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4
사람들은 흔히 취미라고 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본업이나 직업이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 우리는 서로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직업을 먼저 묻고 취미는 그저 좀 더 관심을 보이고 싶을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듯이 묻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비극적인 면이 있다. 실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미이며 본업따위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과학이나 공학은 미술이나 요리 그리고 음악과 같은 문화적 행위처럼 모두 취미활동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모두 그 본질이 원래는 취미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걸 만들고 생각하고 하다가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기술을 나눠주고 나눠받고 하는 그런 활동말이다.
취미활동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그걸 꼭 해야할 의무는 없지만 그저 그게 재미있으니까 중요하고 가치가 있어보이니까 하는 활동이다. 반면에 본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본질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호칭의 혼란이 있다. 사람들이 본업이라고 부를 때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제일 흔한 것은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이라는 뜻이고 그것이외에도 국가라던가 가문이라던가 혹은 인류같은 어떤 단체를 위해 의무를 행하는 일 즉 대의명분이 있는 일을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그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말할 때도 있다. 그림그리는 일이 너무 좋아서 그걸 직업으로 해서 사는 화가는 본업이 물론 그림그리는 일이다.
취미와 본업은 종종 같은 것이기도 하고 세세히 구분하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뭔가를 억지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연스레 그저 흥미와 내적인 요구로 하고 있는가를 구분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뭔가를 억지로 하는 일이 많다.
왜 억지가 되는가. 대개는 부풀어진 욕망과 복잡해진 시스템때문이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그저 매일 매일 요리를 이리저리 시도해 보고 사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들은 그러다가 좀 더 좋은 요리를 만들고 그걸 나누고 기뻐하고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와서 이 요리들을 가지고 전국에 체인점을 내면 큰 돈을 벌 수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돈을 원한다. 그러나 일단 체인점 같은 사업이 되고 나면 요리는 그저 영감이 떠오르면 맘대로 할 수 있는 취미생활 같은게 아니다. 그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의무적으로 신상품을 내놓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맘대로 레시피같은 것을 가르쳐주면 안된다. 사람들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에 시간을 써야 하며 재무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언제 은행에서 가게를 차압해버릴지 모른다. 경쟁자들을 신경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별별 생각지도 못한 치사한 것, 악의를 가진 행동까지 미리 생각을 해야 한다.
시스템이라고 하면 다른 종류의 시스템도 있다. 즉 어떤 대의명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사고의 시스템이다. 국가발전을 위해 한국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던가, 인류를 위해 편안한 탈 것인 자동차를 개발한다던가, 인류가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해 의학을 발전시킨다던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뭔가를 한다는 것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일때 우리는 그걸 더이상 취미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요리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음악, 그림은 물론 공학과 과학도 마찬가지다. 사실 공학이나 과학에 대해 생각해 보라. 처음에 그런걸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걸로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일이 일어난 이후에 거기에 사회적 역사적의미를 주는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것은 인류를 위해 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분명 그 시작은 훨씬 소박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오는 억지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노력한다라는 좋은 말로 표현 할 수도 있는데 왜 이런 것에 나는 유감을 표할까. 사실 세상에서는 훌룡한 대의명분을 위해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말이 이미 가득하다. 하지만 억지로 하는 것은 잘되지 않는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솟아난다기 보다는 그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을 뿐이며 빨리 그걸 끝마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이런 일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사실 우리의 삶은 엉망이 된다.
뭔가를 억지로 한다는 것은 사실 그런 행위의 가치를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자.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 절차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그걸 즐거워하면서 그 일을 한다. 그런데 단지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그걸하는 사람은 빨리 하나라도 더 만들거나 빨리 이걸 만드는 것을 끝마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고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후자의 경우 그 사람은 정말로 괜찮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노력한다는 말이 칭찬을 듣기는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그저 거짓된 칭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참고 뭔가를 한 것을 칭찬하는 것은 사회적인 세뇌에 불과하다. 즉 너는 이것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사회적 세뇌인것이다.
하지만 칭찬때문에 보상때문에 뭔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칭찬을 듣기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어떤 선행도 그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그저 그게 하고 싶으니까 한 것이다. 인연이 닿으니까 좋아하니까 한것이다. 호들갑을 떨며 칭찬할 일이 아니다. 그저 진심어린 감사의 말 몇마디면 충분하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하고 싶은게 어디있냐 원하는대로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지루하고 외롭게 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다만 우리는 대개의 경우 외부의 압력에 끌려다니는 일이 너무 많기에 그저 그냥 혼자되고 싶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한 사실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대개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복잡한 삶을 산다. 스스로를 필요이상으로 분주하게 만든다. 결국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온갖 의무를 뒤집어 씌워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를 차분히 느낄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어쩔 수 없다는 많은 일은 사실 어쩔 수 없지 않다. 적어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많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필요한게 많다. 게다가 사회는 날로 복잡해져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많은 의무를 다할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완전히 뒤집어진 생각을 하는 일이 많다. 다시말해서 의무를 다하고, 노력하고, 억지로 삶을 끌고 버티는 그런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두 다 참고 있고 모두가 죄책감 즉 충분히 참지 않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산다.
이런 저런 직업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건 다 의무로서의 일을 말한다. 내 취미는 자전거타기인데 네 취미는 정원가꾸기구나 나는 네가 부럽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뭘 꾹 참고 뭔가를 이뤄낸 것을 우리는 부러워한다. 사법고시를 통과해서 변호사가 된다던가 박사학위를 딴다던가 벤쳐회사를 시작해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던가 하는 것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걸 자기가 좋아해서 했다면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시골의 수양버들나무가에 내놓은 평상에 앉아 평생 책만 읽고 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너는 변호사가 되서 부럽다고 할 이유가 없다. 정원가꾸기 좋아 집앞에서 작은 코스모스밭을 가꾸는 사람이 누구는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지역에 코스모스밭이 있다고 해서 부러워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댓가를 지불하고 결과를 받을 뿐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날마다 나무그늘에서 잠만 자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욕망은 그럼 나쁜 것일까. 어느날 내가 멋진 페라리를 보고 저걸 타고 싶다고 생각했다던지 근사한 아파트에 아름다운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하고 그걸 위해 날마다 돈을 벌며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나는 욕구가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반대로 중요한 우리의 일부다. 다만 욕구가 쾌락과 부풀어진 욕망으로 변하는 것이 문제다.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천만원을 주고 산다면 그건 사기당하는 것이다. 욕망이란 종종 이런 사기다. 즉 실제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만큼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이고 그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위해 소중한 것을 바꾼다. 다시 말해 거래는 나쁘지 않지만 사기당하는게 나쁘다는 것이다.
성적인 욕망이던 물질에 대한 욕망이던 유명해지고 권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던 욕망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의 행복감을 줄 것인가가 문제다. 백원짜리를 자꾸 천만원에 사다보면 우리는 가난해지고 파산한다.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고 생활에 즐거움이 없어진다.
정말로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하는 다른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할것이다. 천만원짜리를 백원에 판다는데 백원을 벌기위해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가 힘들리가 있을까. 오히려 그런 일이 고맙지 않을까.
나를 돌아보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일이 있다. 산책하면서 어렸을때부터의 일을 생각하는 일, 그걸 글로 쓰는 일, 아내와 데이트를 하는 일, 아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 과학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논문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그런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게 나의 취미다. 본업같은 건 뭐라고 불리던 좋은 일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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