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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양파와 짜장면 그리고 독서

by 격암(강국진) 2009. 10. 14.

2009.10.14

 

짜장면을 먹을때 나는 단무지보다 양파가좋다. 그 아삭거림을 느끼며 짜장면을 먹을땐 행복하다. 짜장면을 먹으며 만화책이건 철학책이건 눈물나는 소설이건 재미있는 책한권 옆에 끼고 있으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요즘은 책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겨서 여기저기서 책을 보러다니면서 독서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짜장면과 양파로 나름의 독서 방법을 이야기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는 건 뭘까. 책은 화장실의 휴지처럼 소모품일때도 있고 거실의 꽃병이나 화려한 가구같은 장식품일 때도 있으며 짜장면처럼 주식일때도 있고 아스피린처럼 약일때도 있다. 책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여러가지 용도로 읽혀진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다 모든 이유를 골고루 사용하며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책을 읽는 목적에 치우침이 있고 그래서 책을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나는 두가지 애독가들을 말해보고 싶다. 

 

먼저 책을 통해 지식을 채우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을 목표로 하고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서양의 현대와 고전의 명작들을 모두 섭렵하고 줄줄이 하루종일 지식을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중에 양파를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양파는 까고 까면 결국 사라진다. 허무하다. 그런데 세상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깊게 이해한다는 것도 사실 이런 면이 있다. 까고 까면 결국 온 세상이 사라지는 수가 있다. 머릿속에 든것은 잔뜩 있지만 염세적인 표정을 짓고 다니는 독서가들을 본적이 없는가?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험난하게 산에 올랐지만 산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거나 세상을 파고 팠지만 양파처럼 세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기 위해 독서를 하는 셈이 된다. 일단 허무주의에 빠지고 나면 애써 배운것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져서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시니컬한 논평을 날릴때나 쓰일뿐이다.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사람은 재산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책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기 보다는 이해가 안되도 읽었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그러니까 이 사람도 많이 읽고 읽는다. 재미없어도 읽고 재미있으면 더읽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유명한 책이면 무조건 읽는다. 

 

나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죽기전에 꼭 읽어야할 1001권의 책이라는 목록을 본적이 있다. 내게는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천한권이라니!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게 천한권이면 한 만권이나 2만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천권을 읽으면 뭐가 되는 걸까. 

 

이 사람들에게는 외국인 친구들과 짜장면을 먹엇던 기억에 대해 한마디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너무 일찍 짜장면을 먹기때문에 그걸 모르는데 뭔가를 맛있게 먹는 것은 전에 뭘 먹었던 기억이 있는가하는 것에 크게 의존한다. 아이들이 뭔가를 안먹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어느날부터 갑자기먹더니 어떤때는 상황이 급반전되서 이제는 엄청나게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짜장면을 즐기는 방법의 기본은 처음에 맛있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좀 덜 맛있는 짜장면도 맛이 있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없는 사람은 비위가 상한다는 둥하면서 못먹을 그 짜장면이 그런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맛이 있다. 사람의 머리속에는 일종의 패턴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즉 맛있는 짜장면을 알아야 짜장면을 즐길수 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앞에 짜장면 천그릇이 있다면 나는 응당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먼저 먹어야 한다. 그래서 짜장면의 깊은 세계를 알고 나머지를 먹으면 맛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독서가들은 순서나 개념은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래서는 짜장과 짬뽕과 기스면을 마구 섞어서 개밥을 만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소개하고싶다면 응당 내가 다시 태어나서 단 한권의 책밖에 읽을수 없다면 다시 읽기로 선택할 단 한권의 책이어야 한다. 천한권이 아니라 말이다.  

 

마음속에 기본적인 사고의 패턴이 자리잡았는데 그것이 너무 협소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 패턴을 깨부셔야 한다. 우리는 그래서 독서를 한다. 그러나 결코 사고의 패턴 혹은 사상이 없이 책을 읽을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선입견이 전혀없는 인간이란 가치판단을 전혀 할수 없는 인간이다. 결국은 어떤 사고 패턴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 눈으로 세계를 보고 봤던 책들을 다시 봐야 한다. 강물에 물지나가듯 계속 책들을 떠나보내기만 하면 그 사람의 정신은 결국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 짜장면이 더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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