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메로 유명한 일본에 살면서 한국에서 왕따당하고 자살한 학생의 뉴스를 듣는 것은 조금은 새삼스럽습니다. 그리고 우리애들은 학교에서 잘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됩니다. 워낙에 지역차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든 일입니다만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일본에서도 살아본 저는 한국 교육의 큰 문제중의 하나는 교육이란게 아예 없다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줄줄이 늘어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것입니다. 한국은 사회적 규칙이나 도덕 혹은 게임의 법칙이 무너져 버린 느낌입니다. 그것은 바로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 바로 그 사회가 말하는 인간형입니다. 즉 이러저러하게 살면 사회가 이러저러한 것을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서 직장다니고 독립된 개인으로 살기전에 학교와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게임의 법칙을 가르쳐 줍니다. 그게 결국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칼로 찌르면 안되고 도둑질하면 감옥가고 음주운전하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배우지 않습니까?
한 왕따학생의 자살을 확대해석해서 그걸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로서는 3개국의 아이들을 둘러보면서 늘 느끼던 것을 다시한번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게임의 법칙이 무너져있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봅시다. 미국의 아이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나를 아이취급하지 말라고 하는 식으로 구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미국의 사회적 상황은 독립적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성인처럼 대접하고 그렇게 행동할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엉망처럼 보이기도 하며 실제로 어느나라나 그렇듯이 엉망인 아이들도 많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미국적 게임의 법칙 아래서 움직입니다.
미국적 게임의 법칙이란 숙제를 베끼거나 시험때 컨닝을 하거나 학교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거나 하면 엄격하게 처벌받는 것입니다. 즉 평상시에 어른처럼 독립된 인격으로 행동할 자유가 있는대신에 그 책임과 처벌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의 게임의 법칙은 전혀 다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무시당합니다. 일본아이들은 일본사회가 본래 그렇기는 하지만 굉장히 집단주의적 사고방식하에서 큽니다. 일본사회의 다양성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일본을 수없이 많은 칸막이로 이뤄졌다고해봅시다. 그러면 그 각각의 칸막이들은 아주 다양하며 이쪽 칸막이에 있는 사람은 저쪽 칸막이에 있는 사람이 어떤 괴상한 짓을 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칸막이에 있는 사람은 모두 매우 매무 비슷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당합니다. 사회적 규율의 힘이 무척 강합니다. 마치 여전히 막부시대의 각 번이 서로 독립인것 같은 구조인 것입니다. 학교로 보면 일본의 학교는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학교마다 교복 교칙 교육방침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대개 한 한학교 안에서는 한국기준으로 보면 아주 세세한 것까지 일종의 관습으로 다 똑같이 똑같이 합니다.
이런 사회환경속에서 일본아이들은 자유가 별로 없습니다. 아니 자유가 뭔지를 애초에 잘 모릅니다. 다 서로 똑같이 하는게 당연한줄 알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달까요. 이것이 바로 좋건 나쁘건 일본이 일본인을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미국인이 미국인을 만들어 내듯이 말입니다. 일본의 방식이 나빠보일지 모르고 실제로 나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일본을 망하게 하는 것도 지금의 일본의 영광을 만든것도 바로 그 게임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는 도무지 무슨 게임의 법칙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은 여러가지 교묘한 말로 헛깔리게 굽니다. 그래서 학교를 보면 그게 더 잘 들어납니다. 과연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말입니다.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런게 없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는 아이라면서 관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관용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권한과 책임의 균형입니다. 그런 균형이 깨지면 좁게 보면 좋아보이는 선택도 결국은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지탱되는 위선적 선택이 됩니다. 좋은 예가 바로 자살한 왕따학생의 고통입니다.
한국에서도 회사에서 동료직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자살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어른들이니까요. 그들은 그런 사태가 어떤 책임에 이르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그들은 그들이 어른들처럼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다른 애를 때리고 놀리고 협박해도 어른들은 뭐 애들일인데, 이런 걸로 처벌하면 애들인생망치는데 하면서 애들을 애들로 대접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애들로서 평상시 처벌받지 아니할 의무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들처럼 제약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아이들이 굉장히 스스로를 어른과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느낍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다만 어른들처럼 책임을 져야할 순간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마치 법이 없는 미국아이들처럼 보입니다. 한국아이들의 당돌함을 미국아이들의 독립성과 착각하는 한국어른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큰 착각입니다. 피어싱하고 찟어진 청바지 입으면 록가수일까요? 노래를 해야 록가수죠. 미국인의 핵심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무제한 적인 자유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규칙에 대한 책임감을 보이는 독립적 시민입니다. 적어도 이상적으로 표준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국아이들이 독립적이라구요? 그렇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말안듣는게 독립적인게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일관적으로 있어서 인생의 선택에 있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수 있는게 독립적인 것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학원만 뺑뺑이 돌면서 시험문제 푸는 것만 공부한 아이들이 독립적 인격일수가 없습니다.
결국 한국의 현실이란 학교가 단순히 수용소처럼 아이들을 가둬두는 공간일 뿐이며 어떤 사회적 게임의 법칙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결국 공부잘하고 돈많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정의고 법이고 없이 남에게 밀릴수 밖에 없다는 정글의 법칙일 뿐입니다.
이러한 학교의 현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한국사회가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요. 한국사회도 게임의 법칙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중잣대가 적용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단을 흑백론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디와 비교하냐의 문제도 있지요. 한국은 그래도 꽤 잘해온 편일지도 모릅니다.
한국교육의 문제를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한국학교는 한국인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빡빡한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어 모든 자유가 없어지는 직장인이 되기전의 아이들은 도대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게임의 법칙이란게 뭔지 알도리가 없는 셈입니다.
사실 한국에도 이것이 한국인이다라는 것을 말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적 질서이고 효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이와 부모는 강력한 관계로 얽혀있는 것이 한국사회였고 그것이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질서를 만들어 내는 원천중 하나였습니다. 말하자면 부모님 망신시키지 않으려면 나가서 똑바로 행동하고 부모에게 부담주지 않으려면 행동 똑바로 한다는 식입니다. 요즘은 이것도 물론 망가져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윽박지르는 몰상식한 부모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자체도 매우 미약해졌습니다. 따라서 이 한국인의 정체성도 많이 망가진 셈입니다. 그게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사회의 전통을 생각해 볼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부모와 학교와의 관계가 보다 친밀해 지면 왕따문제같은 것은 훨씬 좋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문제 고민하라면 다들 입시걱정만 하거나 다들 막연한 도덕규칙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습니다. 이건 정답의 문제이전에 한국사회의 정체성문제가 깊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공감대와 고민이 없으면 마치 아이들보고 이게 팝음악인지 마당놀이인지도 안가르쳐주고 합창잘해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의 근본은 참여가 아니다. (0) | 2012.01.11 |
---|---|
새해를 바라보며 (0) | 2011.12.28 |
대학안의 지식인, 대학밖의 지식인 (0) | 2011.12.14 |
내용이 광고와의 싸움에서 지는 한국 (0) | 2011.12.08 |
교권은 왜 바닥에 떨어졌는가. (0) | 2011.1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