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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종교관련글

제사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1. 12. 27.

11.12.27

제사는 우리나라에서 은근히 금기시되는 주제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제사를 공공연히 제대로 거론하는 일은 드물다. 다시말해 개인의 자유쯤으로 말해진달까. 그러는 가운데 모순은 누적되고 고통받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같다. 그래서 이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적어 볼까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고 말고는 당연히 개인의 선택이며 이것이 과학이나 논리의 문제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한다거나 하는 결론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거부하는 쪽이든 찬성하는 쪽이든 생각해 봐야할 한두가지를 지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포기하려고 해도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찬성한다고 해도 형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사가 싫다

 

우리나라는 이제 기독교신자가 상당히 많고 그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대개 거부한다. 다시 말해서 제사를 종교활동으로 여기므로 수용할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사실 종교인 것과 종교가 아닌 것이 그렇게 뚜렷히 구분되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이란 다 이러저러하게 행하는 형식을 유지한다. 결혼식도 한복도 집의 모양새도 심지어 우리들의 언어자체에도 우리의 전통의 생활은 스며있고 따지고 보면 그것들중에 종교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게 있을리가 없다. 다시말해서 엄격하게 말하자면 외래에서 온 기독교는 물론 심지어 불교도 만약 기독교적이지 않은것은 혹은 불교적인 것이지 않은 것은 모두 이단이라 배척하겠다고 든다면 우리의 모든 문화를 통째로 던져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일이다. 설날에 우리는 살아있는 집안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이것을 대개 종교적 행위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혼을 믿을 것이다. 영혼의 불멸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믿음이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가신 집안 어른의 영혼을 부르는 예식에서 그 앞에다가 절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일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사실 제사를 귀찮아하고 제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은 것같다. 솔직히 말해서 내 느낌으로는 지금의 50대 이상의 한국인이 사망하게 되는 30-40년뒤에도 한국에 제사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을런지 자신이 없다. 

 

그것은 애초에 제사지내는 풍습이 친척들이 집성촌에서 모여살고 삼대 사대가 한집에서 모여살던 시대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제사를 물려주는가 마는가 하는 논의가 있다. 할아버지와 큰 아들이 같이 사는 시대에는 이런 논의자체가 필요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다같이 살고 있으니 나이가 든 할머니는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고 더 많은 가사노동은 아랫대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할아버지와 아들이 따로 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며느리며 아들이 제사때면 가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주최하는 쪽과 거드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하여 요즘은 사람들의 수명도 한없이 늘고 있어서 70에 80도 드물지 않다. 이러니 7-80먹은 할머니가 끝도 없는 제사준비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그것을 받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그 다음세대는 어떨까. 그들은 과연 제사를 지낼까? 

 

제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렇다면 종교적 문제도 일으키고 이리저리 현대적 상황에 맞지도 않아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제사라는 것은 유지할 가치가 하나도 없는 일일까. 나는 그걸 이렇게 물어볼수도 있다고 한다. 초가집에 사는 사람이 초가집이 이리저리 관리하기가 힘들면 그냥 들판에 살면 될까? 아닐 것이다. 초가집을 버리겠다면 더 좋은 집을 내놓고 이야기를 해야 답이 나오는 것이지 무작정 들판에 드러누우면 된다고 하는 것이 답은 아닐것이다. 

 

제사란 결국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와 크게 맞물려 있기에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가족의 융합이다. 이것은 나아가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된다. 

 

도올김용옥은 한때 죽음의 문제가 피할수 없는 중요한 문명의 문제라는 것을 말한뒤 그 해결책이 서양과 동양이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서양은 죽음이란 착각이다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즉 영혼의 불멸과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동양은 불멸하는 혈연을 즉 가족적 질서를 답으로 제시했다. 즉 내가 행하는 것들은 대를 이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 그러기에 허무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족보가 강조되고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중요한 이유다.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할지 모른다. 확실히 신이고 가족이고 다 잊어버리고도 우리는 존재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너의 이웃을 백원짜리 동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논리적,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것이 언뜻 사소하고 별거 아닌것 같지만 우리가 문명적 문화적 맥락을 과소평가하면 세상은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건 그렇지 못하건 우리의 정신과 사고는 여러가지 가정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말단에서 우리의 정신구조에서 뭐가 얼마나 중요할까를 생각해 보지 않고 뭔가를 파괴했을때 생각이상으로 우리의 생활은 망가질 수 있다. 어느 날부터 한국어 다 포기하고 일어나 영어써도 대한민국이 제대로 돌아갈까? 논리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에 대한 존중의식이 없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이상한 나라다. 유교적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나라인 동시에 기독교가 크게 전파되어 있는 나라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두가지가 잘 융합되어 그 둘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토양이 자라난다면 매우 훌룡한 이야기이겠으나 이 둘이 정면충돌해서 같이 죽어가는 소모전을 벌이면 사회의 도덕이 파멸수준에 이를 수 있다. 불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새로운 것이고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불협화음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게 바로 제사다.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의 제사라는 것의 형식은 많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간단히 제사를 파멸시키고 대안이 없을 때 그것은 한국전통의 도덕관념을 파멸 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에는 제사풍습없으니 우리도 괜찮을거라는 생각은 너무 어설프다. 이미 우리주변에서 패륜적인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현대판 고려장도 있고 아이를 죽이는 부모도 있다. 요즘 아이들이 도덕적 감각을 잃어가는 것도 가족내지 가문의 약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결국 제사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제사의 의미와 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신자들 중에는 간단히 우리가 서양사람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전세계 역사에 그런 예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있기론 없다. 문화는 항상 발전적으로 계승되는 것이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받아들여서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기독교를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한국문화에 대해 포용성을 크게 가지면서 한국에 기독교가 존재해야지 그렇지 않을 때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맺는 말

 

이렇게 보면 제사의 문제는 큰 상징성과 중요성을 가지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내놓고 그걸 논하거나 문제를 좋게 만들려는 대중적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논의 자체가 알게 모르게 금기시 되는 느낌이다. 매우 보수적인 사람은 형태의 모순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종교의 문제로 반대하므로 그것을 논하는 것은 종교를 박해하고 비판하는 일이 된다고 여겨서 꺼리는 것같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그저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이 어쩌니 하면서 증상만 이야기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눈감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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