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책쓰기와 책읽기

by 격암(강국진) 2011. 9. 13.

2011.9.13

 

책은 모름지기 그 책을 넘어설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책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넘어서는 일이다. 열심히 냉철하게 책을 읽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책을 넘어섰을 때 나는 그 책의 저자가 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같다. 잘했다고, 내 농담과 함정에서 벗어나다니 제법이라고.


우리가 좁은 세상에서 마치 밧줄에 묶인양 버둥거리다가 좋은 책을 만나면 해방과 자유를 느낀다. 저자는 인자한 얼굴로 우리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고 우리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책은 제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고정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다 품을 것처럼 거대한 공간을 가진 것이라고 해도 책은 하나의 감옥이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 된다. 저자가 누구를 가두고 싶어서가 아니다. 말로는 항상 감옥을 만들 수 있을 뿐이며 다만 넓은 감옥이 있고 좁은 감옥이 있을 뿐이다. 좁은 감옥에서 사람을 풀어주고 넓은 감옥으로 넣는 것은 친절한 행위지만 길게 보면 꼭 그런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말하고 책을 쓰는 사람을 회의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요즘세상에 책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직접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굴 가두고 싶지 않으면 책따위 쓰지 않으면 된다. 말따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사는데 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없을 수 없고 감정이 없을 수 없다. 없다면 나는 그 사람이 어찌되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 이렇게 하면 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하게 된다. 하고나면 항상 그 결과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내가 법을 설한 바가 없다고하며 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책을 시작했을 것이다. 


책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그물이다. 그물이기에 책을 쓰는 사람은 응당 그 그물에 사람이 많이 잡히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많이 잡힐것을 걱정해야한다. 그 그물을 피하고 찢어버리는 사람중의 일부는 불신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는데 너는 더 나쁜 놈이 아니냐하고 말하는 사람이다. 일부는 그 그물 밖으로 나와서 기꺼히 즐겁게 책을 읽으며 나와 대화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책을 쓰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래야 한다. 

 

일단 그 그물 안에 들어와 벗어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이 바로 그물에 잡힌 사람들이다. 그물에 잡힌 사람이 많으면 세상에 빚이 생긴다. 법정도 도올도 책을 쓰고 세상에 빚이 많이 생겼다. 세상이 그들을 놔주지 않으니 호랑이등에 올라탄 사람처럼 바쁘게 살아야 한다. 그물안에 걸려 있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작은 그물에서 벗어났으면 내 그물에서도 벗어나라고 해야 할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많다. 

 

이 세상에 제일 고약한 책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심혈을 기울여 자기 스스로가 쓴 책이다. 심혈을 기울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책을 쓰고 말을 한다면 이젠 자기가 자기가 던진 그물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말을 하거나 책을 쓸 때는 얼마간 자신을 남겨두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야 스스로가 짠 그물에서 벗어나기 쉽다. 물론 자기가 짠 그물을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이 자신을 키우기도 하므로 어느 쪽이 반드시 옳은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책을 쓰고 말을 하다보면 사실 최선을 다해 제일 큰 그물을 짜기 마련이다. 더 크고 편하게 짤 수 있는 데 작고 답답하게 책과 말을 짜내서 누군가를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책쓰고 말하기는 결국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것을 말하고 다시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일이되기 쉽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