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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고졸자'도' 행복할수 있다?

by 격암(강국진) 2011. 10. 2.

2011.10.2

 

한국방송을 보는데 주제가 고졸자의 성공이었다. 아나운서는 고졸자도 행복할 수 있을까같은 질문을 던지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왠지 나는 뭔가가 편치않다. 아내는 그냥 보면 되지 뭘 또 골치아프게 생각이냐고 하지만 나는 물러서서 뭐가 맘에 꺼림직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 결과 내가 느낀 것은 그 프로그램은 고졸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학벌 지상주의에 반대하자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인것같지만 오히려 학벌이 낮은 사람에 대한 편견을 크게 드러내어 학벌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용에 상관없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키가 작은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라던가 못생긴 여자도 행복할 수 있다, 신체장애인도 행복할 수 있다같은 이야기를 하는 방송을 본다고 하자. 이런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은 정말 키작은 사람을 위하고 못생긴 여자를 위하며 신체장애인들을 위하는 프로그램일까. 실은 구분할 필요가 없는 구분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고작해야 불쌍한 사람들에게 격려를 보내자 같은 자세가 아닐까. 그 프로그램이 고졸에 의해 만들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졸자도 행복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던져지는거 아닐까. 

 

실제로 잠깐이지만 내가 본 그 프로그램은 고졸자의 성공담을 마치 무슨 신체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눈이 거의 안보이는 사람이 노력해서 양궁이나 사격부분에서 금메달을 탄다던가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다리가 둘인사람을 노력으로 이긴다던가 하는 식이다. 

 

나는 노력에 의해 타고난 불리함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이 고등학교만 나와도 괜찮다라는 것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만 나와서 혹은 그보다 더 학벌이 낮은 사람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다리가 둘인 사람을 달리기에서 이기는 이야기로 인식한다는 것은 지독한 학벌제일주의이며 따라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학벌제일주의를 주입하게 된다. 결국 고졸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란 고졸자는 역시 성공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프로그램 제작자는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그 부분을 고의적으로 피하려고 해야하지만 그런 인식은 별로 없었다.

 

학벌문제를 조명하려면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학교를 덜 다녔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남들이 학교를 더 다니는 동안 뭘했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죽도록 노력했다가 아니다. 남들은 대부분 학교 다니는데 그 학교다니는 시간에 나는 다른 걸 하고 싶었고 다른 걸했다. 즉 공부대신에 다른 걸 하기로 적극적으로 선택했고 그 선택이 누군가의 성공의 바탕이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학벌이 전부가 아닌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몇년더 공부하는 동안에 그 사람은 빈 방에서 아무것도 한거 없이 시간을 보냈다면 그런 사람이 왜 성공할 것인가. 고졸이라 죽도록 노력해서 성공했다가 아니라 대학을 안 가기로 선택한 것때문에 아주 수월하게 성공했다가 되어야 설득력이 있는거 아닌가. 실제로 빌게이츠같이 미국에서 유명한 몇몇 인사들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알았고 대학교를 다니는 것이 시간과 돈의 낭비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을 실천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대학을 나오고도 그들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대학을 안 나오기로 선택했고 성공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는 두가지 답이 있다.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정말 없다면 고졸자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그램이 될 뿐이다. 뭐하러 고졸이어도 괜찮다고 말하는가. 불쌍하지만 힘내라고? 고졸이면 사실 절대 안돼라고 하는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두번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업가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에서 고졸이면서도 인상깊은 성공사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그렇고 노무현이 그러하다. 그들을 보면 독립적 사고를 막고 권위주의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 한국대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끊을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가난하다던가 신체의 장애가 있다던가 못 생겼다던가 학교를 덜 다녔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남들과 다른 부분이 생기게 되었고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랬을때 그들이 뭘했냐가 중요한 것이다. 시각을 그렇게 해서 보면 사실 어떤 측면에서는 부자집에 태어나고 신체가 멀쩡하고 잘생기고 학교를 오래 다닌 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런 것이 어떤 종류의 경험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난 항상 한국에서 학교를 오래 다닌 먹물중에는 인물이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이 반드시 그렇다라고 하면 그건 거꾸로된 편견이 될테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없이 그저 졸업장만 하나 딴 것일 경우 그렇게 들어간 시간이며 돈이 낭비된다. 그렇게 해서 현실사회로 나왔을때 졸업장 하나면 취업도되고 평생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그것도 나름의 투자이지만 그런 사회가 아닐때는 사실 낭비가 된다. 

 

대학만 그럴것인가. 여러가지 화려한 스펙에 우리는 정신을 못차리는 일이 많다. 그리고 그것자체는 물론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펙에 눈을 빼앗기면 거품이 크게 생긴다. 큰 차를 타면 남들이 알아주니까 신용불량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큰 차를 타고 다니는 허풍선이들이 세상을 채울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스펙이니 자격증이니 하는 것에 목매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이미 그런 허풍선이가 세상에 가득하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즉 서울대 나오면 평생 인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울대 졸업장 하나이외에는 머리에 아무것도 든게 없는 인간들이 세상을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안보고 참고서나 시험점수올리는 꽁수만 열심히 판 사람들 말이다. 요즘은 서울대의 신화는 하버드의 신화로 엠아티의 신화로 확장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지만 내가 아는 연구원중에는 본인은 박사지만 자기 아들의 경우에는 잘 살펴보고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다니게 하고 그걸로 땅이나 사서 농사를 짓게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당연히 좋은 것이고 내실이 있는 것이다. 

 

간단히 결론을 짓자. 학벌에 대한 편견이 한국 사회에는 있다고들 한다. 그 편견이란건 단순히 서울대 나오건 전문대 나오건 똑같이 취급하자던가 하는 식으로는 없어지지 않는다. 서울대 들어간걸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그것도 노력의 결과다. 중요한 건 그건 모두 각자의 선택이고 각자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했냐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만들기로 한 사람은 자동차 부품이 필요하고 비행기를 만들기로 한 사람은 비행기부품이 필요하다. 자기 인생이 자동차가 될지 비행기가 될지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남들이 알아주는 경력만 쌓고 있는 사람은 경력만 화려할뿐 내실이 없을 수 있다. 

 

그 편견이란게 없어지는 것은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버릴 때다. 우리는 최고로 예쁜 여배우가 미적분을 잘푸는지, 건축일은 잘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군가가 고졸자일때 그를 단지 고졸자로 인식하는게 문제다. 그 사람에게 특징이 대학교에 가지 못했다라는 것밖에 없다면 그사람은 실패자일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남들 공부로 학벌을 만들 때 이 사람은 뭘했는가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사람자체다. 그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하다면 그럴 자격이 있다면 그건 그것에 달린 것이다. 가난은 불편할뿐 챙피한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학벌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다니고 안 다니고가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을 아는 것의 차이일 뿐이라면 그걸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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