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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가벼운 소설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1. 6. 20.

2011.6.20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떤 때는 꽤 많이 읽는 기간도 있지만 어떤 때는 1년이 지나도 소설같은 건 하나도 읽지 않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이건 소설에 대한 가벼운 단상일 수 밖에 없다. 소설이라는 것은 사실 무수히 많은 측면들을 가진 단어다. 이런 한계를 전제하고 말했을때 소설을 읽는, 특히 가벼운 소설을 읽는 의미는 세상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뭔가에게 화를 내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하는데에는 무지가 필요하다. 모든 걸 안다면 우리는 화가 나지 않을 것이고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자에는 빈 배의 이야기도 이걸 말해 준다. 누군가가 배를 강에 띄우고 있었는데 어떤 배가 와서 부딛힌다. 그러면 상대편 배의 주인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배는 빈배였다. 그러면 화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배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물건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전부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건 물건이다. 심지어 사람의 경우도 누군가가 나를 친다고 해도 어떤 때는 화를 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미친사람이라고 하면 아 이사람은 이래서 저러는구나하고 이해가 가고 그럼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을 할뿐 화를 내지 않는다. 

 

소설 중에는 세상에 대해 화를 내게 하는 소설이 있고 반대로 세상에 대해 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소설이 있다. 첫번째 소설류는 대개 무거운 소설로 그 소설들은 이 세상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더 많은 무지를 느끼게 되고 그 결과 어떤 시스템이나 사람에 대해 더 많은 화를 내게 된다. 우리는 도대체가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벼운 소설은 그 반대로 이 세상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라고, 너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니 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사랑? 가벼운 소살은 이러저러한게 사랑이야라고 말한다. 분노? 뭐하러 그런 걸 가지지? 그건 이러저러하기 때문이야라고 설명을 해 준다.

 

물론 이 세상에서 잘팔리는 것은 무거운 소설보다는 대개 가벼운 소설이다.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효과에 관심이 있다. 머리가 아프고 세상살기 힘든데 가벼운 소설을 읽으면 머리가 가벼워 진다. 마치 진통제나 마약같다. 아 그런 거구나. 아 뭐하러 그런 일에 힘썼는지 몰라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아픔을 피할 수 없을 때만 그 아픔을 직면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개 그걸 무한정 피한다. 무거운 소설을 좋아하는사람들은 그래서 종종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을 경멸한다. 그들에게 가벼운 소설이란 대중을 마취시켜서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본론을 보려고 펼쳤다가 그가 가치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덮어버린 일이 있다 -영문판 자본론은 인터넷에서 공짜로 받아 볼수가 있다-. 과연. 참고 읽으면 나에게 좋은 지식을 많이 줄거라고 생각한다. 아뭏튼 자본론은 소설도 아니지만 추천받는 명저니까. 그러나 왠지 마르크스가 어질러놓은 관념의 난장판을 내가 청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뭔가 의미있는 것을 이룩하려면 우리는 이를 악물고 자기를 파괴하는 아픔을 무릅써야 한다. 대충 한가하게 세상을 보는 식으로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 그런 사실 이게 사실이라도 이를 악물고 어렵고 힘든 것만 한다고 그게 꼭 성공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성공한 사업은 나름대로의 피땀어린 노력이 뒤에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이고 그것때문에 피땀을 흘린다고 해서 언젠가는 성공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피땀흘릴 대상을 정해야 한다. 피땀가지고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무거운 소설이나 이론서를 끝없이 읽는 사람은 사실 일종의 자기학대를 즐기는 매조키스트에 가깝다. 그들은 자기를 포기함으로서 생기는 고통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은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이 없다. 그냥 계속 자기 몸에 채찍질만 가하면서 피흘리는 것을 즐길 뿐이다. 가벼운 책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무거운 소설, 무거운 책은 고생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떤 잘난인간의 노예가 되는 길로 접어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가벼운 소설에 대한 글이라 그런지 이 글에는 무거운 결론은 없다. 우리는 이따금씩 가벼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힌다. 집앞에 멋진 숲이라도 있거나 호수라도 있거나 바다라도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고 자연을 벗하면서 머리를 식힐 수도 있겠지만 그런 호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술한 잔을 하거나 가벼운 소설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화를 줄여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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