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7
공원을 산책하다가 불확실성의 소중함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났다.
우리는 보통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을 좋아하고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며 결정되지 못한 미래보다는 보장된 미래를 좋아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는 돌멩이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처럼 끝없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를 멈추는 순간 그 노래가 세상에 그대로 굳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는 사라지고 말듯이 우리는 불확실성과 싸우면서, 결정되지 못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과 싸우면서 매순간 유지되는 존재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힘겨워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 아이의 주변에 마술과 같은 환경 즉 결핍이 결핍된 환경을 만든다. 먹을 것도, 놀 것도, 심지어 친구나 사랑도 풍요롭기만 하다. 그런데 사람은 마치 우리가 매순간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곧잘 잊어버리듯이 결핍되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결핍이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며 그러한 인식은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를 결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보는 여자마다 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었다면 이 남자는 그런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먹는 것이 풍요롭기만 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맛있는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할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정리해보자면 불확실성이야 말로 우리가 세상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며 우리가 스스로 누군가인가를 발견하고 만들어 가고 유지하게 만드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해 버린 공간안에는 생명이 살아남지 못한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저 기계나 물질일 뿐이다. 다시말해 아이를 사랑해서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한 환경에 아이를 던지는 부모는 충격적이지만 한마디로 아이를 죽이고 있는 부모라고 할 수도 있다. 아이는 마치 유령처럼 확실하고 결정되어져 있는 것들사이에서 투명해지다가 질식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병이 없는데 약이 있을리 없고 범죄가 없는데 경찰이 있을리 없다. 세상에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가 이따금 결핍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 자신이 유령처럼 변하고 말것이다.
이렇게 생각할때 내일이 불확실하고 아이가 말을 안듣고 아내는 철이 없으며 직장상사가 버릇없고 무능한것, 비참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 태어났거나 돈없는 집안에 태어났거나 무식한 집안에 태어난것 같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이 세상이 애초에 모두 정상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스스로를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마치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세상에서 청소부는 있으나 마나한것이나 마찬가지 이듯이 말이다. 청소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쓰레기를 제대로 알아서 치우지 못하는가, 저절로 쓰레기가 치워지는 세상이 없을까하고 투덜댈지 모르나 그런 세상이야말로 청소부를 아무 쓸데 없이 만드는 세상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모순과 부족함은 바로 청소부를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나의 들꽃이 기적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느새 우리가 들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수한 불확실성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확실한 세상의 확실한 사실로 보기때문이다. 들꽃은 어디든 언제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우리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길가의 어느 구석에 피어있는 들꽃을 당첨된 로또처럼 보지 않는다. 그 들꽃은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꽃중의 하나로 인식되며 따라서 거기에는 아무 불확실성과 놀라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개의 존재를 정말 개개의 존재로 볼 때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수많은 불확실성안에서 단 하나 존재하게된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지 못할 무수한 많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찌저찌 지금 이자리에 서있다.
이렇게 볼때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불확실성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우리를 유지하게 하며,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의미있는곳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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