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책쓰기가 어려운 이유

by 격암(강국진) 2011. 8. 6.

2011. 8.6

 

몇달전에 한 출판사로부터 블로그의 글을 정리해서 책을 한번 만들어 보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로서는 무조건 좋기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의 게으름을 조금은 덜어줄 방책이라고 생각이 되어 한번 해보기로 했다. 

 

책을 쓰면서 나는 이따금 묘한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면 책이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모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불특정한 독자가 읽을 것을 생각해서 써야 하는 것이며, 책장을 넘기기전에는 나같은 무명인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좀 곤란한 일이다. 결국 책은 독자와의 대화다. 그런데 나는 독자에 대해 모르고 독자는 나를 모르니 대화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유명한 책을 몇권써서 독자로부터 이런저런 반응을 받았던 작자의 경우는 좀 다를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몇번 독자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므로 이제 이야기를 좀 풀어나가기 쉽지 않을까. 아 저번에 본 그분이시군요. 저도 약간은 기억해 주시겠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독자를 안다는 것은, 세상을 안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세상사람들이 모두 어떤 철학자나 과학자에 대해 알고 있고 읽었다면 대화를 위해서는 나도 그런 것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은 대화를 위한 매개체가 되므로 책이 전하는 본래 메세지에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아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중매인이나 공통의 친구랄까. 말하자면 우리집 라면맛은 말이죠. 그게 그러니까 저기 명동의 해물탕 라면집의 라면에다가 약간 시원한 맛을 더 더한 것과 비슷해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실은 책쓰기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이런게 아니다. 이런 부분 보다 더 본질적인게 있다. 나는 전에 무라카미류의 소설이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혹은 블랙스완 같은 것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느꼈다. 진짜로 좋은 책이란 오해되어지는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독자가 처음에 이 책은 이런거구나 하고 생각해서 그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데 혹은 이 책은 이게 좋아하고 생각하면서 그걸 읽는데 실은 그 책은 그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블랙스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너무 이야기에 잘 넘어간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그게 그럴듯하게 들리고 마치 그것이 어떤 증명을 한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스완은 어떻게 씌여져 있는 책일까. 블랙스완은 정확히 그런 이야기로 도배되다시피 한 책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에 속지마세요라고 말해주는 이야기를 정확히 이야기로 하는 책이랄까. 

 

하루키의 소설도 그런 면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하루키는 소위 탈근대화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즉 규범화되고 예측가능하고 그런 인간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소설안의 메세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라카미 소설을 대중적으로 매력있게 하는 것은 기계적이기까지한 주인공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친구나 친척은 없고 요리나 음악이야기 혹은 섹스이야기가 잊어버릴 수 없는 빈도로 반복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식상한 CF가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자극이 있다. 하루키의 대중적 인기는 이렇게 보면 소설안의 메세지와 정반대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떨까. 내 책의 메세지는 몇줄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은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차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잘모르고 있다는 것 그러나 불확실성은 나쁜 것이기는 커녕 모든 것이 존재하게 만들어 주는 원인이며 세상이 아름다울수 있고 신비롭고 재미있는 곳일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과학은 확실성을 추구한 나머지 불확실성에 대해 우리를 종종 눈멀게 하고 우리는 생명의 의미에 대해 장님이 된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중요성을 물리에서, 인공지능의 연구에서, 신경과학에서 학습의 문제에서 발견한다.  

 

내 책도 자체모순적인 면이 있다. 읽는 사람들은 명쾌한 논리와 증거를 기대할 것이지만 책안의 메세지는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없다고 증명같은 것을 너무 믿지 말라고하고 있다. 술은 정말 나쁘다고 말하면서 술을 파는 바텐더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노자는 몇자 안쓰고도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도덕경을 썼으나 오늘날이라면 도를 도라하면 도가 아니다라고 말해놓고도 구질구질하게 끝없이 긴 책을 썼어야 할것이다. 아뭏튼 어느날 흥이나서 마구 정리하고 쓰기 시작해서 책 한권분량을 어찌저찌 쓰기는 했으나 이렇게 몇줄쓰고 나니 할말은 다 한것 같다. 몇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심지어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결국 질문에 답할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답을 쓰고 있는게 괴상하다. 도대체 누가 이걸 읽을줄 알고 이렇게 쓰는가. 그들이 신경이나 쓸까. 책은 누가 쓰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매개로 해서 스스로 세상에 나오는 것같다. 언젠가 ted에서 들은 강연에 따르면 고대의 그리스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책은 내가 쓰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신내림하듯이 내 몸에 들어와 쓰는 거라고. 

 

신내림이 언제 올줄 누가 알겠는가. 어느 작가의 말처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도중에 오면 정말 곤란한 일이다. 영감이 왔다가 차를 겨우 휴게소에 세울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무렵쯤에는 가고 없을지도 모른다. 앞일은 모른다. 그러니 이 책이 정말 세상에 빛을 볼런지 아니면 그저 나만을 독자로 하고 끝이 날런지 나도 모르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