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25
이 세상에는 가보면 기가 죽을 만한 블로그가 많이 있다. 이런 책들이 있었나 싶은 책들의 목록들을 줄줄이 늘어 놓으면서 말들을 하는데 그럼 나는 나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자책하면서 그 안에 뭔가 건질 것이 있나하고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경험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틀린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제일 실망스러운 경우는 남의 이야기를 자기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소개하는 경우다. 무슨 무슨 철학자나 무슨 무슨 과학자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고 앞으로 책을 더 읽어보겠다. 이런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장황하게 한다. 나중에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이것은 남에게는 물론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이 누군가의 노예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언어와 자신의 마음이 너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법에 대한 책을 읽고 외우면 뭘하나 그걸 지켜서 몸을 튼튼히 하지 않으면서 내가 건강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이나 플라톤이나 화이트헤드나 니체의 말같은 것을 외워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지만 그걸 달달 외우면 언젠가는 그 안에서 숨겨진 의미가 나올거라고 믿는 것같다.
어떤 강사가 연단에 서서 말한다. 여러분 여러분은 남을 복제해서는 안됩니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서둘러 공책에 그렇게 적고서 빨간펜으로 밑줄까지 친다. 이 광경에서 어떤 모순을 느끼지 않는가. 학생들은 그저 강사의 문구를 '소유'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강사가 말하는 것은 그 문구를 느끼라는 것, 강사와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소통하자는 것인데 서둘러 베끼고 있는 학생들은 본질을 놓치고 있다. 학생들은 강사에게 귀를 기울이고 강사를 존중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는 학생들에 의해 끊겨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새로운 자극을 주는 자극제로서이다. 진짜는 이미 우리 마음안에도 다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저 아는 것을 기억해 내기만 하면된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남에게 귀를 닫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남에 대한 경계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이 우리가 기억해 내야하는 것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어떤 말을 들었을때 그 말이 내 안에 울리는 느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말은 음악과 같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울림을 준다. 음악감상을 하는데 팝과 클래식과 국악과 가요를 모두 한꺼번에 틀어놓고 뒤죽박죽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대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 현란함 가운데서 절묘한 균형감을 만들어 내어 의미의 울림을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곡예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인문학오타쿠가 매문장마다 다른 철학자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풀어가는 세계관이란 그것이 비록 세계적으로 공감을 받는 유명한 어떤 철학자의 세계관과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한푼의 값어치도 없다.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구지화상은 어떤 사람이 법을 물으면, 그때마다 단지 손가락을 세우기만 했다. 구지화상이 외출하고 없을 때, 어떤 사람이 시봉하는 동자에게 “요즈음 화상께서는 어떤 법을 설하는가?”라고 묻자, 동자는 스승을 흉내 내어서 손가락을 세웠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구지화상은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아픔에 통곡하는 동자를 구지화상은 소리쳐 불렀다. 동자가 고개를 돌리자,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이 순간에 동자는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무시하자는말은 아니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으론 백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말들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머리속에 들어있는 말들은 족쇄일 뿐이다. 철학이나 인문학은 체험이다 지식이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논길 옆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볼 수가 있다. 그 지렁이를 보고 느끼는게 있다면 지렁이야 말로 가장 철학적인 언어다. 작은 아들녀석에게 화가 나서 씩씩대고 있는데 아이가 내게 와서 뭐라고 한마디 한다. 그 순간 뭔가 느껴지는게 있다면 작은 아들이 가장 큰 스승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쓰고 글을 쓰는 것은 조화로운 음악을 감상하고 조화로운 울림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그런 행위가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지식을 배끼는 행위가 된다면 적어도 인문학이나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행위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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