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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비우는 인문학, 채우는 인문학

by 격암(강국진) 2010. 2. 17.

2010.2.17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늘어나는 것이 있고 도를 알면 날로 덜어내는 것이 있다고 했다지만 배우는 일에는 분명 채우는 배움이 있고 비우는 배움이 있다. 채우는 배움은 우리가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는 것이다. 과거에 혹은 우리가 모르는 지역에 무슨 일이 있고 누가 무슨 말을 했으며 이러저러한 말들과 주장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운다. 비우는 배움은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것을 수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은 얼마나 틀린가, 이러저러하다는 믿음은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가, 여러가지 일들의 근원은 어떤 것이며 자질구레한 곁가지는 어떤 것인가. 이런 것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비운다. 

 

이 두가지 배움은 서로 확연히 구분되기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어떤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보통 보다 무식해지기 보다는 보다 많은 사례를 보고 배워서 시야가 넓어짐으로해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채우는 일에도 비우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백과사전같이 두서없이 기억니은 순서대로 나열된 지식을 무조건 외워야 할것이다. 지식을 얻으려면 구조가 필요하고 어떤 구조는 너무 편협하거나 비효율적이라서 지식을 채워넣기 곤란하다. 그럴때는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가듯이 집안의 세간을 전부 꺼내서 다시 배치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공부가 매우 비효율적이되어 실질적으로 공부가 완전히 중단되고 만다. 이 세간을 꺼내는 과정은 바로 우리를 비우는 과정이다. 우리 머리에 절대적인 거라고 붙어있는 것들을 일단 의심하고 떼어낸후에야 다시 정돈이 가능하기 떄문이다.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기괴한 지식의 성을 건축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흔히 인문학 오타쿠라고 불린다. 그들은 전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집을 짓지 않고 여기저기 덕지덕지 자재를 대어 엄청나게 거대한 집을 지었다. 그래서 그들은 쉴새없이 지식을 쏟아내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조금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대학진로나 연애문제를 상담한다거나 생활방식이나 교육문제, 정치문제등 현실적인 문제에 다다르면 그 거대한 지식의 성채는 변명만 내뿜을 뿐 결국 서둘러 누군가를 복제하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보통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는 일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고 있다. 니체와 사르트르를 줄줄 외우며 폼잡아봐야 소녀시대에 대한 짝사랑으로 심한 열병을 앓는 청소년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취업에 도움될만한 비결도 그렇다고 우울증을 탈출할 비결도 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 복잡하고 긴 책을 뭐하러 읽는다는 말인가? 허무하게 자랑하기 위해서?

 

이러한 풍조는 비단 인문학 오타쿠라고 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래도 책을 좀 읽는 사람들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것같다. 지식의 물량주의랄까. 이에 따르면 책 한권은 책 두권보다 훌룡한 것이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책이 더욱 좋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 집의 크기나 그 가구의 용도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집을 온갖 잡동사니 가구로 채우는 사람들처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래서 마구 지식을 삼켜서는 소화불량에 걸려서 일반인의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것을 지식인의 증거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지식을 돈처럼 더 많이 소유하면 더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권의 책을 오랜동안 여러번 읽으며 수양하고 단련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수천권을 읽느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수천권의 책을 읽고도 앵무새같이 외우는 이야기 밖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가 하면 단 한권의 책을 읽고서 심지어 그 한권의 책이 없이도 지혜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장 훌룡한 소설을 쓰는게 아니고 가장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이 가장 훌룡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은 비우는 인문학이야 말로 진짜 가치가 있는 시대인것 같다. 정보가 너무 흔해서 정보를 선택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우리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잘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선전문구를 듣는데 이것들은 사실상 일종의 최면이고 사기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한 개인으로 무력하게 그앞에 노출되는되는데 거대한 미디어는 우리의 머리를 통째로 바꿔버리려고 협박하고 회유하는 것이다. 

 

비우는 인문학, 비우는 철학도 결국은 말인지라 결국은 더 많은 지식을 주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은 늘어나는 지식보다 훨씬 많은 것을 비워준다. 그리고 최소한의 복잡성을 가진 길잡이가 될만한 지혜를 준다. 우리는 정말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러니 철학적 사고, 인문학적 소양도 오늘날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생각하기 귀찮고 현실이 무섭다고 대중적 문화로 머리를 채워버리고 현실도피를 하는 것은 술먹기와 똑같다. 깨고나면 다시 현실이 우리를 기다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비우는 공부, 비우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세상에는 알콜 중독자와 로보트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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