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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대기업과 한국인의 삶

by 격암(강국진) 2012. 1. 27.

전에 나는 한국에 대해 한마디만 한다면 한국은 작다라는 것이며 그것은 특히 인구와 땅이 작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죽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고 말한적이 있다 (http://blog.daum.net/irepublic/7887993). 그렇다면 한국은 왜 다양성이 없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한국의 부유함과 한국의 대기업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생각을 해볼수 있을 것같다. 


가난한 나라는 다양성이 있을수 있다. 왜냐면 가난한 나라는 전국적으로 모든 것을 단일화하는 거대기업이 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동네마다 다른 술담가 먹는 식이요 동네마다 다른 김치 담가 먹는 식이다. 


부자나라는 또 다양성이 있을 수 있다. 왜냐면 첫째로 나라가 부자니까 국민이 부자고 국민이 부자니까 비싼 것들을 소비할수 있다. 제품의 값이 비싸면 소량생산이 수지가 맞는다. 따라서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될 기반이 된다. 둘째로 부자나라는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만큼 남과 다른 특징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고 돈을 내는 문화가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한국이 선진국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그리고 어떤 기준을 정해 선진국이라고 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은 각각 다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떤 것도 유일한 기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우리가 통상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보다 가난하다. 그러나 한국은 동시에 대기업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대를 이어 세습하는 내가 알기에 전세계에 거의 유일한 나라에 가까운 나라인것 같다. 


이 두가지 사실 즉 국민이 충분히 부자는 아닌데 대기업들이 넘치는 사회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를 지극히 단순한 사회로 만든다. 우리는 삼성이나 엘지 제품을 쓰고 현대 자동차를 타고 오비맥주를 마신다. 


예를 들어 맥주를 보자. 한국사람들이 일본이나 미국에 가서 맥주를 마시면 다들 피부로 차이를 느낀다. 첫째로 한국맥주는 맛이 없고 둘째로 외국은 맥주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미국에는 천가지의 맥주가 있다고 하며 일본에도 각 지역맥주가 많이 있어서 원한다면 다양한 맥주를 즐길수가 있다. 물론 맛도 좋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맥주값은 어떨까. 한국의 맥주들은 캔하나가 천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안다. 일본돈으로 치면 백엔이 조금 못되는 셈인데 일본에도 그런 맥주가 있다. 그러나 그건 발포주라고 불리는 저가 맥주고 대개는 그보다 훨씬 더 비싸다. 아내가 한번은 우연히 일본에서 소량생산하는 지역맥주들을 인터넷에서 파는 사이트를 찾아서 한동안 그맥주들을 주문해 먹은 때가 있었다. 그 맥주의 가격은 할인을 어떻게 받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4백엔정도로 한국돈으로 치면 켄 하나에 5천원이 넘는 셈이다. 그렇게 비싼 맥주를 어떻게 먹는가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첫째로 그런 가격에 개의치 않는 소비자층이 있고 둘째로 어떻게 먹는가의 문제다. 즉 맛으로 먹는가 취하려고 먹는가의 문제다. 한잔 맛있게 먹는 것만 생각한다면 맛없는 맥주 몇잔 마시는 것보다 맛있는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좋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역시 비싸다. 그래도 그런 소량맥주가 존재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미국 사람이나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돈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선진국이 한국보다 부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종종 삼성이 소니를 이겼다는 뉴스에 감격하고 기뻐하지만 그것은 사실 어느정도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상황이 한국인들을 보이지 않는 족쇄로 묶어버린다. 대기업 독과점 그것도 제대로 된 주식회사라면 있을 수 없는 대를 이어 세습하는 괴상한 주식회사 재벌들이 한국인들이 있을 곳이 없게 만든다. 


미국에서 윈도우를 델 컴퓨터가 만들지 않는다. 스티브잡스의 아들이 애플을 물려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면 대기업은 자기가 자회사를 만든다. 그래서 그룹내부의 수요를 자기 자회사가 만족시킨다. 그러나 작은 나라에서 각자 대기업들이 각각 자회사를 만들면 나중에 그 자회사들이 그룹바깥으로 나가봐야 시장이 없다. 이런 판국에 대기업 바깥에서 벤쳐로 커보겠다고 회사를 만들면 그게 잘되기가 쉬울리가 없다. 


한국자동차는 부품값이 비싸다는 걸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외국에는 부품만 만들어 다른 여러자동차에서 동시에 쓰는 부품 산업이라는게 있는데 한국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직접 순정부품운운하면서 자기가 직접 부품산업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론 자동차사업 보호라는 이유로 장벽을 쌓는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통상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보다 열악한 조건으로 차를 탄다.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고 값은 비싼 시장이다. 


사람들은 통상 큰아들이 잘돼야 집안이 잘된다라는 개념으로 대기업의 성장을 기뻐하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런 비유가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지만도 않은 것은 물론이다. 첫째로 대기업들은 주식회사다. 그리고 삼성도 포스코도 KT도 외국인들이 대주주다. 뭐가 큰 아들일까. 과연 한국의 대기업들이 한국인들을 형제와 가족으로 생각할까. 둘째로 가족운운 하는 것은 완전한 사회주의를 말한다. 막내가 돈못벌어오면 나가서 죽으라고 하는게 가족은 아니니까.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인가? 대기업이 피자대량생산해서 팔면서 거기에 대해 너무한다고 지적하니까 사장이 뭐라고 하던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말라고 한다. 대학생들이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죽겠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이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우리사회의 큰손들이 사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가? 오히려 그들이야 말로 등록금장사하고 땅장사해서 돈버는 사람이 아닌가?


언제라고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아이엠에프때라고 생각되는데 한국은 거대 자본이 너무 고삐가 풀려서 날뛰는 사회가 되었다. 그들이 한국 사람들이 숨쉴수 있는 여유를 모두 빨아들여 버린다. 그것을 막는 것이 정치력이고 사법부이고 언론이며 학자들의 본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대항을 못한다. 


자본이 나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걸 전제로 하자면 역시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수 없다. 지금 가계부채가 폭팔직전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때 지금 아파트사면 망한다고 하니까 정권을 비난하고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야단이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끝끝내 부동산 거품생산에 최대 책임이 있는 뉴타운 건설같은 것을 추진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6억이 넘는 집에 살아야 내게 되는 종부세 내게 한다고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고 말했던 사람은 어디에 있나. 


그런 사람들을 지지했던 것은 결국 욕망때문이다. 자본이 유혹하면 한계도 없이 욕망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만 있다면 어떤 것도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아름다운 나무를 보고 오직 그 나무를 잘라서 책상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한가지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 나라는 가난하고 황량해 질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양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가 되어야 다양성이 유지되고 모두가 자기 인생을 찾을수 있는 사회가 될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단순한거 아닐까. 단순한 사람은 자기가 단순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혹시 내가 너무 단순한거 아닐지, 너무 쉽게 결론 내지 말고 반성해 보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절제할땐 절제하고 가치를 알아줄때는 가치만큼 지불하는 삶의 질을 고민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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