가 아니다. 어디서 경영구경도 못하고 검증도 안된 사람이 현 회장의 아들이라고 해서 1년만에 경영자가 되는 일은 수없는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말도 안되는 폭력이고 범죄행위다. 이런 사실이 잊혀지는 것은 그 드라마에는 주주들이라던가 그 회사의 직원들이 제대로 등장도 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낙하산 인사뒤에 있는 피해가 보이질 않는다. 고독한 전두환의 고뇌만 그리다 보면 전두환치하의 피해자들이 보이질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테두리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는 테두리라는 것이 어느정도는 임시적인 것이며 여러테두리가 존재하며 우리가 권리와 의무를 말할 때 일관성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입만 열면 신토불이를 말하면서 일본사람들이 한국 농산물을 안먹는다고 하면 일본인들은 매우 나쁘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그게 신토불이다. 재벌회사를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재벌회사의 운영을 보면 회사를 자기 집안의 개인재산으로 생각하는 듯한 행동을 할 때 이는 다시 앞뒤가 안맞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차별받는다고 흥분하면서 국내의 외국인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도 곤란하고 이 세상에 엄연히 국적의 차이에 의해 빈부격차와 복지차별이 존재하는데 한국사회라는 틀을 너무 간단히 무시하고 범인류주의로 나가는 것도 위험하다. 우리가 정말 한국인과 외국인을 아무 차별없이 대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말의 의미를 진짜로 심사숙고 안해본 사람이다. 당연히 그런건 있고 저런건 봐줘야지라고 쉽게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실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불쌍한 조선족을 돕는 일이 동시에 한국인 노동자의 살길을 막는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홀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어떤  환경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 환경의 일부로 삼켜져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환경의 산물인지에 대한 성찰과 고민없이 정의를 말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폭력의 정당화가 되거나 기계적으로 책에 쓰인 단순평등의 환상에 노예가 될뿐이다. 박애주의를 말하면서 수많은 동물을 죽여서 만든 모피를 입는 그런 모순말이다. 그녀는 혹은 그는 무의식중에 인간과 동물사이에 엄청난 선을 긋고 그 선의 존재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당연하니까. 그 당연한 선을 사람들은 여기저기 긋는다. 부자는 부자끼리 긋고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끼리 긋는다. 선생님이며 의사며 고시출신이며 회사원이며 다 자기맘대로 선을 그어서 그게 당연하다고 한다. 나는 선바깥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는게 당연하다. 왜냐면 나는 다르니까. 

 

은행에서 엄청나게 돈을 빌려서 집을 사놓고 집값이 오르질 않아 곤란에 처하니까 사회적 정의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의 눈에는 집이란 응당 가격이 올라야 하는 것이며 그녀자신은 투기꾼으로 남의 돈을 빼앗는 불로소득자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녀는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투기꾼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기꾼들이 망하는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세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어떤 선도 절대적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여러가지 존재하는 선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때로 뛰어넘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행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사회적 정의는 결국 현실적으로 어떤 선을 인정하지 않고는 논의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작은 테두리 안쪽만을 보면서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다. 어떤 사람들은 궁극적 정의를 찾기위해서 곧장 인류전체나 우주전체를 포함하는 테두리로 가버리고 정의를 이야기한다. 자기 성찰이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그들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권한과 의무를 마구 혼동할 뿐이다.  권한을 이야기할 때와 의무를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테두리를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작은 테두리는 이기주의가 되기 쉽다. 큰 테두리는 바보나 도덕적 순혈주의자가 되기 쉽다. 말하자면 아이가 차에 치어죽을 판인데 교통법을 어기는 것은 곤란하다는 식의 순결주의로 이것은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의미가 없이 비판만 하는 순혈주의다. 순혈주의자들은 결국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사람들'로 심판한다. 이들은 세상을 단순화시키며 사실상 천억씩 횡령하는 사람이나 백만원 횡령한 사람을 똑같이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부패한 주류층을 비판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돕는 역할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절대적인 정의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정의를 이야기하겠다면 최소한 테두리를 일관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테두리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 테두리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정의 논쟁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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